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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장승, 너의 넉넉함에 반했노라!

▶ 장승을 찾아


① 변강쇠와 장승의 대결, 누가 이겼을까?


② 돌장승, 너의 넉넉함에 반했노라!


지난 호에서는 변강쇠와 옹녀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함양과 남원 지역의 장승을 찾아갔었지요? 이번 호에서는 돌장승을 중심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돌은 나무에 비해 내구성이 뛰어나기에 처음 조성 당시의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장승은 조성했을 당시의 날짜를 기록해 두어 장승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기도 하지요. 그에 반해 나무장승은 일정한 시간을 두어 교체를 해야 하기에 장승을 만드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 개성을 뛴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장승에 대한 자료를 뒤지다가 다음 ‘장승코’라는 시를 찾아내곤 그 여운이 진하게 남아 소개하고자 합니다. 예로부터 코는 남성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돌부처의 코를 갉아 마시면 득남한다는 속신(俗信)을 갖고 있었지요. 그런데 1931년 7월 1일자 동아일보 문예란에 박 금이라는 사람이 쓴 시에서 장승의 코는 다른 용도로도 사용이 된 듯합니다.

장승코 - 洪原아리랑
朴 錦
낙태약 된다고 저 장승코를
어제 밤 비온 뒤 또 글거갔소
오목오목 들어간 고무신 자국
키 작은 여자가 발버팀쳤소
우뚝하던 그 코가 없어지고도
그 자리가 한 치나 패어드러났네
캄캄한 밤중타서 찬칼을 품고
저 장승 코 베려 달려들 때에
약한 맘 얼마나 발발 떨었노
아니다 대답하지 그 처녀아기


야심한 밤, 두려운 맘으로 장승 곁으로 가 작은 키로 발돋움하며 장승코를 긁어댔을 그 상황을 떠올려 봅니다.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기에 오죽했으면 장승에게 달려들었을까요. 장승이란 산신, 성황당, 당수나무, 돌탑, 솟대 등과 함께 당당한 마을 지킴이인데, 그 장승코를 베고 긁고 하다니요. 키 작은 그 여자는 그의 저주에 겁먹으면서 얼마나 몸서리쳤을까요. 하지만 그는 주먹만 한 자신의 코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왕방울만한 눈으로 내려다보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듬고자 했을 겁니다. 발악 한 번 하지 못하고 벅수같이 그냥 그 자리에 우두커니 그 자세로 서서 ‘그려, 그러면 내 몸뚱이라도 주마’ 그러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코를 베이고도 모른 척하는 그 녀석의 넉넉함에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돌장승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무섭다는 생각보다는 ‘벅수 같다’는 표현처럼 푼수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석공이 장승을 만들 때 더 무섭게 표현하기 위해서 애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결국 그 석공 또한 민초의 여리고 착한 마음을 가졌을 터인데 그 심성에서 만들어진 무서움의 정도가 과연 얼마만큼이나 표현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네 장승은 무섭고 화난 모습이 오히려 어색해 보일 정도로 친근할 때가 많습니다. 저래 가지고 어떻게 잡귀니 재액을 쫓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까지 합니다. 그런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은 장승의 모습이 마치 우리네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닮아서 그렇다고들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농사만 짓고 살던 순박한 민초들이 아무리 매섭게 눈썹을 치켜 올리고 한들 결국 드러내지 않는 웃음을 띠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서양의 악마는 근본적으로 악에 가득 찬 존재입니다만 우리에게 있어서 잡귀나 재액은 어쩌면 적당히 잘 대접하여 원한을 풀어주어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융통성이 있기에 악의 근원인 서양의 악마와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장승을 영문으로 ‘Devil Post'라고 표현하는 것은 서양식 악마의 개념이 강조된 것 같아 적절치 않다고 보아집니다.

하여튼 얼굴을 제아무리 무섭게 조각하고 몸집에 칼을 채우고 한들 장승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장승의 주된 기능을 알리면서 그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몸뚱이에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호법선신(護法仙神), 상원주장군(上元周將軍),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등이 적힌 명문(銘文)이 필요했는지 모릅니다. 이 명문을 통해 하늘에서나 땅속, 동서남북 어느 곳에서나 빈틈없이 한 공동체를 지키는 늠름한 장군이나 역사(力士)로서의 지위를 부여받게 되지 않았을까요?

