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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경제를 어떻게 움직이나

물가가 뛰면 뛰는 만큼 화폐 현찰은 값어치가 떨어진다. 물가가 심하게 뛰는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봉급, 연금, 이자 등 현찰 수입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의 살림살이가 힘들어진다. 이렇게 되면 돈 융통을 포함해 기업활동, 경제활동이 크게 위축된다.

곽해선 | 경제교육연구소 소장(www.haeseon.net)


최근 물가 동향과 경제 상황
부총리가 지난 6월 말 하반기 나라 경제 운용 방향을 밝히면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작년 대비 3.5% 이내로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하반기 들어 국내 물가는 장마와 폭염에 따른 채소류의 작황 부진, 교통요금 인상, 중동 지역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 원유가 폭등과 맞물려 상승세가 가파르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달 대비 3.6%였는데 7월에는 전달보다 0.8%포인트가 오른 4.4%를 기록했다. 8월에도 전달 대비 4%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나서서 도시가스 요금과 휴대전화 기본료를 내렸지만 물가 불안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그만큼 오르지 못하고 금리는 떨어지는 추세라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 경기를 한층 어렵게 하고 있다.

8월 1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노동부가 밝힌 바로는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명목임금 상승률이 4.6%에 그쳤다. 임금소득의 크기는 물가가 오르면 오르는 만큼 뒷걸음질친다. 올해 1월에서 5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3%였던 점을 감안하면, 명목 임금상승률(4.6%)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3.3%)을 뺀 실질임금 상승률은 1.3%에 불과하다.

실질임금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 7.1% 수준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작년의 1/5도 안 되는 수준으로 급격히 위축되어, 물가 상승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런 현상은 봉급생활자와 서민들의 소비 능력, 의욕을 위축시켜 소비가 매우 침체한 지금 우리 경제에 한층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은퇴해서 직장 없이 연금이나 이자소득에 의지해 사는 서민층은 더 어렵다. 한국은행이 8월 12일 국내 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는 콜 금리를 연 3.75%에서 연 3.5%로 내림으로써 시중금리가 한층 낮아지면서 이자소득도 줄어들게 됐기 때문이다.

물가는 어떻게 정해지나
물가란 여러 개별 상품의 가격을 한데 묶어 평균 낸 값, 가격은 상거래를 위해 개별 상품에 붙이는 값이다.

가격이나 물가는 기본적으로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상품 수급에 따라 시장에서 일단 가격이 형성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거꾸로 시장가격이 상품의 수급을 조절한다. 즉 상품의 수요-공급이 시장가격을 형성하고 나면 시장가격이 거꾸로 상품의 수요-공급을 좌우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여러 원리 중에서도 기본이다.

그런데 가격과 물가가 시장에서 상품 수급에 따라 정해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본이 그렇다는 얘기일 뿐이다. 현실에서는 상품 수급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이유가 끼어들어 가격과 물가를 움직일 때가 많다. 중요한 변수 두 가지만 들어보자.

첫째, 시장이 어떤 상태에 있느냐가 그 하나다.
시장에 따라서는 상품을 공급하는 기업이 한 개 혹은 몇 개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독과점 시장’이다. 독과점 시장에서는 당연히 상품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유리하다. 소비자가 상품을 살 곳이 달리 없으니 기업이 가격을 제멋대로 매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독과점 기업이 시장에 내놓는 상품, 서비스에 자기 좋을 대로만 가격을 매기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막무가내로 가격을 올린다면 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아무리 그래도 소비자가 외면할 수 없는 상품, 서비스라면 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선다. 전형적으로, 공정거래법과 공정거래위원회를 두고 독과점 기업의 횡포를 법률로 견제해 시장에서 거래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한다.
둘째, 환율도 수급 관계 외에 물가에 영향을 자주 미치는 변수다.
수입 상품 대금이 달러 당 1000원 하다가 1050원이 된다고 하자. 외화 표시 상품 판매가가 변함없다 해도 상품 구입에 드는 원화 액수는 오른다. 이 여파가 다른 상품 가격들에까지 미치면 물가가 오른다. 만약 환율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면 정반대 결과가 생긴다.

환율이 물가를 뛰게 하는 예로는 우리나라가 지난 1997년 후반 외환위기 때 당한 이른바 ‘IMF 한파’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우리나라는 단기외채를 못 갚을 정도로 외화가 바닥 나 있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외 투자자들이 원화 가치 폭락을 예견하고 일제히 원화를 팔아치웠고, 이 바람에 원화는 기록적으로 폭락했다. 달러 당 900원 정도였던 환율이 삽시간에 달러 당 1800원을 넘어섰다. 그러자 수입 상품 판매가도 일제히 급등해, 전과 같은 양을 사더라도 원화 대금을 배 이상 내줘야 했다.

