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내가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퍼뜩 놀라게 된다. 내가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은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 이런 식으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 결국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단 한 명도 변을 당해 대가 끊이지 않고 자식을 낳아 잘 키웠다는 것을 뜻한다.
DNA 통해 ‘이브 가설’ 입증 과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약 15∼20만 년 전에 태어났다고 하니까 나는 아담과 이브의 1만 대 후손에 해당한다. 결국 2만 명이나 되는 직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것이니 이 분들을 모두 초청하면 아마 장충체육관을 빌려도 모자랄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인류사의 99%를 석기 시대 사람으로 살았다. 이 기간 동안 태어난 아기가 야생 짐승에게 잡아먹히거나 전염병으로 죽지 않고 성년인 20세까지 살 확률은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내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할 수 있는 확률은 0.5를 계속해서 1만 번 곱해야 나온다. 이 숫자는 아마 사막에서 모래 한 알을 찾는 확률보다 낮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1만 세대 가운데 처음으로 아담 할아버지와 이브 할머니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된 최초의 세대이다. 우리는 정말 행운아인 셈이다.
모든 현대 여성이 15만∼20만 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여성으로부터 기원했다는 이론을 흔히 ‘아프리카 기원론’ 또는 ‘이브 가설’이라고 한다. 이 학설은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분자생물학자인 앨런 윌슨 박사가 다양한 인종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 1987년에 내놓아 ‘다지역 기원론’을 믿어왔던 인류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도대체 어떻게 DNA만 가지고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기원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미토콘드리아 DNA에 있다. 사람 세포는 핵 속에 인체의 설계도를 담은 DNA를 갖고 있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세포 내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는 1만6500개의 염기로 구성된 자신만의 DNA를 갖고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핵 속의 DNA와 달리 어머니에서 딸한테 모계로만 유전되면서 조금씩 돌연변이가 일어난다. 따라서 현재 지구 전체에 살고 있는 다양한 인종의 미토콘드리아 DNA의 돌연변이 정도를 조사하면 인류 최초의 어머니인 이브가 언제 탄생했는지 알 수 있다. 특이하게도 아프리카 인종 집단 내에서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유전적 다양성이 다른 대륙의 아시아인, 백인 집단보다 훨씬 높다. 이를 통해 동부 아프리카인 케냐와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인류가 출현해 여러 갈래로 인종 집단이 나뉘고, 이 중 일부 집단이 다른 대륙으로 진출했다는 것을 알아냈다.
남성도 아프리카에서 최초 출현 이어 1995년 미국 애리조나 대학의 마이클 해머 교수팀은 남성을 통해서만 유전되는 Y염색체를 분석해 전 세계 남성이 18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 살았던 한 아버지에게서 유래했다고 발표했다. ‘이브’에 이어 ‘아담’도 찾아낸 것이다.
흔히 현대인을 황인, 흑인, 백인종 등 3개의 인종 집단으로 나누지만 이는 피부색으로 나눈 것일 뿐 유전자로 보면 훨씬 다양하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인류유전학자 브라이언 사이키스 교수는 2001년 ‘이브의 일곱 딸들’에서 전 세계의 미토콘드리아 DNA형을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퍼져 나간 33개 집단으로 분류했다. 이중 유럽인은 7개 집단, 아시아인은 6개 집단이다. 그래서 유럽인은 7명의 딸로부터 유래했고, 동양인은 6명의 딸로부터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사이키스 교수는 미토콘드리아 DNA 유전자를 분석해 자신이 러시아 니콜라스 황제와 핏줄이 연결돼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 인물이다.
아프리카 기원론이 나오기 전까지 인류학계에서는 180만 년 전부터 각 대륙에 살던 직립 인간, 즉 호모 에렉투스가 각각 독자적인 진화의 길을 걸어 오늘날의 다양한 인종 집단이 됐다는 다지역 기원론이 대세였다. 하지만 아프리카 기원론이 등장하면서 다지역 기원론은 퇴출 일보 직전까지 몰린 상태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서 발견된 수십만 년 전 자바원인의 두개골 화석을 분석한 결과 이들은 현대인의 직접 조상이 아니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필자만 하더라도 수십만 년 전 아시아에 살았던 자바원인이나 베이징원인이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의 직계 조상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내려져 가고 있는 것이다.
