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만 명에 한 명꼴로 탄생하는 천재로 현재 7명이 있으며 의학ㆍ과학계 등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치명적 결함이 있는데, 자신의 생각이 반경 10m 내 사람들에게 모두 들린다는 것! ‘사념파’라는 가상의 소리를 통해 마음속 생각이 주변에 모두 전파되는, 이들을 일본에선 ‘사토라레’라고 부르며 ‘특별관리위원회'를 통해 관리된다.
관리법은 독특하다. 사토라레의 속내를 알아차리더라도 절대로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 과거 한 사토라레가 자신의 생각이 남에게 들켜버린다는 것을 알았을 때 자살을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 존재하는 천재 이야기는 아닙니다. 영화 <사토라레>(2003) 속 주인공의 스토리입니다. 황당하다고요? 하지만, 영화 속 이야기라고만 치부하고 넘기기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는 생각, 들지 않으세요?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하고 바란 적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세상살이가, 진심을 말하기보다는 그럴듯한 속임수로 감정을 감춰야만 할 때가 더 많으니까요. 나를 보여주고 싶고, 교류하고 싶은 열망. 또 한편으로는 자칫 그로 인해 상처를 받게 될까 하는, 두려운 반대의 마음들이 사람을 외롭게 합니다. 영화 <사토라레>의 탄생은 이런 나를 알아달라는 현대인의 욕망이 빚어낸 돌연변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의 마음은 생중계됩니다. 그리고 그 순수함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의사인 그가 환자를 대할 때마다 마음속에서 외치는 울림과 갈등의 목소리에 말입니다. 그리고 그의 속마음을 들은 주변 사람들의 눈물. 그 눈물의 의미는 소망이자 부러움이고, 혹은 외로움에 관한 스스로에 대한 슬픔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가 있을 거라 믿어요. 가장 어려운 거짓말은 다른 사람에게 하는 게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하는 거니까요” 라는 그럴듯한 감동코드로(정말이지 웃으면서도 눈물이 났습니다만) 대충 얼버무리며 끝이 나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만,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에 대한 화두만큼은 제대로 던져 놓았던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요즘 내가 사토라레 인 것 같아.”
“으응?”
“주변 사람들이 내가 아무 말 안 해도 내 마음을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해. 내 마음이 다 읽히나 봐. 너도 지금 내 마음 들리는데 모르는 척하고 있는 거지?”
“너 지금 자랑하는 거냐?”
“응?”
“주변에 네 마음 알아주는 사람 그만큼 많다는 거잖아. 나도 사토라레였으면 좋겠다. 가끔은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좀 헤아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러게. 뭐, 하지만 말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들도 많은걸.”
“으음~ 나처럼? (웃음)”
“응~ 너처럼. (웃음)”
그러나 여전히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버렸을 때의 부끄러움. 수습할 수 없는 당황스러움. 그리고 이어질 상처가 걱정스럽고 두렵습니다. 사토라레처럼 확실히 열지 못할 거라면, 철저히 닫아 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 한국교육신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