완제품뿐 아니라 완제품을 만드는 재료로 쓰는 수입 원자재도 가격이 올랐고, 수입 원자재로 만들어내는 국산 완제품도 가격이 뛰었다. 이렇게 수입 완제품과 원자재의 가격 인상이 국산 완제품 가격을 올리고 상품 전반으로 파급되면서 물가가 폭등했다.

환율이 뛰면 수입 원유도 마찬가지로 가격이 뛴다. 원유(crude oil)는 자동차 운행 등 각종 산업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필수 에너지원이다. 제품 생산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원유를 쓰는 산업도 아주 많다. 때문에 원유 값 변동이 물가에 미치는 효과는 특히 크다. 원유 관련 제품 가격이 오르면 원유와 직접 상관 없는 수많은 다른 상품들도 꼬리를 물고 값이 뛴다.

물가는 경기와 무슨 관계가 있나
보통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가 오른다. 왜 그럴까. 수요가 높아지고, 생산비가 오르기 때문이다. 생산활동이 활발해지면 기업이나 가계나 소비가 늘어난다. 그 결과 원재료와 에너지, 노동력 등 생산요소와 상품에 대한 수요가 공급에 비해 전체적으로 높아진다. 수요가 공급에 비해 많아지면 상품 가격은 오른다. 원재료나 에너지 값, 인건비가 오르는 만큼 기업은 생산비 부담이 늘어 완성품 판매가를 올리게 마련이다. 이런 과정이 전 산업에 걸쳐 확산되면서 물가가 오른다.

경기가 좋을 때는 소비자들이 비싼 상품도 기꺼이 사들일 만큼 소비의욕이 높다. 그러므로 기업도 적극적으로 나서, 생산비가 더 들더라도 생산량을 늘린다.

기업이 생산을 늘릴 때는 더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노동력 공급은 한정되어 있는데 수요가 늘면 노동의 대가 곧 임금이 오른다. 임금이 오르면 봉급생활자들은 두둑해진 호주머니를 믿고 물가가 비싸도 소비를 줄이지 않는다. 물건 값이 비싸도 잘 팔리니 상품 판매가는 자꾸만 오른다.

결국 경기가 좋아지는 동안에는 기업이나 가계나 생산과 소비가 함께 활발해지기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 반면 경기가 나빠지면 물가는 어떻게 될까. 경기가 나빠져 기업의 생산 활동이 침체하면 직장인들의 임금 수입도 늘지 못하거나 줄어든다. 그 결과 가계의 소비 의욕이 떨어지므로 소비가 줄고, 그러면 물가는 떨어지거나 상승률이 둔해진다.

다만 예외적으로 경기가 나쁠 때 물가가 오르는 수도 있다. 지난 1997년 말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은 직후에는 경기가 나쁜데도 물가가 치솟았다. 당시 원화가치가 형편없이 떨어지는 바람에 수입 상품 가격이 폭등하면서 물가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지금도 우리 경제는 경기가 나쁜데 물가가 오르고 있다. 지금은 기업의 경쟁력이 외국에 비해 떨어지는 데다 정부의 정책실패 같은 국내 요인과 해외 요인이 겹쳤다.
국내적으로는 부동산 투기와 신용카드 남발이 조장됨으로써 가계 부채와 신용불량자가 대거 양산된 끝에 빚에 짓눌린 가계가 소비를 못해 소비 침체 → 판매 침체 → 생산 위축 → 고용 위축의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밖으로는 고유가와 중국의 경기 긴축 등이 원유를 비롯해 수입원자재 가격을 올리고 있다.

인플레이션이란 무엇인가

경기가 좋아지면 상품 수요가 공급을 웃돌아 물가가 오른다. 수요가 공급을 많이 웃돌면 물가 상승세도 심해진다. 그러다가 물가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빠른 속도로 계속 오르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 이처럼 단기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물가 상승 현상을 ‘인플레이션(inflation)’이라고 부른다. 흔히 줄여서 ‘인플레’라고도 부른다.

다만 물가가 얼마나 빨리 오르면 인플레이션인지 정확하게 정의할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어느 정도 기간 동안 몇 % 이상 물가가 오르면 인플레이션이라고 본다’는 식의 규정이 없다. 그러므로 현실에서는 여느 때에 비해 물가 상승이 심한지 여부로 인플레이션을 판별할 수밖에 없다. 자연히 인플레이션은 발생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도 의견이 엇갈릴 때가 많다.

