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계 학교 활성화에 대해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에 최근 우리 가족이 겪은 내용을 첨가하면 실감이 나고 이해가 빠를 것 같아 약간 언급하기로 한다.
우선 예전과 달리 극도로 심각해진 실업계 고등학교에 대한 편견을 불식해야 한다.
필자의 아들이 전주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한 이후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중학교 1학년생인 조카가 삼촌에게 하는 말, “삼촌은 돌았나봐. 공고가면 나쁜 애들만 있고 깡패 돼서 나오는데….”, 아이 친구들의 말, “너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는데 인문계를 가지 않고 왜 공고를 가니, 미쳤냐?”, 복도에서 만난 학교 선생님들은 “신경택, 아깝네….”, 일부 언론에 나온 기사제목을 보면, “우등생이 공고를 간 까닭은”, “중학교 최상위급 학생 공고에 입학, 신선한 충격” 등등 부정적인 생각 일색이었다.
이런 편견은 몇 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국가 정책이 양산한 것이다.
실업계 중에서도 공업고의 육성을 위해 1970년대 중·후반부터 ‘공업인은 나라의 초석’이란 구호를 내걸고 많은 공업학교를 만들었다. 실제로 그들이 이 나라의 공업입국에 초석이 된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IMF 이후에 제일 먼저 구조조정 대상이 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공계의 석학들이 줄줄이 옷을 벗고 자기의 학식과 기술을 사장시키게 된 기막힌 현실에 직면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인문계에서 실업계로 전환시킨 학교는 얼마나 많으며, 소도시 인문계 고교에 정보처리와 관련된 학과들을 신설하면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였는가? 그러나 10년도 안 돼서 그들이 설 땅이 없어졌다. 부전공을 이수하여 상업계열에 근무하던 교사들은 앞날을 걱정하고 있다. 구조조정 1순위로 지목되며, 또 다른 부전공 준비를 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속상한 일이다. 이렇게 실업계 학교 붕괴는 달면 먹고 쓰면 뱉는 근시안적 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학교에서부터 충분한 직업교육과 진로지도가 이뤄져야 하며 학부모들의 잘못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도 변화하는 산업사회에 적응하기 위하여 시대의 흐름에 맞는 학과 개편을 통하여 나름대로 전문 분야로의 발돋움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2005학년도 공업고등학교 신입생 접수 상황을 보면 중학교 3학년 담임교사와 학부모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학교의 특성을 살피지 않고 무조건 성적순으로 1순위는 인문계고, 2순위는 국립 공업고, 3순위는 공립 공업고 등식을 세워 지원하고 있다. 인문계 고교 지원은 논외로 하고 국립과 공립 공고 간의 2분법에서 탈피해야 하는 이유를 들기로 한다.
분명 양교에는 차별화된 학과가 있으므로 특기와 적성에 맞춰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립공고에 없는 건축디자인과, 환경화학공업과, 통신과가 공립 공고인 본교에는 있다. 그렇다면 2순위에 들더라도 건축디자인을 공부하고 싶으면 당연히 본교에 입학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원서 접수하는 걸 보면 성적순으로 1, 2, 3순위를 따져 마치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구분하려 하는 점이 안타깝다.
고등학교에서도 대학처럼 학교나 학과의 홍보자료를 제작하여 해당 지역에라도 홍보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제도적으로 홍보비 예산을 확보하여 올바른 진로지도가 수험생들에게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무지에서 비롯되는 1, 2, 3순위별 일률적 지원은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의 능력과 적성을 고려한 진로 지도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중학교 시절은 인생에 있어서 첫번째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인문계에 다니다 적응하지 못하고 실업계로 전학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 역시 진로 설정을 신중하게 못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그들과 상담해 보면 대부분 진학 당시에는 부모님과 담임교사의 영향이 가장 컸다고 한다. 모든 학생이 공부를 다 잘 할 수는 없다. 또 잘 한다고 누구나 법관이나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들의 의식과 부모들의 의식의 차이가 없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부모들의 생각에 자녀들이 따라오게 해서는 안 된다. 내 아이가 무엇을 잘 하는지, 취미는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깊게 생각해야 한다.
“아빠, 엄마나 외삼촌은 한의사가 되기를 원하시는데 저는 이공계 분야에서 최고의 실력자가 되고 싶어요. 아빠 생각은 어떠세요?” 처음에는 생각이 복잡했지만 아이를 믿고 밀어주기로 결심했다.
아들이 잘 적응하여 자신이 생각한 대로 3년 후 대학을 선택할 때, 주변 학부모들의 인식이 바뀔 수 있기를 바란다.
실업계 고교의 활성화는 우리의 주변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좀 더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려는 노력과, 그에 부합하는 학교의 변화 그리고 학부모와 중학교 선생님들의 제대로 된 진로 지도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제2의 실업계 고등학교의 부활을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