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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 뇌를 속여 분위기 연출

인간의 후각은 오감 가운데 가장 신비롭고 은밀하다. 후각은 분위기와 감정을 좌우하는데, 그것은 바로 연상학습과 관련이 있다. 코의 냄새 신경세포는 뇌의 변연계에 존재하는 편도체와 해마에 연결돼 있다. 편도체는 감정을 만들어 내고 해마는 연상학습을 담당한다. 이때 냄새만이 감정과 추억을 자극한다.

신동호 | 월간 <과학동아> 편집장 dongho@donga.com


후각은 분위기와 감정을 좌우한다
흔히 우리는 냄새를 잘 맡는 사람을 ‘개코’라고 부른다. 개는 후각신경 세포의 숫자가 사람보다 훨씬 많아 약 1백만 배나 냄새에 예민하다. 사람의 코는 개뿐 아니라 대부분의 포유류나 파충류의 코보다 못하다. 사람도 동물처럼 기어다닐 때에는 코가 좋았지만 진화과정에서 꼿꼿하게 서서 걷게 되면서 코의 성능이 형편 없게 퇴화됐다. 대신 눈이 발달했기 때문에 우리 뇌에서 후각중추가 차지하는 비율은 뇌 전체의 0.1%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인간의 후각은 오감 가운데 가장 신비롭고 은밀하다. 시각은 냉철한 감각인 반면 후각은 분위기와 감정을 좌우한다. 사랑할 때도 후각은 결정적인 중매자 역할을 한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홍차에 적신 과자의 냄새에 이끌려 어린 시절 고향을 찾아 시간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냄새가 분위기와 추억을 이끌어 내는 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한다.

실제로 2001년 미국 모넬 화학감각연구센터의 레이첼 헤르츠 박사는 이 현상을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연구팀은 사람들에게 사진과 특정 향을 함께 제시한 다음, 나중에는 향만 맡게 했을 때 사진을 볼 때의 느낌을 훨씬 더 잘 기억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므로 어린 시절 뇌에 입력된 마들렌 과자의 냄새 기억은 당시의 다른 여러 기억들과 함께 하나의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연결돼 있었는데, 냄새 기억이 자극되자 이와 연결돼 있는 다른 기억들이 연결되면서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 것이다.

거꾸로 다른 기억을 자극하면 그와 연결된 냄새 기억이 되살아날 수 있다는 실험결과도 있다. 역(逆) 프루스트 현상인 셈이다. 영국 런던대 제이 고트프리드 교수는 헤르츠 박사팀에게 사진과 특정 향을 함께 보여준 뒤, 나중에 향 없이 사진만 보여줬을 때도 사람들의 뇌에서 냄새를 처리하는 부위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트프리드 박사는 “이번 연구는 하나의 기억으로 연결된 시각, 청각, 후각 정보가 한데 모여 있지 않고 뇌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뇌에 분산돼 있는 하나의 감각 기억만 자극해도 이와 연결된 전체 기억이 재생되는 것이다.

최근 뇌과학의 중심 연구 주제는 뇌의 각 부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기억들을 연결시켜 하나의 온전한 기억으로 만드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밝혀낸다면 자아의 정체나 사고의 본질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냄새는 어떻게 분위기를 좌우할까? 비밀은 연상학습에 있다. 예를 들어보자. 수술을 받았던 환자 중 나중에 병원 냄새만 맡아도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병원의 포르말린 냄새가 수술을 기다리면서 불안 ·초조했던 감정과 함께 학습됐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병원 냄새만 맡아도 조건반사처럼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코의 냄새 신경세포는 뇌의 변연계에 존재하는 편도체와 해마에 연결돼 있다. 편도체는 감정을 만들어 내고 해마는 연상학습을 담당한다. 다른 감각은 이처럼 감정과 연상학습을 담당하는 뇌 부위와 연관되어 있지 않다. 오로지 냄새만이 감정과 추억을 자극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후각 유전자 활성화 정도 달라
세계 각국 어디를 가도 그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과 취향이 다르다. 그만큼 냄새에 대한 선호도는 문화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도 후각의 독특한 특징이다. 미국에서는 ‘노루발’풀이 캔디의 민트 향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미국인은 이 향을 매우 좋아한다. 반면 영국인에게는 과거에 이것이 진통제로 쓰였던 경험이 있어 별로 유쾌한 느낌을 주는 향이 아니다.

