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늪을 나누는 기준은 늪 주변 지하수 높이와 늪의 수위와의 상관관계에 따른다. 늪의 수위가 낮으면 저층늪, 늪과 주변의 수위가 같으면 중층늪, 늪의 수위가 주변보다 높아지면 고층늪이라고 한다. 보통 저층늪은 강이나 하천 주변에서 형성되어 있고, 중·고층늪은 높은 산에 분포하고 있다. 산에서 늪이 만들어지는 원리는 반드시 지하수가 분출되어야 하고, 이곳에 사초류와 벼과 식물이 자란다. 이들은 높은 산에 분포하므로 밤에 기온이 내려가서 풀들의 죽은 찌꺼기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고 이탄층이 된다. 이때 늪의 수위가 주변의 높이와 같아지면 삿갓사초류, 진퍼리새 따위가 밭을 이루는 중층늪이 된다. 여기에서 더 진행되어 물이끼층이 발달되어 이탄의 퇴적층이 볼록하게 되어 늪의 수위가 주변보다 높아지면 고층늪이 된다.
산위에서 다양한 동식물 품고 있어
둔철(屯鐵)산은 황매산에서 흘러내린 산자락이 정수산을 거쳐 경호강에 몸을 풀기 전 811.7m의 높이로 우뚝 솟아 있다. 경호강 건너편에는 지리산의 동쪽 끝자락인 웅석봉이 마주하고 있다. 둔철늪이 위치한 경남 산청군 신안면 안봉리를 이루는 흙은 검은색을 보여 철 성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예전에는 철을 생산하였다는 말이 전하고 있으며, 산 전체에 철이 쌓여 둔철이다. 늪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울산의 뻔지늪과 무제치늪이 4천~6천 년 전에 만들어졌으므로 대략 이 정도로 추정된다. 둔철분지는 둔철산과 대성산이 서로 가슴을 펼쳐 만들었는데, 대략 6백만㎡로 추정된다. 둔철분지를 이루는 골짜기는 모두 골이 깊고 물이 풍부하였기에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안아줄 수 있었다. 사람이 영향을 주기 전에는 둔철분지의 대부분이 늪을 이루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일부분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둔철늪 주변에는 작은 호수가 있고, 그 주변으로 얼마 전까지 경작지로 이용하였던 논들이 늪 면적보다 넓게 펼쳐져 있다.
둔철늪은 지리산 인근에 위치한 왕등재늪, 외고개늪, 황매산늪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천연기념물 330호인 수달 및 환경부 보호종인 꼬마잠자리의 최대 서식지이다. 2003년에 발견된 이 늪은 해발 640m 지점에 위치하며, 2만여 평의 면적을 나타낸다. 이 중 자연습지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부분은 약 2천5백 평 정도이다. 습지 가운데 일부는 고층습원인 대암산 용늪처럼 식물체가 완전히 분해되지 않아 만들어지는 이탄층이 발달되어 있어 발로 밟으면 10~20㎝ 높이로 울렁거린다. 한때 논으로 이용된 이곳은 20년 전부터 경작을 포기함에 따라 점차 원래의 습지 모습을 회복하고 있다. 수령 30~50년의 오리나무가 자라고 있는 자연습지는 습지 사이에 암석이 많아 개발이 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 주변의 지역은 논으로 경작되다가 지금은 자연습지로 회복되고 있다. 습지로 회복되는 과정에 진퍼리새와 삿갓사초 및 도깨비사초가 넓게 자라고 있다.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붓꽃, 꽃창포, 민솜방망이, 큰방울새란, 통발, 도롱뇽, 무자치 등 170여 종의 동식물과 장수하늘소 등 26종류의 곤충류가 서식하여 국내 산지늪 중 동식물 분포가 가장 높고 다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지 늪 안에서만 조사한 결과이지, 둔철분지 전체를 조사한 결과는 아니다. 그 외에도 천연기념물 제323호인 매류와 환경부보호종인 삵의 흔적이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이곳에는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잠자리 중 가장 크기가 작은 꼬마잠자리가 국내 산지늪 중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크기는 100원 동전보다 작은 2센티미터 정도이며, 암컷과 수컷의 색깔이 다르다. 수컷의 몸은 처음에는 황색이다가 나중에 붉은색으로 변하고, 암컷은 황색 바탕에 갈색과 흑색의 반점이 섞여 있다.