물론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인플레이션 사례도 있다. 브라질이나 멕시코, 터키 같은 나라들은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예다.
브라질에서는 지난 1990년 물가가 한 해 전에 비해 무려 30배나 뛰었다. 1991년 물가는 전년에 비해 4.4배를 넘었다. 이후에도 계속 인플레이션이 진행되어 1993~1994년 사이에는 물가가 20배나 올랐다. 1995년이 지나고서야 겨우 물가상승률이 20% 밑으로 떨어졌다.

물가가 뛰면 뛰는 만큼 화폐 현찰은 값어치가 떨어진다. 어제 한 봉지에 1000원 하던 콩나물이 오늘 2000원 하면 1000원이라는 돈 가치는 어제의 반절밖에 안 된다. 물가가 웬만큼 오르면 몰라도 이 정도로 물가가 심하게 뛰는 인플레이션이 생기면 돈 가치도 큰 폭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봉급이나 연금, 이자 등 정기적으로 일정액씩 얻는 현찰 수입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은 당장 살림살이가 빡빡해진다. 물가가 뛰면 전·월세 등 집세와 가게 세, 자녀 학비, 교통비 등 생활비가 일제히 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기업들이 때맞춰 직장인 봉급을 올려주는 것도 아니고, 금융기관 등이 연금이나 이자를 더 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은 서민 대중의 생활수준을 끌어내린다.
인플레이션이 극단적으로 심한 경우는, 아침에 1000원 하던 상품이 저녁에 2000원 하는 식으로 뛰는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사람들이 경제의 앞날을 자신하거나 예측하기 어렵게 되므로 돈 융통을 포함해 기업 활동, 경제 활동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한다.

디플레이션은 왜 문제인가
인플레이션과 반대 되는 현상도 있다. 디플레이션(deflation)이다. 수요가 공급에 훨씬 미치지 못해 물가가 계속 떨어지는 경제 상태를 말하는데, 흔히 줄여서 ‘디플레’라고 부른다.

물가가 떨어지면 소비자에겐 좋을 것 같지만 디플레이션 때의 물가 하락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수요, 소비가 공급을 크게 밑돈다는 것은 국민경제의 공급력에 비해 구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국민경제의 생산과 투자 규모를 줄여 성장능력을 약화시킨다.

디플레이션 때는 제품이 팔리지 않아 기업들이 제품 가격을 잇달아 내린다. 그런데도 소비자들은 물가가 계속 떨어질 것이며 나중에 살수록 이익이라고 생각해 소비를 미룬다. 그럴수록 기업은 판매 부진이 심해져 제품 값을 더 내려야 한다.
결국 제품 값 하락과 소비 부진이 되풀이된다. 그런 가운데 경쟁을 치러내야 한다. 수익성 하락과 경쟁을 견디다 못해 상품 가격을 올리거나 상품 품질을 떨어뜨리는 기업은 소비자에게서 외면당한다.

디플레이션 때는 상품이 싸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들은 불가피하게 공장 설비와 인원을 줄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실업자가 늘어 가계의 구매력은 한층 떨어진다. 가계의 소비는 더 줄어들고 제품 가격은 더 떨어지면서 실업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 가격도 수요가 적어 거래가 부진하므로 시세가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소비 침체는 한층 심해진다.

이처럼 디플레이션 때는 소비자가 돈을 절약할수록 제품 값이 더 떨어지고 투자와 생산이 부진해져 국민경제 형편이 나빠지는 ‘절약의 역설’이 나타난다. 소비 부진 → 판매·거래 부진→투자, 생산 침체→고용 감소, 실업 증가→소비 부진으로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 악순환의 고리가 어디선가 끊어지지 않는 한 경기는 불황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이유로든 가계가 소비를 늘린다면, 경기가 되살아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소비가 늘어나면 설사 그로 인해 제품 가격과 물가가 오르더라도 생산과 투자를 자극하고 고용을 자극해 경기가 좋은 사이클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소비 절약이 생산·투자를 한층 부진하게 하고 그 결과 기업의 어려움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경기가 나빠지는 악순환이 가속될 수밖에 없다.

디플레이션이 불황을 부른 심한 예가 유명한 1929년 세계 대공황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주가 대폭락을 시작으로 물가가 이후 3년여에 걸쳐 약 27% 하락했다. 실업자도 1천만 명 이상 늘었다. 경제 규모는 3년 사이 2/3로 줄어들었다.

경제가 불황에 빠지면 돈 수요가 줄어 금리가 떨어지고 각종 상거래에서 거래자 상호간 신용이 흔들려 사회가 불안해진다. 디플레이션으로 빚어지는 경제 거래의 불안이 사회, 정치 불안까지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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