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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후배들에게 다하지 못한 이야기(VI)

일반 회사에서는 생경(生硬)한 학교 풍속도
영원한 손님 집단 45만 교육자 중에서 나를 포함해 교장, 교감, 교사, 행정실장 등 모든 학교 관계자들의 상당수가 몸담고 있는 직장을 진정한 ‘자기 학교’로 여기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안타깝다. 잠시 와서 머물다가 가는 곳일 뿐이다. 길면 4년, 1년이 지나면 3년 남았다 여기고 3년이 되면 마음조차 이미 떠나버린다. 손님으로 왔으니까 아이들과의 만남도 고작 1년 동거(同居)일 뿐 교실도 앉은 자리도 1년용으로 치부하게 마련이다, 텔레비전도 컴퓨터도 내 것이 아니니까 소중할 리 없다. 곳곳에 정 • 부 책임자의 이름은 써 붙였지만 소유권을 가진 건 하나도 없다.
굳이 주객(主客)을 따진다면 6년을 공부하게 되는 학생들이 주인이고, 교사는 손님이 아닐까 싶다. 소년시절의 꿈과 추억이 어린 배움의 요람이라 해 저들은 모교(母校)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은 학교 수도꼭지에서 줄줄 물이 흘러내려도 그것을 잠그는 사람이 없고 벌건 대낮에도 불이 켜져 있는 화장실의 스위치에 손 한 번 대는 사람도 없으며 운동장에 휴지가 떨어져 있어도 스스로 줍는 어린이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면 학교야말로 주인이 없는 무주공산(無主空山)일 수밖에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주인의식을 요구하거나 학교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임에 틀림없다.
나도 일찍이 그런 학교 사회의 특성을 간파하고 백년손님인 선생님들보다 학생들의 정신계도와 인성교육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무척 노력을 경주해 보았지만 두 손 들고 말았다. 주인의식을 길러주는 일보다는 수학 공식 하나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손님이 떠난 자리 90년도 초, 교육부지정 방송연구학교를 했다는 한 시골 학교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취약한 농촌 지역 학부모들로부터 민원을 무릅쓰고 적지 않은 금액을 염출하여 우리나라 국영 방송국의 축소판처럼 멋들어지게 만들어 놓은 방송실은 먼지가 뿌옇게 쌓였고 조명이며 각종 영사기와 최신형 고급 촬영 기기들이 선반에 널브러져 있었다. 연구학교를 끝내고 교장도 떠나고 방송 담당 선생님까지 떠나게 되니까 아무도 맡을 사람이 없어서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보니까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귀물(貴物)들이 애물 덩어리로 변한 것이다.
학교에 가면 교실 뒤편 후미(後尾)진 곳이나 창고에 주인을 잃어버린 고급 기물(棄物)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다. 옛날에는 그런 폐품을 재활용해 저비용, 고효율의 학교 경영을 하는 교장들이 많았다.
배가 좌초했을 때 선장은 자기 배와 운명을 함께하고 조종사가 애기(愛機)와 생사를 함께하는 살신성인의 경지까지를 기대하지는 못할지라도 멸사봉공하는 교장들은 많이 있었다.
내가 존경하는 J교장은 퇴임식 날 아침까지 학교 화단에서 전지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유교문화권에서는 선비 정신에 견주었고 영국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 했다. 사회의 귀감(龜鑑)이 됨을 일컫는다. 새 교장이 올 때가지 철부지 어린것들을 대신해서 Host의 역할을 대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연구학교 이야기
성공률 100%
우리나라는 개국 이래로 교육 연구 분야에 관해서는 한 번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100%의 성공이기 때문이다. 가히 기네스북에 올라갈 기상천외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연구학교를 운영하면 지정 기관에 따라 각기 다른 부가가치가 있다. 얼마간의 연구비도 내려오고 연구 발표 후에는 몇 몇 담당 교사들에게 부가점수를 주기도 한다. 교장들은 학교의 지역 특성과 구성원들의 연구 수행능력은 고려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큰 기관의 연구지정을 맡으려고 나름대로 노력을 한다. 연구를 위한 것보다는 반대급부를 위한 연구를 하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연구학교로 지정되면 학교 운영의 포커스가 거기에 맞춰 비상체제로 전환한다. 주제를 정하고 직원 조직과 연구절차, 가설설정, 연구추진 등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검증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선행 연구물을 탐색하거나 기존의 연구 자료를 검색하게 된다. 그래서 연구주제와 상관없이 연구체계가 비슷한 포맷을 유지하고 있는 특성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완성된 연구결과는 100% 성공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연구학교에서 실패한 보고를 한 학교가 하나도 없다면 아흔아홉 번 실패를 거듭한 ‘에디슨’이 생각하기에 참으로 기이한 나라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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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제(These) • 안티테제(Antithese) 연구 주제를 해결하려면 정반합(正反合)의 논의과정을 거쳐야 함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반대를 위한 반대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면 문제는 다르다. 학교의 특성상 연구학교 운영이 꼭 필요한 경우에도 직원들이 거부하면 할 수 없게 된다는데 그 맹점을 극복하기는 어렵게 됐다. 연구 수행을 위해 그럴듯하게 편제는 되어 있으나 대체로 연구부장(현 교육과정부장)을 중심으로 연구가 추진되지만 그 중에서도 몇 몇 특정한 사람들이 주축이 된다. 예나 제나, 연구는 테제(These)와 안티테제Antithese)의 두 개 그룹으로 나뉜다. 전자는 긍정적이면서 주로 기획하는 집단이면서 훗날, 연구를 주도하게 되고 후자는 미온적으로 추종하거나 마지못해서 끌려가는 집단이다.
“왜, 이 통계를 내고 계십니까?”하고 물으면 “이유는 묻지 마세요. 위에서 하라니까 하는 거에요.”
이런 해프닝을 거듭하면서 시범학교, 실험학교, 연구학교를 했다. 나는 오늘도 부끄럽던 지난날의 자화상을 보면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한다.