사찰의 돌장승
남원 만복사터는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의 무대가 되는 곳입니다. 이 절터에 가면 마치 목을 옥죄는 듯한 답답함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얼굴과 목, 어깨 일부만 드러내고 나머지 몸통이 땅에 묻힌 채 길가에 방치되다시피 한 돌장승이 한 점 있기 때문입니다. 얼굴 부분만으로 보아서는 사찰의 금강역사로 볼 수도 있지만 발굴 결과 드러난 일자형 몸통으로 보아 장승으로 보는 시각이 합당할 듯합니다. 땅에 묻힌 채 하루 종일 자동차 매연을 마셔야 하는 그를 바라보고 애틋함을 갖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비록 그런 열악함에도 볼에 탄력이 넘치고 퉁방울을 치켜떠서 응시하는 그 당당함은 만복사 넓은 절터를 수호했을 과거의 영화를 떠올려 주기에 충분합니다.

곶감과 자전거로 유명한 상주 남장사 석장승은 ‘하원당장군(下元唐將軍) 임진구월립(壬辰九月立)’이라는 명문이 남아 있어 남장사 극락보전의 현판과 대조하여 조선 순조 32년(1832) 혹은 고종 29년(1892)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코에 비뚤어진 입, 가분수 머리에 좌우에 귀, 쭉 삐져나온 이빨 두 놈까지 달린 이 장승을 보면 누구나 투박하고 친근한 정감을 갖게 됩니다. 그와 나란히 서 있었을 ‘상원주장군’은 어디에 있을까요?

서울 안국 전철역에서 내려 인사동으로 오다 보면 인사동 거리 입구에 장승 두 기가 서 있습니다. 서울 한 복판에 서 있는 이 장승은 ‘88 서울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와 인사동과 관훈동 지역주민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기 위해 1988년 6월 18일에 세운 것으로 나주 불회사 입구 돌장승을 모델로 제작한 것입니다. 불회사는 절집으로 들어가는 숲길이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불회사 석장승은 중요민속자료 제1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오른쪽 남장승에 하원당장군이라 적혀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남장승은 상원주장군으로 불리는 것이 일반적인데요. 또한 누군가 ‘下’ 자를 ‘正’ 자로 바꾸어 놓은 흔적도 보입니다. 왼쪽 여장승에는 주장군이라는 명문이 남아있는데 이는 상원주장군을 줄여 이름붙인 것입니다. 콧등과 미간에 주름이 가득하고 잇몸이 쭈글쭈글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푸근하게 느껴지는 장승입니다. 불회사 돌장승을 만나기 전 근래 새로 지은 일주문 근처에도 수많은 나무장승이 각양의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회사 돌장승과 가까운 운흥사 터에도 돌장승 두 기가 남아 있습니다. 불회사 돌장승과 비교해 봅시다. 대개 장승은 오른쪽이 남자 장승이 왼쪽이 여자 장승입니다만 이곳은 남녀장승의 위치가 반대입니다. 또한 불회사와는 달리 남장승은 상원주장군으로, 여장승은 하원당장군으로 불립니다. 비로소 제 이름을 찾은 것입니다.

불회사 남장승의 수염이 한 줄기로 길게 늘어서 있는 반면 이곳의 남장승은 수염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습니다. 여장승인 하원당장군의 뒷면에 강희 58년(1719년)이라는 명문이 있어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어 중요한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두 장승 모두 안경을 쓴 듯 굵은 테를 둘렀고 특히, 턱과 입 부분이 움푹 들어가 불회사 장승, 정읍 원백암 마을 장승과 함께 대표적인 할머니, 할아버지 형 장승이라 하겠습니다. 장승 바로 앞에는 성혈바위가 자리하고 있어 장승과 함께 기자(祈子)를 향한 민초들의 염원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경남 창녕 관룡사 돌장승은 단정하고 투박한 멋이 우리나라 돌장승 중에서도 최고로 꼽을 만합니다. 왼쪽의 장승은 벙거지 모자를 쓴 듯한 형태에 얼굴만으로는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돌하르방의 이미지가 느껴지고 오른쪽 장승은 눈도 동글, 코도 동글, 얼굴도 동글동글합니다. 모두 명문은 없으며 다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장승은 지난 2003년 태풍 매미로 쓰러져 있던 것을 군청에서 흙으로 덮어두었는데 누군가가 훔쳐가고 말았습니다. 결국 한 달 가까이 노력한 끝에 절도범들이 군청에 전화를 해 충남 홍성군 폐 공장에서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원래 위치보다 더 위에 옮겨 세웠습니다.[PAGE BREAK]
미륵, 裨補神으로 다가온 그들
장승은 미륵신앙으로도 발전하고 나아가 문무인석과 닮은 형태도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곳곳에서 장승신앙과 불교신앙이 결부되어 미륵으로 불리는 곳이 많습니다. 절집에서 볼 수 있는 미래불인 미륵불과 달리 장승형 미륵은 질박하며 자비스럽고 친근하게 우리를 맞이합니다.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강댕이미륵불은 저수지가 만들어지면서 원래 위치에서 상류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이 장승은 서해를 통한 중국과의 교역로에 위치하여 안전운행을 위한 의도로 세웠다고 보기도 하고 보원사의 비보장승으로 세웠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오른쪽 팔은 가슴까지 올리고 왼쪽 팔은 배까지 올리고 있으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습니다.

