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쿠리 호수에서 바라본 만년설의 무즈타크*
박하선 | 사진작가, 여행 칼럼니스트
중국에서 아랍을 만나다
한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대사막을 구름에 달 가듯이, 망망대해에 조각배 흐르듯이 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숨은 전설을 찾아가다 보면 실크로드의 성지라고 말하는 '카슈가르'라는 곳에 닿게 된다. 이름부터가 좀 특이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은 현재 중국에 속해 있지만 오히려 중동의 한 지역 같은 느낌을 준다. '위구르족'이라는 터키계 회교권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조차 중국말과 판이하게 다르고 생활환경 또한 아주 이색적이기 때문이다.
또 파미르의 고봉들을 등에 지고, 망망한 바다와 같은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슴에 안고 있는 이곳 카슈가르는 수천 년의 역사가 증명하듯 동서를 잇는 문물 교류의 가교 역할을 해 왔던 곳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과거 수많은 입축승(入竺僧)들이 구도의 길을 떠도는 와중에 이름 그대로의 오아시스 역할도 충분히 해 왔으며, 근세에 들어서도 서방의 여러 탐험가들, 즉 영국의 스타인, 스웨덴의 헤딘 같은 불굴의 업적을 남긴 의지의 사나이들에게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던 요충지였다. 그 전설적인 오아시스 카슈가르가 지금에 와서도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실크로드의 여정을 북돋워 주고 있다.
슬픈 역사 품고 있는 운치(韻致)
그렇다고 이런 오랜 역사에 걸맞은 유적지 같은 것이 이곳 카슈가르 도처에 산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여행자들이 쉽게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그런 그림 같은 풍경은 더더욱 기대할 수도 없는 곳이다. 굳이 지난날을 이야기해주는 유적을 찾아 나선다면 시내 한 복판에 있는 서역 최대의 회교 사원이라고 자랑하는 '에이티가르'와 변두리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커다란 돔의 '호자무덤'이 고작이다.
'시앙페이무'로 더 알려져 있는 이 호자무덤은 청나라 건륭제의 구애를 계속 거절하다가 끝내는 스스로 죽음을 택한 호자족 처녀의 애달픈 영혼이 맴돌고 있는 곳으로 청록색 타일이 빛나고 있는 귀족무덤이다. 그러나 사실 이 호자무덤 자체보다는 그곳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마차를 타고 포플러 가로수 사이를 누비며 시골 풍경을 즐기는 맛이 한층 더 운치가 있어 좋다.
시내의 한복판에 있는 에이티가르 사원은 과거 이슬람 대학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정면에 있는 노란색의 첨탑이 아름답고, 이따금씩 서쪽을 향해 예배를 드리는 무리들을 빼놓고는 공원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하지만 금요일에는 온 카슈가르의 시민들이 다 모인 듯 엄청난 인파가 운집해 엄숙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면 서역 최대의 회교사원임을 실감케 한다.
'옛날'을 찾아보는 즐거움
카슈가르의 가장 큰 볼거리는 엉뚱하게도 '오달데 바자르'를 비롯한 다양한 '바자르(시장)'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언제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대고 있는 바자르는 현대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남루하게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진귀한 것들이 이곳에서는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 먼 과거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덥수룩한 수염이나 콧수염을 기르고 가지각색의 모자를 쓰고 있는 위구르족 남자들과 움푹 들어간 눈에 화려한 색상의 스카프를 쓰고 있거나 아니면 밤색의 차도르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여인네들, 수많은 마차,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수박이나 '고곤'이라 부르는 커다란 참외를 비롯한 각종 과일, 카펫 장사, '케밥'이라 부르는 꼬챙이 구이를 구워 내며 피어나는 자욱한 연기, 대장간의 망치 두드리는 소리…. 이 모두가 옛날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일요일마다 열리는 '선데이 마켓'의 열기는 수많은 여행자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만다. 그래서 이곳 카슈가르에 간다는 것은 곧 ‘선데이 마켓’을 보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모든 여행자들은 일요일을 이곳에서 보내기 위해 미리부터 일정을 조절하곤 한다.
하지만, 옛날의 분위기를 느껴 볼 수 있는 곳이 비단 바자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불볕 같은 태양 빛을 잠시 벗어나 쉬고 싶을 때 가장 좋은 곳은 주택가의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다. 흙담과 흙담이 계속해서 이어져 있는 그 골목길에 들어서면 대낮에도 어둑어둑하다. 조금씩 남겨 놓은 하늘 공간으로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통행하는데 큰 불편은 없지만 구불구불한 미로 속을 헤매는 것은 마치 토굴 속을 걷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 들어가면 제자리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아 어쩔 때는 한참을 헤매기도 한다. 골목길에서 놀고 있는 꼬마들의 환영을 받으면서 이따금 위구르족들의 집에 실례를 무릅쓰고 들어가 토방에서 빵을 굽고 있던 여인네들과의 만남을 이룩한 것도 두고두고 잊지 못하게 한다.
전통의 맥 이어가는 전설
이곳은 사막지대다. 그래서 여름에는 햇볕이 불볕이고 일교차가 크다. 또 겨울에는 반대로 대단히 춥다. 이 더위와 추위를 막는 데는 흙이 최고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막에서는 모든 집들을 흙으로 지어왔다. 이러한 흙집들은 외관상 매끄럽지가 않기 때문에 이곳 카슈가르의 구시가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폭격을 당한 전쟁터의 폐허처럼 보인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가 보면 의외로 깔끔하다. 가재도구도 아무것도 없다. 그저 바닥에 카펫 한 장 깔려있고, 나무침대와 조그마한 상자 하나가 고작이다. 마치 무소유의 생활 철학이 몸에 배인 사람들처럼….
여름철에 밖이 아무리 불볕이라 해도 방안에 앉아 있으면 시원하다. 방 안 뿐만이 아니다. 어느 곳이고 그늘 밑에만 있으면 시원하다. 그래서 골목길 위로도 건물을 연결시켜서 그늘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또 건조성 기후로 인해 햇볕에 있어도 그다지 땀이 나지 않는다. 거기다가 아무리 햇볕이 따가운 여름철에도 해가 지고 나면 금세 시원해지고 한밤중에는 오히려 싸늘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이곳 위구르족 중에는 여름철에도 털모자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두터운 겨울옷을 걸치고 다니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이곳은 오히려 우리나라의 여름철보다도 더 지내기가 편하다.
사막의 바다를 건너 마치 지구 끝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곳 카슈가르에 와서 잠깐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곳을 마무리 짓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을 것이다. 두 번 오기가 힘든 곳이고, 또 그만큼 여러 가지로 매력이 넘친 곳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여유 있는 일정을 짜야 뒷날 후회가 없다.
이렇듯 카슈가르로의 여행은 결국 먼 과거 속으로 타임머신을 타는 것이다. 지금껏 실크로드의 분위기를 잃지 않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설적인 오아시스 '카슈가르'. 실크로드를 꿈꾸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언제까지나 빛나는 진주로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