넓은 가슴으로 많은 사람들 포용
둔철늪을 가는 길은 두 갈래다. 산청읍에서 3번 국도를 따라 단성으로 가는 중간에 외송마을이 나온다. 외송마을에서 산길로 들어서면 내송마을이 나오고, 이곳에서 3㎞를 올라가면 둔철마을이 나온다. 지도상에는 외송과 내송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바깥솔기와 안솔기로 부르기를 좋아한다. 둔철마을에서 1㎞ 정도 올라가면 농사를 짓고, 오골계를 기르면서 살아가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단성에서 합천댐으로 가는 길에는 2006년 담장이 등록문화재(260호)로 지정된 단계마을이 나온다. 단계마을에서 사계마을을 지나면 정취암 가는 산길이 나온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2㎞ 정도 오르면 둔철늪에 인접한 경작지가 바로 눈앞에 나타난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따라가면 둔철마을로 연결되는데, 바퀴가 낮은 자가용차는 지나가기가 힘이 든다. 도로 주변의 적당한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작은 연못을 찾으면 그 주변과 아래쪽이 둔철늪이다. 평지늪과는 달리 사람이 다니는 길이 없으므로 조심해서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둔철늪 서쪽 편에는 3백m 길이의 암괴류가 넓게 분포하고 있어 웅장함을 더한다.
둔철분지는 많은 사람들을 감싸왔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화전민들이 이곳을 개척하였고, 자주 산불이 났기에 분지의 많은 부분에는 억새와 키 작은 나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고사리, 참취, 미역취, 원추리, 비비추, 삽주 등의 산나물들이 해마다 가득 싹을 틔운다. 지금도 둔철분지 주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인근의 진주와 거창에서 온 사람들은 봄이면 삼삼오오 모여들어 많은 양의 나물을 채취하고 있다. 산청군과 산림청은 2011년까지 둔철늪을 포함한 둔철분지 약 18만 평에 둔철생태숲을 조성할 계획이다. 생태숲은 생물다양성 유지를 위해 생태적 기능보전을 강화하고, 생태계의 교란과 훼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추진하는 사업이다. 생태숲은 지리산 모델숲, 활엽수원, 야생화단지, 약초테마원, 고원습지원, 생태연못, 습지관찰 덱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또 도시 생활에 싫증을 내고 유기농을 통한 전원생활을 꿈꾼 사람들에게 가슴 한 부분을 내주어 안솔기공동체를 꾸리게 해 주었다.
▶ 둔철늪 옆 정취암 전설
둔철늪 가까이에 있는 정취암은 대성산 동쪽 아래의 큰 암벽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암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 문가학이라는 사람이 정취암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정월 초하루에 스님들이 다른 곳으로 피신을 하였다. 이유인즉 설날 밤에 요괴가 나타나 사람을 잡아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문가학은 술 한 동이와 안주를 준비한 다음 기다렸는데, 밤이 되자 한 여인이 나타나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게 된다. 여인이 술에 취한 후 가만히 보니 늙은 여우였다. 여우를 묶자 여우는 자신에게 둔갑하는 법을 적은 비술책이 있다고 살려 달려고 한다. 끈으로 묶인 여우는 문가학을 벼랑으로 데려가 입으로 책을 물고 내려오게 된다. 책을 보는 동안 여우는 책의 끝장을 물고 벼랑을 올라가 버린다. 문가학은 비술을 익혔지만 옷고름만은 감추지 못하였다고 한다. 벼슬을 하면서 비술을 사용하다가 잘못이 발각되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 생태계의 의미와 산지늪의 중요성
생태계(生態系, Ecosystem)는 생물과 환경에 의해 이루어진 모임이다. 환경은 생물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모태로서 토양, 공기, 물, 빛, 온도 등이다. 생물은 역할에 따라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를 말하는데, 생산자는 다른 생물이 먹을 것을 빛을 이용해 만들고, 소비자는 이를 이용하고, 분해자는 동식물의 사체를 분해하여 흙의 성분을 만든다. 즉, 생태계는 생물과 환경의 어울려짐을 이야기하는데, 생물은 환경이 없으면 살 수 없고, 생물이 잘 살지 못하는 환경(예를 들면 사막이나 빙하)은 삭막하다. 서로가 도움이 되는 살기 좋은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사람이 자연(인간을 제외한 생물과 환경)에 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이다. 중·고층늪은 특수한 환경에 적응된 생물들이 살고 있는 특별한 생태계로 전국적으로 손꼽을 정도로 희소하다. 따라서 이 생태계가 파괴되거나 훼손되면 이곳에 적응하여 살아가던 생물들은 멸종하여 다른 어떤 장소에서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희귀한 자원을 무작정 보존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며, 멸종된 자원을 복원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 멸종되어가는 자원의 종 다양성 유지, 천이 계열과 습원 생태계의 보존 연구, 화분학을 통한 고생태학과 고기후학 연구 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