1856년 독일 네안데르탈 계곡 동굴에서 처음 발굴된 네안데르탈인도 아프리카 기원설이 등장하기 전까지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이라고 믿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독일의 인류유전학자인 스반테 파보 박사가 1997년 이 네안데르탈인 화석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추출해 분석한 결과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공통점이 없는 전혀 별개의 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는 50만∼60만 년 전에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사촌지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프리카에 출현한 호모 사피엔스가 각 대륙으로 대탈출을 시작한 것은 5만 년 전쯤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때 이미 네안데르탈인은 유럽과 중동 지방에 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은 어떻게 해서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그동안 다지역 기원론을 지지하는 인류학자들은 네안데르탈인이 멸종한 게 아니라 현생인류와 피가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흡수됐다고 생각해 왔다.
네안데르탈인과 별개인 현생인류
하지만 현생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DNA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 네안데르탈인의 몰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과 함께 살던 시기에 네안데르탈인은 꾀바른 현생인류와 대항해 살아남기 위해 매우 복잡한 도구 기술을 급속도로 개발해 낸 흔적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인들이 천연두를 퍼뜨려 면역성이 없는 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살시켰듯, 현생인류가 네안데르탈인에게는 면역성이 없는 질병을 퍼뜨려 멸종시켰을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에서 출현한 최초의 인류는 어떤 모습이고 어떻게 살았을까? 그 모습은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16만 년 전의 가장 오래된 현생 인류의 두개골 화석을 통해 더듬어 볼 수 있다.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 생물학자인 팀 화이트 교수팀은 동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강가 계곡에서 현생인류의 직계 조상으로 보이는 16만 년 전의 화석을 발견해 어른 2명과 어린이 1명의 두개골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2003년 발표했다. 아프리카 기원설의 가장 큰 약점은 DNA 증거는 있지만 화석 증거가 없다는 점이었다. 특히 10만∼30만 년 전의 인류 화석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잃어버린 고리를 드디어 발견한 것이다. 이 중 가장 완벽하게 복원한 남자 어른의 두개골은 현대인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했다. 구인류는 원숭이처럼 눈썹 부위의 뼈가 툭 튀어나와 있지만 이 두개골은 덜 튀어 나왔다. 두개골의 크기는 현대인보다 약간 컸다.
화석은 발견된 지역의 말로 ‘형님’이란 뜻의 이달투를 붙여 ‘호모 사피엔스 이달투’로 명명됐다. 함께 발견한 수백 개의 석기와 물소 뼈를 통해 볼 때 이들은 복잡한 손도끼와 돌날로 하마나 물소의 살을 잘라내 육식을 했고 식물을 이용할 줄 알았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물론 우리의 조상도 아프리카를 탈출한 사람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흔히 한국인은 순수한 단일민족이고 모두 단군 자손이라고 세뇌 교육을 받는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의 교과서를 보았더니 지금도 여전히 ‘단군이 홍익인간을 건국이념으로 해서 2333년 고조선을 건국했다’고 쓰여 있다. 신화를 진짜 역사처럼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지, 단일민족이란 그릇된 인식을 어려서부터 심어줘 외국인을 배타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한민족은 적어도 두 개 이상, 서너 개의 다른 인종이 융화돼 형성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금은 더 우세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외국인이 귀화를 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성씨 중 외국인이 귀화하면서 새로 만든 귀화인 성(姓)은 442개로, 286개인 토착성의 1.5배에 달한다. 공식적으로 집계가 되는 귀화 성씨만 하더라도 중국계를 위시해 여진, 위구르, 몽고, 일본, 베트남, 아랍계 등 의외로 다양하다. 조선 최고의 과학자로 꼽히는 장영실만 하더라도 고려 때 중국에서 귀화한 사람의 후손이다.
과학 기자로 일하면서 한민족의 기원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는 2002년과 2003년 여름, 국내 고고학자, 유전학자, 지질학자 등과 함께 한민족의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북방계 아시아인의 기원지라고 생각되는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 일대와 알타이 산맥을 답사했다.
비행기를 5시간이나 타고 가서 만난 시베리아 원주민이 우리와 구별이 어려울 만큼 얼굴이 비슷한 것을 보고 한민족의 주류가 북방계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부리야트족, 알타이족은 한국인처럼 북방계 몽골리안이다. 다리가 짧고, 두터운 지방층을 갖고 있다. 또 얼굴이 평평하며, 코가 낮고, 입술이 작고, 눈꺼풀이 두텁고, 눈이 가늘다. 이런 생김새는 열 손실이 적고 눈을 보호하기 때문에 추위에 강하다.
