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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시네마편지> 정사

언제부턴가 갑자기, 신경쓰이기 시작했어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꺼야.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행복해지겠지. 네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여우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가 돼가는 것을 '길들여진다'고 표현했다.음악가를 꿈꾸던 바텐더 '제이(마크 라일랜스)'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나 혼자 살고 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2시가 되면 한 여자(케리 폭스)가 제이의 집 현관벨을 울린다. 두 사람은 수요일마다 육체관계를 가진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런데 제이는 점점 여자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이름은 뭔지…. 어느 수요일, 제이는 여느 때처럼 황급히 문을 나서는 그녀를 몰래 뒤쫓아간다. 작고 허름한 극장 안으로 여자를 따라 들어간 제이는 연극 무대 위에서 그녀를 발견한다.

여자의 이름은 클레어. 남편에 아들까지 둔 무명 연극배우다. 다음주도, 그 다음주에도 제이는 극장을 찾아간다. 아내를 모니터해주기 위해 매번 극장에 들르는 클레어의 남편과 가까워지면서 제이는 남편에게 '수요일의 여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은 그들의 이야기에 점차 귀를 기울이고
제이는 그를 놀려대듯이 그녀의 이중성을 하나씩 흘려놓기 시작한다.

'길들여지는 것'의 시작은 관심이다.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순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상대에게 길들여진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깐의 쾌락을 찾고자 했던 제이는 예상치 못한 덫에 걸려 안절부절못한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그 여자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어. 빌어먹을 수요일에 어떤 의미가 생겨버렸다고."

불평을 해보지만 수요일 오후 2시가 다가오면 제이는 쏜살같이 달려와 집을 정리하고 그녀가 오지 않으면 몇 시간 동안 멍하니 그녀를 기다린다.

그러나 클레어에게 수요일은 불완전한 현실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벌이는 하루의 일탈일 뿐이다.
이미 수요일에 길들여져버린 제이는 클레어에게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절규했다가 "곁에 있어달라"며 매달린다. 시작부터 서로의 육체에만 집착했던 그들의 만남은 끝까지 속이 텅 빈 껍데기처럼 공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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