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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정세와 한문교육의 중요성

이명학 / 성균관대 한문교육과 교수



우리나라와 중국․일본․베트남은 과거 이른바 한문문화권(漢文文化圈)에 속했던 나라이다. 한자를 표기 수단으로 각 민족은 자신들의 사상과 생활 감정을 표현했으며, 동일한 문화적 기반 위에서 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로 이들 나라는 각기 다른 역사적인 경험을 하게 되며, 문화적 공동체의 기반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중국은 서구 열강 및 일본의 침략 속에서 결국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고, 일본은 서구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근대 국가의 면모를 갖추었으나 팽창주의로 치달으며 동아시아의 가해자가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은 일본과 프랑스의 강압적인 식민통치를 겪은 뒤 이념의 첨예한 대립과 갈등 속에 남․북 분단이라는 비극을 겪었다. 따라서 근․현대의 굴절된 역사로 인해 과거 한문문화권에 속했던 나라는 이념의 대립 속에서 수십 년 간 단절된 채 지내게 되었다.

다행히 20세기 후반 냉전체제의 종식과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동아시아 정세는 새로운 양상을 띠게 된다. 즉, 우리나라와 중국․베트남과의 국교 수립으로 동아시아 국가는 이전과 달리 활발한 교류가 시작되었다. 경제적인 교류가 확대되면서 동아시아는 ‘지역경제체제’로의 전환을 모색할 정도가 되었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은 2005년 4월 개최된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아시아경제공동체’ 건설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변화 속에서도 오랜 기간 이질적인 사회체제와 불행했던 역사 경험, 그리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유대에 걸림돌이 되었다.

이러한 시기에 한자․한문교육은 과거 한문문화권 국가 간의 관계를 새로운 차원으로 복원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과 필요성이 제기된다. 주지하다시피 중국․베트남과의 인적․물적 교류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있으며, 일본과의 문화적인 교류도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 한문문화권에 속했던 나라는 아직도 한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한자를 써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물론 한자를 많이 알면 그만큼 이들 국가의 언어를 공부하는데 유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울러 한자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 자연히 동아시아 상대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과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자교육의 현실적인 필요성이며, 최근 한자 학습의 열기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살펴보면,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초보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한자교육과 함께 동양의 전통 문화와 사상을 담고 있는 고전을 통해, 한문문화권에 속했던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문화 전통과 가치관을 재해석하고 공감하는 것이다. 즉, 동일한 문화적․역사적 체험위에 각 민족 간 상호 교류와 이해의 폭을 넓히며, 이를 통해 국가 간 공고한 신뢰와 진정한 유대를 기대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자․한문교육은 동아시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의 불리함을 공동으로 극복하고, 국가 간 정치․경제․문화적인 연대를 강화할 수 있는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다.

최근 중국과 일본에서 불거지고 있는 역사왜곡 문제 특히 영토 문제는 한․중․일 간의 첨예한 이슈로, 자칫 잘못하면 이것으로 인해 이 지역의 평화와 유대는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왜곡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굴절된 동아시아의 근현대사에 기인한다. 이들 나라는 자국중심으로 역사를 해석하여 정치․경제적인 이득을 보려고 하고, 각 민족은 이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보다 배타적인 민족주의에 입각하여 문제를 바라보고 감정적으로 대응한다는데 더 큰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향후 동아시아 사회의 평화 공존과 긴밀한 유대 관계는 기대할 수 없다.

동아시아 각국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자에 기반을 둔 한문문화권에서 오랜 세월 생활을 해왔다. 각국의 동일한 정신적 토대와 문화적 기반은 바로 한문이다. 차제에 동아시아 각국에서 오랜 세월동안 읽혀왔던 동양의 고전 중에서 특히 각국에서 인구에 회자되는 <漢文 名句>를 각국 별로 모으고, 또한 각국 사람들이 즐겨 암송하거나 익히 알고 있는 자기 선조의 <漢文 名句>를 한 곳에 모아 통합 교과서에 준하는 책으로 편찬할 것을 제안한다.

이 책을 통해 미래 동아시아 사회의 주역이 될 각국의 젊은이들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결국 동일한 문화 전통 속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 왔으며 또 앞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상황을 통찰할 수 있다면 역사왜곡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자․한문교육이 현재까지도 여전히 중요하고 유효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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