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 생태사진가
우리 새 이름 중에는 새소리와 겉모양의 특징을 잡아서 명명한 이름이 많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약 400여 종의 새 중에서 '말똥가리' 는 좀 특이한 이름이다. 말똥가리는 배 부분이 갈색이고, 여기에 넓고 누런 바탕이 따로 있는데, 그 모양이 말똥 같아 말똥가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보는 학자가 많다. 그러나 일부 학자 중에는 유달리 말똥말똥한 눈을 가져 그런 이름이 나왔다고 보는 이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호야생조류로 비교적 보기 힘든 겨울철새지만 번식지인 몽골초원에서는 말똥처럼 여기저기서 볼 수 있다.
우리에게 도움 주는 쥐 사냥꾼
인적 하나 없는 3000여만 평의 광활한 농경지에 먼동이 트면 말똥가리의 아침사냥이 시작된다. 겨울철 천수만은 맹금류의 낙원이다. 먹이가 되는 들쥐, 작은 새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먹이사슬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컷이 52㎝, 암컷이 56㎝ 정도 크기의 매목 수리과인 말똥가리는 봄, 여름에는 산지에서 번식을 하다가 겨울철에는 천수만 같은 평지에서 생활한다. 일정한 세력권을 가진 말똥가리는 인간에게 해로운 쥐들을 소탕하고 있다.
말똥가리는 30m 안팎거리에 있는 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게 관찰 할 정도로 시력이 발달해 있다. 시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감지 할 수 없는 색깔까지도 구별한다. 기류를 타고 선회하거나 약간의 정지비행을 하다가 먹이를 발견하면 날개를 반쯤 접고 곧장 내려와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쥔다. 그러나 사냥술은 매나 황조롱이보다 뛰어나지 못해 성공률이 상대적으로 낮다. 종종 죽은 동물의 사체도 먹는다.
텃새의 텃세엔 스스로 피해
큰말똥가리는 중부이남지역에서 주로 월동하며 철원평야나 해안 하천유역에서 드물게 볼 수 있다. 몸길이는 수컷이 61㎝, 암컷이 72㎝ 정도로 말똥가리 보다 크다. 육안으로는 이 둘의 차이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깃털 색깔의 변이가 심해 전문가들도 식별에 오류를 범하기 쉽다. 크기에 차이가 나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양자를 동시에 비교할 기회가 거의 없다. 일정한 세력권을 갖고 서식하기 때문에 한 구역에 동시에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큰말똥가리는 울음소리가 '삐이요'라고 다소 길다면 말똥가리는 '삐이'소리를 낸다.
하늘을 날 때 밑에서 보면 날개 앞 중간부분의 점이 큰말똥가리가 짙고 큰 점 같이 보인다면 말똥가리는 굵은 두 줄이 보인다. 큰말똥가리는 날 때 첫째 날개깃이 밝게 보이며 꼬리에 가는 줄이 있다. 맹금류인 말똥가리에 가장 귀찮은 존재는 텃새인 까치나 까마귀다. 까치나 까마귀는 자신의 세력권 안에 낯선 맹금류가 나타나면 근처의 까치들을 모두 불러 집단으로 공격한다.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보유한 말똥가리도 집단으로 덤벼드는 까치, 까마귀에는 속수무책이다. 몸놀림도 이들보다 유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근처에서 괴롭히면 스스로 피해 버린다.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등재돼
우리나라에는 말똥가리, 큰말똥가리, 털발말똥가리 등 3종이 서식한다. 말똥가리는 우리나라 전 지역에서 쉽게 관찰 할 수가 있지만 큰말똥가리, 털발말똥가리는 이따금씩 눈에 띈다. 특히 털발말똥가리는 북부지역에서 주로 월동하기 때문에 중남부지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다. 말똥처럼 흔했던 말똥가리도 이제는 그 개체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대부분의 맹금류가 그러하듯 생태계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들은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하위체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존립할 수 없는 것이 자연법칙이다. 이들의 먹이가 되는 작은 새 설치류, 양서파충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환경부지정 멸종위기 야생조류 중 2급 보호동물로, 국제적으로는 세계자연보존연맹 지정 멸종위기 적색목록 CITES 2에 등재되어 있다.
*날렵하게 들쥐 사냥을 하는 말똥구리의 모습을 새교육 4월호에서 감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