냄새는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에도 영향을 준다. 좋은 냄새가 나는 환경에 있게 되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환경에서는 객관적인 판단 능력을 잃게 되며 욕구 불만 상태에 빠지게 된다. 냄새는 무드, 일의 능률, 행동 패턴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것이다.

후각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개인마다 편차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개성만큼이나 취향도 다양하다. 실제로 유럽의 조향사들이 맡을 수 있는 화학물질 냄새를 한국의 조향사는 맡지 못하는 경우가 꽤 있다. 한국인은 황진이가 즐겨 썼다는 사향노루 향 즉 머스크 향을 유난히 좋아한다. 하지만 머스크에 대해서는 ‘취맹’이 있어 향수회사들은 조향사를 채용할 때 매우 까다로운 냄새 테스트를 거친다. 식물의 아로마 향은 서구에서는 대중적이지만 한국에서는 특별한 부류만 좋아한다.

이스라엘 와이즈만 과학연구소 도론 란셋 교수는 2003년 유전학 잡지 <네이처 지네틱스>에 왜 이처럼 사람마다 후각에 큰 차이가 있는지 규명해 논문으로 발표했다. 사람의 코로 들어온 분자 형태의 냄새와 향은 콧속의 후각 수용체가 감지해 뇌에 전달한다. 후각 수용체를 만드는 유전자는 종류가 1000개나 된다. 각각의 수용체는 제각각 다른 냄새에 대해 반응한다. 따라서 인간은 1만 가지나 되는 냄새를 구분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후각 수용체 유전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사람의 후각이 퇴화하면서 지금은 쓰이지 않고 있다. 인간이 네 발로 기어 다니다가 두 발로 서서 걷게 되면서 후각 유전자의 스위치를 꺼버린 것이다.

란셋 교수는 사용중인 나머지 후각 유전자 가운데 50개 가량은 개인에 따라 활성화 정도가 저마다 달라 똑같은 후각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인체에는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유전자 집단이 여럿 있다. 시각 유전자, 생체시계 유전자, 청각 유전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후각 유전자처럼 개인에 따라 유전자의 활성도에 큰 차이가 나는 유전자 집단은 드물다. 물건에 제각각 다른 바코드가 찍혀 있듯이 사람도 취향의 바코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란셋 교수는 또한 후각 유전자의 활성화 패턴, 즉 취향이 개인뿐 아니라 민족 집단 간에도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화장품, 향수, 음식, 음료 회사에는 냄새 평가사와 조향사가 있어 이들이 소비자를 대신해 매일 냄새를 판단한다. 란셋 교수는 앞으로 이들 회사는 DNA칩으로 조향사나 냄새 평가사의 후각 유전자를 분석해 채용하고, 개인의 취향에 맞는 ‘맞춤식 상품’을 개발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보고 있다.

냄새는 사랑을 이끌어 내는 묘한 마력이 있다
지나가다 우연히 지나가는 여인의 향수 냄새를 맡았을 때 자신의 연인에 대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도 바로 냄새의 강력한 기억 효과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장품과 향수는 사랑에서 빠질 수 없는 조미료 같은 존재다. 향수나 화장품을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냄새의 일관성이다. 향수, 로션, 분, 크림 등이 일관성 있는 비슷한 계열의 향을 지니고 있어야 파트너에게 혼란을 주지 않는다.

