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권의 갈등으로 분쟁이 일어나면 어느 쪽의 교육권이 인정될까. 원칙적으로 법익형량(法益刑量)에 따른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실제 판례도 그럴까.
헌법재판소의 2003년 6월말까지 교육에 관한 24건의 결정을 조사한 결과는 현실과 이상이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 가를 여실히 증명해 준다. 한국교육법학회가 지난달 27일 한양대에서 '교육권의 갈등과 그 조정'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양 건 한양대 교수는 교육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판례 중 대부분이 '통제지향적'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2003년 6월말까지의 헌법재판소 판례 가운데 교육에 관한 결정은 24건.(각하 결정된 것 제외). 이들 결정을 교육주체간의 관계에 따라 구분해 보면, 국가 대 부모(또는 학생, 주민)관계에 관한 것이 8건, 국가 대 교원 관계에 관한 것이 4건, 국가 대 (단위)학교에 관한 것이 2건, 학교 대 교원 관계에 관한 것이 6건, 학교 대 부모(또는 학생) 관계에 관한 것이 3건, 교원 대 부모(학생)에 관한 것이 1건으로 나타났다.
서로 대립하는 교육주체들 사이의 다툼에서 어느 편의 교육권을 인정했느냐에 따라 교육에 관한 헌법판례들은 두 가지 유형, 즉 통제지향적(統制指向的) 결정과 자율지향적(自律指向的) 결정으로 구분된다. (* 표기 순서를 기준으로 앞쪽의 주체의 주장을 받아들였느냐 또는 뒤쪽의 주장을 받아들였느냐에 따라 결정의 성격을 달리 평가할 수 있다. 앞쪽의 주체의 주장을 인정한 결정을 '통제지향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뒤쪽의 주체의 주장을 인정한 결정을 '자율지향적'이라고 부른다.)
주목할 것은 총 24건의 교육관련 결정 가운데 통제지향적 결정이 21건이고, 자율지향적 결정은 3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3건의 자율지향적 결정은 과외금지 위헌 결정(2000), 사립 초중고교에서의 학교운영위원회 구성 의무화에 대한 합헌 결정(2001), 사립대학 교수 기간임용제 규정에 대한 위헌(헌법불합치) 결정(2003) 등이다.
그러나 '사립 초중고교에서의 학교운영위원회 구성 의무화'에 대한 합헌 결정의 경우는 학교 대 부모의 관계에서 보면 자율지향적이지만, 국가 대 학교의 관점에서 보면 통제지향적이라고 할 수 있다. '사립대 교수 기간임용제 규정'에 대한 위헌(헌법불합치) 결정도 마찬가지다. 학교 대 교원의 관점에서 보면 자율지향적이지만, 국가 대 학교의 관점에서 보면 통제지향적이다. 따라서 순수하게 자율지향적 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과외금지' 위헌 결정, 1건뿐인데, 이 것은 학교교육에 관한 것이 아니라 사교육에 관한 것이고 보면, 공교육에 관한 결정 가운데 순수하게 자율지향적 결정은 하나도 없음을 알 수 있다.
양 건 한양대 교수는 "국가 대 부모(또는 학생)의 관계가 원칙적으로 대등하고, 상호충돌의 경우, 법익형량에 따라 판단한다고 하지만, 공교육에 관한 헌재 판례의 실제의 성향을 보면 언제나 국가의 교육권이 우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헌재는 이에 대한 헌법적 근거로 교육제도 법률주의 조항(제31조 제6항)을 제시하고 있으나, 이 조항은 교육주체 상호간의 우열관계와는 무관하다고 보아야 한다"며 "교육제도를 법률에 정하되,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또 "교육권의 내용에 관하여 특히 '교육의 자유' 측면이 소홀히 취급되고 있다"면서 "부모, 교원, 단위학교의 교육의 자유를 확대하는 해석이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