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먼저냐 조건이 먼저냐' 하는 시시콜콜한 논쟁은 항상 '사랑이 먼저지만 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는 어정쩡한 결론으로 끝맺곤 한다.
도쿄의 캠퍼스에서 만난 준세이(다케노우치 유타카)와 아오이(진혜림)는 10년 후 아오이의 서른번째 생일날 '연인들의 성지'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함께 가기로 약속한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우연히 친구를 통해 아오이가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를 알게 된 준세이는 그녀에게 기나긴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그녀 곁에는 이미 마빈이라는 완벽한 조건의 남자가 있다. 준세이의 편지가 가슴을 흔들어 놓을수록 아오이는 더 확고한 말투로 마빈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의무감에 가득찬 아오이의 고백은 사실 마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준세이 때문에 혼란스러운 자기 자신을 붙잡아두기 위한 것이었다.
주인공이 머무르는 이탈리아 도시들은 이성과 감성,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흔들리기 쉬운 그들의 심리상태를 대변하는 장치물이다. 돈벌이라고는 관광과 오래된 예술품 복원이 전부인 낡은 도시 피렌체. 과거의 추억에 매달리는 준세이가 그곳에서 회화 복원술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화려한 첨단패션과 고풍스런 옛 건물이 공존하는 도시 밀라노처럼 아오이는 과거와 현재의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여기서 케케묵은 가정을 하나 해보자. 모든 것을 갖춘 안정된 사람과 왠지 끌리지만 그 곁에선 항상 불안하고 힘겨운 사람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어쩌면 주저 없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다. 헤어진 연인과 했던 10년 전 약속을 기억하는 사람은 영화에서나 존재할 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자를 선택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거나 고상한 척한다고 비웃지는 말자. 사랑은 '그래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하는 것이라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