생물이 만들어 내는 가장 강력한 냄새인 페로몬은 극미량으로도 성 행동을 유발한다. 암나방의 페로몬 몇 그램이면 전세계의 수나방을 모두 끌어들일 수 있을 정도로 페로몬의 힘은 강력하다. 페로몬을 감지하는 콧속의 서골비기관의 신경을 마비시킨 수컷 쥐는 발정 난 젊은 암컷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암컷들의 신호를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동물적인 감각이 사람에게도 존재할까? 사람이 페로몬을 분비하는지 또는 이를 감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여성들이 함께 생활하면 생리 주기가 비슷해지는 등 페로몬의 영향으로 볼 만한 증거들은 꽤 있다.

실제로 페로몬을 사용하면 여성의 성적 행동이 눈에 띄게 증가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맥코이 교수는 페로몬이 들어간 향수를 사용한 여성의 대부분에게서 키스나 성교의 횟수 등 성적 행동이 3배 이상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2002년 <심리 및 행동 저널>에 발표했다. 실험 결과 페로몬 향수를 사용한 여성의 경우 74%가 성적 행동이 증가한 반면 가짜 페로몬을 이용한 여성은 23%에 그쳤다. 한 여성은 페로몬 향수를 사용하기 전에는 1주일에 하루 정도 남성과 키스나 애무를 하던 것이 사용 후에는 무려 6일로 증가했다.

또한 남성의 땀 냄새가 여성의 기분을 편안하게 해 남성과 관계를 맺기 쉽게 한다는 연구도 있다. 미국 모넬 화학감각연구센터 조지 프레티 박사는 남성의 겨드랑이에서 나온 땀에서 페르몬으로 추정되는 성분을 추출한 뒤 여성들에게 냄새를 맡게 했다. 여성들은 남성의 땀 냄새를 알아차리지 못했으나 땀 냄새를 6시간 동안 맡은 여성들은 실험을 하기 전보다 기분이 편안해지고 긴장이 많이 풀렸다. 긴장이 풀어진 여성들은 남성과 관계를 맺기가 더 쉬우며 배란을 앞당겨 임신을 더 쉽게 하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페로몬 신호를 받아들일까? 미국 록펠러 대학 피터 몸베르츠 교수팀은 페로몬 수용체의 유전자를 찾아내 2001년 과학 잡지 <네이처 지네틱스>에 발표했다. 이 유전자가 실제 사람의 후각 점막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페르몬의 정체 연구중
과연 사람의 페로몬은 정체가 무엇일까?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는 상태다. 그 동안 많은 연구자들은 사람의 몸을 샅샅이 뒤져 페로몬 후보물질들을 탐색해 왔다. 겨드랑이나 생식기 주변의 땀, 오줌, 질 분비물 등에서 찾아낸 각종 후보물질들만 수십 종에 이른다. 그 결과 이 중 일부는 사람의 생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여자의 겨드랑이에서 얻은 땀을 코밑에 바를 경우 월경 주기가 바뀐다는 연구 결과가 1998년 과학 잡지 <네이처>에 실려 인간 페로몬의 실체를 과학계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됐다.

뿐만 아니라 정자도 냄새를 맡고 난자가 있는 곳을 향해 돌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독일 루르 대학 마르크 스퍼 교수팀은 정자도 냄새 수용체를 갖고 있어 이 ‘화학 센서’의 도움으로 유인물질을 향해 헤엄쳐 간다고 미국의 과학 잡지 <사이언스>에 2003년 발표했다.

시험관에 인공적인 유인물질을 주자 정자들은 이 물질이 많이 있는 방향으로 마치 벌이 꽃을 향해 날아가듯 일제히 헤엄쳐 갔다. 이 유인물질이 정자의 냄새 수용체와 결합하게 되면 정자는 칼슘이온을 외부에서 더 많이 받아들여 왕성하게 섬모 운동을 하게 된다. 정자에서 발견된 냄새 수용체는 코의 감각세포에 있는 수용체와 비슷해 이것이 페로몬의 신비를 푸는 하나의 단서가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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