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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수를 만드는 장도습지

물이 있으면 생물이 모여드는 법이다. 흑산도에 있는 장도습지도 그렇게 생성됐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암석이 부서지고 퇴적물이 쌓이면서 물이 고였고, 이곳에 여러 생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육지에서 100㎞ 떨어진 작은 섬의 정상부에는 넓은 분지가 만들어졌고, 그 분지에서 물이 솟아올라 약 3만평의 넓은 산지습지를 이루고 있다. 또 산지습지를 적시고 흐른 물은 섬의 주민들에게 생명수를 제공한 다음 바다에 몸을 섞어 '검게 타버린 물' 흑산도 바닷물을 만든다.


김철수 | 경남 거제중앙고 교사, 사진작가


도서지역에서 발견된 산지습지
우리나라 최서단에 위치한 흑산도는 일명 서초도라고도 부르며, 목포에서 93㎞ 떨어져 있다. 신라 흥덕왕 2년(828)에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면서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흑산도는 대둔도, 영산도, 다물도, 장도, 호잠도 등 여러 부속 섬을 거느리고 있다. 장도(長島)는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비리 일원으로 사람이 사는 대장도와 사람이 살지 않는 소장도, 쥐머리섬, 내망덕도, 외망덕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흑산도의 예리항에서 홍도로 가는 뱃길은 여객선으로 30분 정도 걸리고, 그 뱃길의 시작에 위치한 장도까지는 일반 어선으로 15분이 걸린다. 장도는 섬의 대부분이 험한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마을이 위치한 곳과 일부 지역만 약간 완만하다. 대장도와 소장도는 해안으로 연결되어 있으나 바닷물이 들어올 때는 섬으로 다시 떨어져 하루에 두 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아침을 여는 태양은 흑산도의 상라산(226m, 전망대가 있음)에서 솟아오르고, 어둠의 여신을 부르는 일몰은 홍도로 떨어진다. 저녁 무렵 대장도에서 바라본 홍도의 모습은 노을에 쌓인 '붉은 섬'이다. 이 아름다운 섬은 남쪽(234m)과 북쪽(260m)에 높은 봉우리를 만들고, 그 사이에 여인의 가슴처럼 큰 분지를 품었으니 이곳이 우리나라 소규모 도서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산지습지인 장도습지이다. 장도습지의 면적은 약 3만평으로 2003년 7월에 한국조류보호협회 목포지회에서 처음 발견하였고, 2004년 8월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2005년 3월에 우리나라에서는 대암산용늪, 우포늪에 이어 3번째, 세계적으로는 1423번째 람사협약습지로 등록되었다.

1등급 자연환경 속 다양한 생물들
람사협약습지는 특별한 생물·지리학적 특성을 가졌거나, 희귀동식물의 서식지 또는 물새 서식지로서의 중요성을 가진 습지를 대상으로 지정한다. 장도습지는 소규모 도서지역에서 보기 드물게 이탄층이 약 1m 두께로 발달되어 있어 수자원 보호 및 수질 정화 기능이 뛰어나 이곳에서 솟아올라 흘려 내린 지하수는 장도주민들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또 이곳에는 여러 종류의 생물이 살고 있는데,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 Ⅰ급인 수달과 매, 멸종위기종 Ⅱ급인 솔개, 조롱이 등이 살고 있다. 동물에는 제주도롱뇽, 실뱀, 도마뱀, 가재, 플라나리아, 옆새우 등을 포함하여 포유류 7종, 조류 44종, 양서·파충류 8종, 육상곤충류 126종류가 조사되었다.