서울대 의대 이홍규 교수는 당뇨병을 연구하면서 북중국인, 한국인, 일본인의 유전자와 체질이 유사하다는 데 주목하고 1980년대 중반부터 유전자로 한민족의 뿌리를 찾는 일을 해오고 있다. 이 교수는 ‘추위에 적응된 북방계 몽골리안의 체질’이 빙하기 때 시베리아에서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1만 년 전 빙하기가 끝나기 전까지 오랜 기간에 걸쳐 북방계 몽골리안들은 시베리아의 어디에선가 매우 오랫동안 고립돼 살면서 추위에 적응된 체질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나라마다 민족 건국설화 갖고 있어 시베리아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은 이곳에 사는 소수민족들이 모두 우리의 단군설화나 금와왕 이야기와 같은 민족 건국설화를 저마다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터키에서 중앙아시아, 알타이 산맥을 거쳐 몽골과 만주, 한반도로 이어지는 알타이 문화권에서 말로 전해오는 구비문학이 우리의 전래동화나 민담과 모티브가 매우 유사하다. 알타이어 문화권은 지난 2000년 동안 흉노, 고구려, 돌궐, 몽골, 금, 청, 오스만 같은 대제국을 건설해 유라시아를 동서로 연결하며 대륙의 주인 역할을 해왔을 뿐 아니라 멀리 아메리카 대륙까지 개척했다.
그러나 한국인은 북방에서 온 북방계 몽골리안의 혈통만 이어받은 것은 아니다. 폴리네시아나 인도 등 남방계 아시아인의 유전자도 일부 섞여 있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사상의학을 창시한 이제마는 한국인의 체질을 네 가지로 구분했는데 이것도 한민족의 혼혈 특성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서울대 의대 이홍규 교수는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민족에게 남방계의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한국인의 미토콘드리아 DNA와 Y염색체를 분석한 서울대 홍성수 박사와 단국대 김욱 교수는 그 비율이 대략 15∼20%라고 생각한다. 홍 박사는 일본 학자들과 함께 서울과 제주에 사는 한국인의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했는데, 이 가운데14.5%는 폴리네시아 등 남태평양 토착민에게 나타나는 유전 형질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보면 한국인은 대체로 ‘북방계’ 몽고인종의 유전자를 이어받았지만, 남태평양 집단의 유전자도 15% 가량 이어받아 결코 단일 민족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국인 중에서도 북방계 남방계로 나뉘어 북방계와 남방계는 얼굴도 다르다. 미술과 해부학을 전공한 ‘얼굴 전문가’ 서울교대 조용진 교수는 한국인 가운데 80%는 북방계 그리고 나머지 20% 가량은 남방계의 얼굴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남방계는 진한 눈썹, 쌍꺼풀, 짧은 코와 큰 콧방울, 두터운 입술, 많은 수염, 네모난 얼굴, 굵은 머리카락, 검은 피부를 갖고 있다. 반면 북방계는 눈썹이 흐리고, 코는 길지만 끝이 뾰족하며, 쌍꺼풀이 없고 눈이 작으며, 입술이 얇은 게 특징이다. 고 정주영 씨, 정치인 권노갑 씨, 정대철 씨가 전형적인 북방계이고, 김우중 씨, 한화갑 씨는 남방계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쉬리에서 연기 대결을 벌인 한석규는 북방계, 최민식은 남방계 특징을 갖고 있다.
남방계나 북방계나 모두 아프리카에서 기원해 아시아로 진출한 것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방계는 빙하기 이전에 한반도 등 동아시아에 이미 들어와 살고 있었고, 북방계는 시베리아에서 오랫동안 빙하에 갇혀 있다가 약 1만 년 전쯤 빙하기가 끝나면서 서서히 한반도에 진출해 융합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많다. 한반도 최초의 주인은 북방계가 아닌 남방계였다는 것이다.
충무 앞바다의 욕지도와 연대도, 통영 앞바다의 늑도 그리고 오키나와의 패총과 유적에서 발견되는 두개골은 실제로 남방계의 특징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인종이 융합됐지만 주류를 이루고 지배층이 된 것은 북방계여서 남방계 혈통은 거의 흡수가 되다시피 했다. 하지만 남방계가 한국인의 유전 형질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준 것만은 분명하다. 환웅이 쑥과 마늘을 먹고 여인이 된 곰과 결혼해 한민족의 시조가 된 단군왕검을 낳는다는 단군신화는 북방계가 남방계 부족을 흡수 통합하는 과정을 상징한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다.
수만 년 동안 섬에 고립된 채 갇혀 살지 않는 이상 단일 민족은 만들어질 수 없다. 단일 민족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인간도 그렇거니와 생물은 한 지역에 오래 고립돼 외부의 유전자가 유입되지 않으면 급격한 환경 변화가 왔을 때 적응하지 못한 채 멸종하는 경우가 있다. 더욱이 인간은 먼 곳에서 인구가 유입되면서 다양한 기술과 문화 그리고 언어를 흡수하게 된다. 한민족이 외부와의 인연을 끊고 고립된 채 살았다면 아마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지도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