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2일은 걸스카우트 세계우애일이었다. 세계우애일은 스카우트 운동의 창시자인 B-P경과 그의 부인이자 걸스카우트 세계단장인 올러브 베이든 포엘 여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날이다. 이 날은 전 세계의 모든 걸스카우트가 세계적인 운동체인 걸스카우트 세계연맹의 일원임을 다시 한 번 인식하면서 걸스카우트를 위해 새로운 기능을 익히고 활동할 기회를 갖는 걸스카우트 축일이다.
B-P경은 1928년 헝가리 파라드에서 처음 걸스카우트세계연맹이 결성되었을 때 “나의 소망은 가장 가까운 장래에 세계에서 그 누구도 보지 못했던 선(Good)을 위해 걸스카우트 운동체가 활동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 여러분 앞에는 향후 세계 평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중요한 발걸음을 시작할 책임과 기회가 놓여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B-P경의 소망은 이루어져 걸스카우트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조직체로 성장하였고 더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활동하는 대표적인 운동체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걸스카우트와 함께한 시간도 어언 22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교단에 선 시간과 같다. 처음 교직에 발을 내디디면서 아이들과 함께 들에서, 산에서 자연을 벗 삼아 호연지기를 키우며 미래의 세계를 이끌어 나갈 꿈나무들과의 만남을 허락한 시간들이었다. 선서와 규율을 생활하며 적어도 하루에 한 가지 착한 일을 해야 하는 일일일선(一日一善) 표방이 너무 매력적인 요소로 끌려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기본 지도자 훈련 과정을 마치고 성인 대원으로서 첫 선서할 때의 감동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그때 나는 타오르는 촛불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하였다. 미래의 세계를 이끌고 나갈 젊은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다고. 그리고 젊은이들을 인도할 수 있는 지혜와 인내를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주마등처럼 아련한 추억들이 잔잔하다. 처음 유녀대를 맡아 한라산에서 야영을 할 때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표고밭에서 온밤을 지새웠던 일은 제일 힘든 야영으로 기억된다. 요즘은 시설에서 갖추어진 프로그램에 의해 전문 지도자가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지금도 일 년에 한 번은 제주 연맹 자체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기도 함). 혼자 40여 명의 대원들을 데리고 깊은 산속에서 야영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아직도 대견하게 느껴진다. 어디서 그런 열정과 배짱이 나왔을까? 그런데 이렇게 좋은 추억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골 학교에 있을 때이다. 뒷뜰 연합야영이 끝나고 주변 정리도 거의 마무리될 쯤, 쓰레기 소각장에서 야외용 부탄가스버너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마침 쓰레기를 버리러 근처에 서있던 걸스카우트 대원 한 명이 얼굴에 심한 화상을 입은 것이었다. 물론 옆에 있던 동료 교사도 얼굴과 목 등에 심한 화상을 입어 인근 병원에 수송하여 장기간 치료를 받은 사고였다. 보험처리로 치료비는 해결되었지만 향후 얼굴에 생기는 흉터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학부모 요구 앞에 정말 몇 달간은 학교 출근하기가 두려웠었다. 다행히 지역 학부모님들의 적극적인 이해와 협조로 무사히 마무리되었지만 그때 당시는 왜 내가 이런 단체 활동을 맡아 고생을 사서 하는지 무척 후회가 되었고 다음에는 맡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걸스카우트의 상징인 ‘초록의 물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무슨 미련이 있는지…. 지금은 연맹소속의 훈련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의 다양한 노하우로 이제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어도 두려움 없이 개척해 나가는 용기와 지혜가 생겼다.
미래는 도전하고 개척하는 자의 몫이다.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땅의 기운을 느끼며 여명 속에 서서히 빛나는 새벽안개 풀잎에 머금은 영롱한 이슬을 세어보지 않고, 타오르는 화톳불 속으로 여름밤의 열기를 사르며 밤하늘의 별을 헤어보지 않은 자는 야영의 참 묘미를 모른다.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와의 신비한 속삭임으로 내 영혼을 씻을 수 있었다. 나는 특별히 운동을 한다거나 몸에 좋다는 음식을 일부러 가려 먹는 생활은 하지 않는다. 나의 영혼과 육체의 건강한 삶의 비결은 바로 대자연에서의 호연지기를 가꾸며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 있었음에 가능하였다. 답답한 일상들을 정리하고 다시 새롭게 미래를 계획하며 진정 나를 돌아볼 수 있는 나만의 여유로운 시간들을 만끽하였다고나 할까. 이제는 더욱 고귀한 시상(詩想)을 얻는 매개체가 되니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되었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나의 행복이니 이런 나의 걸스카우트 ‘초록 사랑’은 교단을 떠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세계우애일을 맞이하여 규율초와 단원 선서초가 타오르는 촛불 행렬을 보며 행복감에 젖었던 순간을 회상해 본다. 우애일 주제가 ‘음식’인 만큼 기아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날 하루 기아체험에 도전해 보았다. 이는 바로 책임 있는 세계시민으로 한걸음 나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음식이 우리를 건강하게 만들고 기쁨과 즐거움을 주듯이 걸스카우트의 활동도 음식체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한국걸스카우트 조선형 총재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제2의 비상을 준비하는 대원이자 지도자가 되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