습지식물은 금새우난, 곰취, 춘란 등을 비롯하여 294종이 조사되었는데, 예전에 농경지로 이용하였던 부분은 선버들이 넓게 자라고, 하층식생에는 방울새풀, 쇠뜨기 및 흰꽃여뀌가 넓게 자라고 있다. 육지의 산지습지에서 주로 나타나는 오리나무, 진퍼리새, 도깨비사초, 끈끈이주걱 등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습지의 일부에서 사초과(莎草科) 식물에 의한 사초기둥이 약간 나타났다. 습지를 이루는 식생을 나눈 결과 후박나무군락, 구실잣밤나무군락 등 26개로 나타났다. 이런 조사를 통해 장도습지의 자연성은 수질등급 1급수, 생태자연도 1등급의 판정을 받았다.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 찾는 탐사
대장도의 비리마을에는 40여 가구의 주민들이 전복과 우럭 양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장도습지는 이들의 사유지로서 김창식 이장을 비롯한 마을 주민 모두의 노력으로 람사습지가 된 것이다. 마을에서 습지로 가는 길은 마을 뒷산(243m)을 넘어야 하는데, 가는 길은 2갈래이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다락밭 사이를 지나야 하는데, 장도의 명물인 흑염소의 울음소리를 듣고 흑산도를 바라보면서 갈 수 있다. 이 길을 이용하여 고개를 넘으면 습지의 물이 모이는 하부에 이르게 된다. 이곳에는 물을 모으는 시설이 있고, 여기에 모인 청정수는 마을의 식수로 이용되고 있다.

또 하나는 흑산초등학교 장도분교 옆의 길로 경사가 급하고 봉우리를 바로 치고 올라가는 길이다. 길 주변의 동백나무 꽃 사이로 바라보이는 흑산도와 장도의 모습은 절경이고, 마을과 양식장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특히 이 길의 아름다움은 넓은 곰취밭과 큰천남성군락과의 만남이다. 습지는 동저서고 형태를 이루는데, 천길 절벽이 펼쳐진 높은 서쪽 부위에는 조릿대 군락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살모사와 도마뱀은 느릿느릿 돌아다니고, 홍도가 손에 잡힐 듯 눈에 아른거린다.

낮은 동쪽 부위는 상록수림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주로 나타나는 식물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등이다. 습지의 물이 상록수림의 짝지골을 흘려 몽돌해변으로 통해 바다로 연결된다. 수량이 많을 때에는 짝지골의 입구에 폭포가 만들어지고 족탁을 즐길 수 있어 장도에서 가장 편안함을 주는 곳이다. 습지에서 짝지골로 내려가는 등산로에는 참식나무, 백량금, 석위, 홍도원추리, 흑산비비추, 좀딱취, 금새우난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장도를 권한다. 자연 속에 묻혀 습지를 거닐고 휘파람새와 칼새 및 되새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심신의 안정을 취할 수 있고, 일출과 일몰을 보면서 삶의 아름다움과 희망을 생각할 수 있다.

▶ 美와 孤 간직한 흑산도 일주
신라 흥덕왕 2년(828)에 해상왕 장보고가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면서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흑산도! 파도와 바람의 영향으로 아름다운 절경이 만들어져 있는 흑산도에는 여러 종류의 기암괴석과 해안동굴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정약전이 유배 도중 흑산도의 어류 155종을 조사하여 〈자산어보〉를 저술한 곳이고, 구한말에는 최익현도 유배를 왔다. 이처럼 흑산도는 유배와 절망의 땅이라 바닷물도 푸르다 못해 검게 변한 곳이다. 전광용의 '흑산도'와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는 외롭고 서러운 섬 흑산도를 가슴으로 그리고 있다.

흑산도 여행은 섬 일주도로를 지프형 택시로 드라이브하거나 유람선을 타고 관광하는 방법이 있다. 예리항을 출발한 택시는 진리에 도착하는데, 이곳에는 초령목(귀신을 부르는 나무)과 처녀신당 및 배낭기미 해수욕장이 있다. 상라산 전망대 오르는 길은 흑산도의 명소로서 동백나무가 심어진 꼬불꼬불한 길이다. 이곳에서 맞이하는 일출과 일몰은 장관이고, '남몰래 서러운 세월은 가고, 물결은 천번만번 밀려오는데, 못 견디게 그리운 아득한 저 육지를 바라보며, 검게 타버린 검게 타버린 흑산도 아가씨'를 새긴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또 이곳에서는 장도의 모습도 훤하게 내려다 볼 수 있다.