전북 익산 동고도리에 있는 보물 제46호인 고도리 석불입상은 명칭은 석불이지만 흔히 수구막이라고 불리는 장승에 속한다고 봅니다. 중건비석의 내용에 ‘그 형(形)이 불(佛)과 같고’, ‘옛 사람들이 처음 세울 때에 수문(水門)의 허(虛)를 막기 위함이었다’는 내용이 있어 풍수지리상 세워진 비보장승으로 분류됩니다. 100m정도 거리를 두고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2구의 석상이 서로 마주보고 있습니다.

전남 화순군 화순읍 대리 석불입상은 높이 350㎝의 돌기둥을 사각형으로 다듬어서 전면에 얼굴 부분만 돋을새김 하고 나머지 신체부분은 선각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육계나 삼도와 같은 불상의 특징은 볼 수 없고 대신 넓적한 코, 부라린 눈 등 석장승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 조선후기 불교와 민간신앙의 혼합된 유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합천군 삼가면 원금마을 미륵불은 마을 입구 냇가에 자리해 있는데 아들을 낳고자 하는 강씨 집안에서 치성을 드렸더니 소원을 잘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수년 전 이 미륵불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사람들이 미륵불 앞 돌탑을 없애버렸다는데 그 해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많이 죽었다고 합니다. 합천 묘산면 가산리 장승은 마을 입구에 한 쌍, 고갯마루에 한 쌍이 자리하고 있어 한 곳에서 네 기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중요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된 통영 문화동 벅수는 마을의 전염병과 액운을 빌기 위한 비보장승으로서, 동남방이 허하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1906년(고종 10년) 세워졌습니다. 토지대장군이라는 명문은 비보장승임을 말해줍니다. 우리나라 돌장승 중에서 유일한 채색 장승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U자형으로 벌린 입과 입 밖으로 솟아난 두 개의 송곳니가 요물스러운 귀신을 막아내는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벅수를 보면 다른 돌장승과는 달리 왠지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장승의 색채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관모와 눈썹, 귀, 세 갈래로 갈라진 턱수염은 검은색으로 치장되었고 얼굴과 몸통 뒷부분은 붉은빛이 감돌고 있습니다. 다른 돌장승들이 육안으로 형체가 잘 구별되지 않지만 이곳은 눈, 코, 이빨, 잔주름까지 훤하게 드러나는지라 그런 기분이 더 강하게 드는 듯합니다. 양쪽의 송곳니도 유달리 커 보이고 붉은빛의 얼굴은 처용설화에 나오듯이 귀신을 쫓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됩니다.

대개의 장승이 우락부락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울산 언양벅수의 경우는 색다릅니다. 한 마디로 부라린 눈, 우뚝한 코, 큰 입에 튀어나온 이빨 등 돌출된 형태와는 전혀 거리가 먼 수줍은 새색시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입도 있는 둥 마는 둥 육안으로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윤곽으로나마 눈과 코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원래 이 벅수는 돌다리로 쓰였었는데 뒤늦게 벅수임이 밝혀진 것입니다. 중원고구려비가 빨래판으로 쓰였던 것처럼, 이 벅수도 기묘한 과거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편, 대전 동구 비룡동 지하여장군은 하트형의 얼굴에 여느 장승과 다른 자그마한 코에 살풋 웃음 띤 얼굴이 사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충북 음성 원남면 마송리 정계대장군(淨界大將軍)은 세상을 정화하고자 하는 염원을 명문으로 담고 있습니다.

지난 여름방학에 광화문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주최한 교원직무연수를 5일간 받았습니다. 연수기간 민속박물관을 쉼 없이 돌아다니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외국인이 눈에 띄게 많이 찾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박물관 측의 안내에 의하면 용산에 재개관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경복궁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외국인이 민속박물관을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서양인들이 처음 우리나라를 찾았을 때 그들은 장승을 일컬어 ‘조선의 우매한 민중들의 우상숭배’로 폄하하였지만 이제 그들은 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서 있는 장승을 보며 그 속에서 한국인을 찾고,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느끼고자 합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경쟁력이 되는 이 시대에 박물관에서만이 아니라 곳곳에서 장승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다음 호에도 장승답사는 계속됩니다. | 울산 옥현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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