내 얼굴에 침 뱉기 교장 발령을 받자 나도 교육부지정 연구학교를 맡게 되었다. 주제는 ‘인성교육’ 분야였다. 토론을 해서 주제를 정하기로 했다. 종속변인은 무엇을 할 것이며 연구의 진행과 절차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했다. 그런데 의견을 발표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데 놀랐다. 학교 행사에 대해서는 왜 그것을 해야만 하느냐, 교육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짜증스런 목소리로 고성을 지르던 사람들도 일제히 함구했다. 모두가 교장이 정해주겠거니 하는 표정이다. 보다 못해 내가 한 마디 했다. “인성이 뭡니까?” 그랬더니 그 흔하디 흔한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 큰일이었다. 인성연구학교 계획서를 세워야 하는 판에 독립변인이 될 ‘인성’을 교장도 모른다하니 한심하고 딱한 일이었다.
연구부장에게 교육부지정이라니까 그 쪽으로 물어보라고 했더니 기겁을 한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적당히 하면 될 일을 가지고 어떻게 상급 기관에 묻느냐는 것이다. 관청의 문턱은 너무 높았고 지도와 조언을 해줄 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교감을 비롯해 교무, 연구부장 등이 한사코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분명히 학교이름을 대고 공문을 작성했다. 나는 모르는 것을 다만 알고 싶을 뿐, 말리는 교감과 싸움을 하다시피해서 교육부로 공문을 발송했다. 이 후로 학교 분위기는 폭풍전야처럼 불안 초조했다. 교장이 공연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고 수군거렸다. 며칠 후 회신(回信) 대신에 퉁명스러운 전화가 먼저 왔다.
“귀교에서 인성에 대한 정의를 해달라고 했는데,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그럼 어떡합니까. 교육부지정 인성연구학교를 하라는데 인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요.”
“아니, 그렇다고 그걸 여기다가 물으면 어쩝니까?”
“지도해 주십사하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문서로 민원을 하시면 곤란하잖습니까.”
“그래도 알아야 면장(免墻)을….”
“연구학교를 하기 싫으면 그만 두면 되는 거지. 지금 농담을 하시는 겁니까.”
“농담이라니요.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끝내 교육부에서는 지도 조언은커녕 인성에 대해 속 시원한 한마디가 없었다.
연구학교를 추진하면서 내내 벽에 부닥친 것은 인성에 대한 개념의 정의였다. 요즘말로 하면 콘셉트가 문제였다. 교단에서는 너무도 흔히 쓰고 있는 말인데도 그것에 대한 개념정의가 극명하게 된 것이 없었던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였다. 다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국내에서 꽤 유명했던 S대학교 사범대학 J교수가 인성을 ‘Personality’라고 정의하고 활동성을 비롯해 지배성, 안정성, 사려성, 사회성, 충동성 등 여섯 개를 나열해 놓은 것이 전부였다. 지금도 인성이란 말이 나오면 괜히 마음이 찝찝해진다. 그것이 아직까지도 내 마음 속에 영원한 불발탄으로 침전되어 있는 모양이다.

남귤북지(南橘北枳) 대한민국 개국 이래 우리나라 교육사조는 물론이고 교육방법까지 거의 미국에서 직수입했거나 일본을 통해 전해 온 것이 전부였다. 그것들은 한 동안 국내에서 붐을 일으키다가 얼마간이 지나면 흐물흐물 꼬리를 감추고 만다.
버즈 학습, 프로그램 학습이 그랬고 생활중심 교육이니, 인지중심 교육이니, 경험중심 교육이니 하다가 얼마 전까지 교실 복도까지 부수며 극성을 떨치던 열린교육까지…. 장관이 바뀌거나 지역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국적도 모르는 교육 풍토가 부침(浮沈)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교육 행정의 수장(首長)이 물러나면 그것도 함께 물러났다. 그 격정의 세월을 거치면서 한 가지 느낀 것은 외국에서 성공한 교육이론이나 방법이라 할지라도 국내에 적응되지 않는 이른바 ‘남귤북지’(南橘北枳)의 교훈이었다. 미국에 심었던 귤나무가 우리나라에 오면 탱자가 된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우리 교단 주변에는 적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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