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는 만 14세가 되면 파트파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학기 중에도 방과 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빵집이나 슈퍼마켓 등에서 용돈 벌이를 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다 방학이 되면 일하는 시간을 늘려 돈 버는 재미와 노동의 가치를 보다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일자리 얻기가 쉽지 않다.
어느 나라가 비슷하겠지만 호주 학생들의 새해는 방학으로 시작된다. 호주 학제는 총 4학기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차례에 걸쳐 방학을 하게 된다. 그 중 7월 중순 경에 시작되는 겨울 방학과 12월의 여름 방학이 상대적으로 길며, 특히 여름 방학은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장 느긋한 시간을 제공한다.
한국과는 계절이 반대인 호주는 1월이 가장 더운 때이며, 따라서 지난 해 12월 중순부터 시작된 두 달간의 긴 여름방학도 올 1월을 기해 절정에 올랐다. 호주 학생들의 방학생활은 초․중고생들 간에 큰 차이가 없다. 말하자면 방학기간 중에 해야 할 숙제나 과제물, 일기쓰기 등이 전혀 없고, 부족한 학과의 보충이나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이나 개인 과외수업을 받는 일도 없다.
대학 입시가 코앞에 닥친 예비 고3생(11학년)들도 방학이라 해서 공부에 시간을 쪼개는 일은 거의 없다. 대신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가 맞물리는 이맘 무렵이면 학생들 뿐 아니라 인구의 절반이 휴가에 취해 국토 전역을 누비면서 거국적인 휴가행렬이 절정에 달한다. 새해란 모름지기 ‘일단 놀면서 시작하고 볼 일’이라는 듯 나라 분위기가 온통 이러하다 보니 학생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게다가 졸업식과 대학입학시험 결과 발표까지 해를 넘기지 않고 12월 방학 전에 모두 마친 상태이기 때문에 1월 한 달은 가족들과 느긋하고 부담 없는 휴가를 보낸 후 2월 초에 바로 새 학년, 새 학기를 시작한다. 이처럼 공부와는 거리가 먼 방학이지만 이 때를 이용한 학생들의 아르바이트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호주는 법적으로 만 14세가 되면 파트 파임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데, 학기 중에도 방과 후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빵집이나 커피숍에서 판매 일을 하거나, 햄버거, 피자 등 패스트푸드점과 문구류 취급점, 슈퍼마켓 등에서 용돈 벌이를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러다가 방학이 되면 일하는 시간을 늘려 돈 버는 재미와 노동의 가치를 보다 많이 경험하게 되는데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리기 때문에 일자리 얻기 경쟁이 예사롭지 않다. 보통 6개월에서 1년 전에 지원서를 내놓고 연락을 기다린 후 기회가 주어지면 다수의 경쟁자를 제치고 면접을 통과해야 비로소 본격적인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중․고생들의 급여수준은 시간 당 대략 9달러(약 7200원) 정도로 방학 중에 꼬박 일한 돈을 모아 평소에 갖고 싶었던 것을 사기도 하고, 어떤 학생들은 한 푼도 쓰지 않고 몇 년을 꾸준히 모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중고 자동차를 사거나 외국 여행 경비를 마련하는 알뜰 계획파도 있다.
돈벌이를 처음 시작함과 동시에 납세번호가 발급됨에 따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에 대해서 꼬박꼬박 세금을 냄으로써 학생들은 사회생활의 한 단면을 경험한다. 법적으로 일할 자격이 주어지는 중․고생들 뿐 아니라 용돈을 벌기 위한 초등학생들의 열성도 이에 못지않다.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일거리는 세제와 양동이를 들고 집집을 돌면서 차를 닦아 주거나 잔디 깎기, 쓰레기통 수거 등을 비롯해서 애완견 산보시켜주기와 동네에서 휴가간 집에 남겨진 애완동물 돌보기 및 먹이주고 놀아주기 등 앙증맞은 아이디어도 있다.
특히 방학 중에는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하는 시간도 가질 겸해서 가족단위로 가가호호 광고 전단지를 돌리는 일도 있다. 5 내지 10종 가까이 되는 각종 광고지와 무가로 배포되는 지역신문 등을 담당 배포 구역 어귀까지 부모가 차에 싣고 날라다주면 자녀들끼리, 혹은 부모와 자녀가 한 조가 되어 각 가정을 돌면서 우체통에 인쇄물을 꽂는 것이다. 아이들을 도울 겸 따라나선 부모들은 산보삼아 동네의 수 십호, 수 백호를 돌아다니는 동안 다이어트와 운동효과가 절로 나타나 돈도 벌고 건강도 챙기게 된다며 어린 자녀들의 아르바이트를 적극 반긴다.
한편 호주의 또 한 가지 색다른 방학 모습으로 휴가를 이용한 친지 방문을 꼽을 수 있다. 평소에 자주 뵐 수 없는 조부모나 친척들을 방학 기간 중에 방문하여 모처럼 대가족 속에서 여름휴가 한철을 보내는 것이다. 호주인들의 휴가개념은 보통 2주 정도, 길면 한 달 이상을 예상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2박 3일이나 길어야 일주일 정도 쉬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다보니 휴가를 겸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는 경우가 많다. 평소 핵가족 생활만 해오던 아이들에게 확대 가족의 의미와 친척, 친지들과의 다양한 관계와 의미를 자연스레 익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이다.
부부 중심으로 생활하는 서양인들은 흔히 가족에 대한 사랑이나 개념이 희박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도 되지만 호주인들의 끈끈한 가족사랑은 우리 못지않다. 앞서 지적한대로 이맘 무렵이면 나라 전체가 휴가 분위기로 술렁이는 가운데 가족간의 재회를 위해 국토를 종횡무진 누비는 일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벤트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런가하면 더러는 외국 여행으로 견문을 넓히고 다양한 경험을 쌓는 계기를 만들기도 한다. 호주 학생들이 선호하는 외국 관광지는 단연히 미국이 으뜸으로 개학 후 디즈니랜드를 다녀온 학생들 이 풀어놓는 여행담은 급우들의 인기와 부러움을 동시에 받는다. 그 밖에도 가까운 뉴질랜드나 발리를 비롯한 태평양 인근의 섬나라들과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가족단위 호주인들의 각광받는 관광명소에 속한다.
호주 학생들의 방학은 뜨거운 아르바이트 열기와 조부모 사랑과 사촌들과의 회합을 다지는 시간으로 대부분 채워진다는 점에서 학기 중보다 오히려 더 늘어나는 학원공부와 짓눌리는 과외수업에 시달리는 한국 학생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사뭇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