마리와 비리마을 사이에는 교각이 없는 다리 형태의 도로가 개설되어 있고, 이곳에 신안군의 명소와 흑산도를 그린 벽화가 새겨져 있다. 비리마을에는 당산 옆 작은 바위섬에 한반도 지도 모양의 구멍이 있고, 심리마을을 지나면 정약전이 유배되었던 사리마을이 나온다. 청촌리의 최익현 유배지를 지나 예리항에 도착하면 2시간 동안의 일주 여행은 끝난다. 홍어의 본고장 흑산도! 전복과 홍어를 파는 아주머니들의 머리 위로 오늘도 흑산도 아가씨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관광안내 홈페이지 : tour.sinan.go.kr)

<참고자료> 습지의 중요성
삶의 터전인 지구는 크게 바다와 육지로 나누고, 이 중에서 육지는 땅 위와 습지로 나눈다. 습지는 물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땅이란 뜻인데, 지구 표면의 6%를 차지하고 있다. 습지는 땅 위와 물 속 생태계 사이에 접하는 지역으로 일 년 중 일정기간 동안 얕은 물에 의해 잠겨 흙이 물에 젖어 있는 땅을 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으로 물이 들어오는 상수도와 집에서 사용한 물이 흘러나가는 하수도는 모두 습지로 연결되어 있다. 늪은 오염된 하수도 물을 깨끗한 상수도 물로 바꾸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런 습지는 육지로 싸여 있는 내륙성 습지와 바다에 접하고 있는 해안성 습지로 나눈다. 내륙성 습지는 홍수 때 범람하는 흙이 쌓여서 강 유역에 형성되는 것들이나, 화산 폭발이나 빙하 이동 같은 지각 운동의 결과로 높은 산 지역에 형성되는 것들도 있다. 해안성 습지는 세계 대부분의 습지를 차지하는 것으로, 강물에 의해 실려 온 흙이 강 하구에 쌓여 만들어진 것으로 삼각주나 해안 갯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습지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자원이다.

첫째, 습지의 풍부한 플랑크톤이나 영양분은 물속에 사는 곤충이나 조개류 및 물고기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또 이들은 새나 양서류 및 작은 포유동물의 먹이가 된다.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있는 생물의 대부분이 습지에 살고 있는 생물들이므로, 늪이 사라지면 많은 생물들이 사라지게 된다. 둘째, 습지는 물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 비가 많이 오는 시기나 건조한 시기에 자연 댐의 역할을 한다. 특히 우리에게 식량을 주는 논은 사람이 만든 습지의 하나로 홍수나 가뭄 같은 자연재해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셋째, 습지를 이루는 흙은 주변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각종 오염 물질을 받아들여 깨끗한 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습지 1㏊가 오염 물질을 걸러내는 경제적 가치는 미국 돈으로 40만 달러, 우리 돈으로 5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즉, 돈을 들여 처리해야 할 오염 물질을 늪이 포함되는 습지가 해 주고 있는 것이다. 넷째, 습지는 풍부한 물 자원의 확보, 수질 정화를 위한 비용 절약, 고기잡이와 식물자원의 확보, 교통수단, 휴양 및 생태관광의 기회를 제공한다.

다섯째, 습지는 물과 함께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지역의 문화적 가치와 함께 생명의 힘이 넘치는 공간으로서 자연 체험 교육의 장소로 활용된다. 습지에서 힘차게 솟아오르는 철새의 몸짓이나 물에서 살아가는 아름다운 식물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음악가는 아름다운 선율이, 미술가는 아름다운 그림이, 문학가는 아름다운 글들이, 자연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인류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그래서 습지는 중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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