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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의 그늘을 딛고, 연말에 주목할 뮤지컬

일상에 지치고 신종플루로 인해 마음이 무거운 것도 사실이지만 올 연말 화려하게 준비된 ‘뮤지컬 만찬’에 한 번쯤은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공연이란 지나가면 다시 보기 어려운 ‘라이브 엔터테인먼트’니까 말이다.

2001년 국내 공연 시장에 뮤지컬의 시대를 열어젖힌 <오페라의 유령>이 소개된 이후 뮤지컬 시장은 급격한 매출 확대를 기록하며 공연 산업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2005년에는 전체 공연 시장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며 위세를 떨치더니 현재는 전성기를 넘어 ‘독점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공연계의 거대한 공룡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뮤지컬도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불황과 경기침체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2001년 800억 원대 시장을 형성하던 뮤지컬은 매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3000억 원 규모까지 성장했지만 처음으로 전년 대비 정체를 보였다. 올 한해도 계속되는 그 여파는 물론 신종플루로 인한 위협까지 겹쳐 공연계 종사자들의 얼굴에 좀처럼 그림자가 가시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도 연말을 맞아 많은 작품들이 대기하고 있다.
특히 12월은 연중 최대 성수기로서 예나 다름없이 이 기간 중에 전국적으로 무려 150편의 크고 작은 뮤지컬이 소개될 전망이다. 이는 뮤지컬이 연중무휴로 상연되는 뉴욕 브로드웨이나 런던 웨스트엔드와 직접 비교해 보아도 오히려 더 많은 숫자이며 각 제작사마다 11월 중순을 기점으로 일제히 회심작을 발표해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레퍼토리의 면면을 보면 미국, 영국, 체코 등 해외 작품들은 물론이고 우리 창작뮤지컬도 다수 소개될 예정이어서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장르 면에서도 역사극부터 로맨틱 코미디, 스릴러까지 다양한 구색을 갖추고 있다. 경쟁에 돌입하는 제작사들의 속은 타들어가겠지만 뮤지컬 애호가들은 작품이 너무 많아서 행복한 고민을 해야 할 지경이다. 마음을 가다듬고 먼저 메뉴판을 펼쳐보자.

노래하는 안중근 <영웅>

지난 10월 26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 <영웅>은 도마 안중근(1879~1910)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암살한 의거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역사극이다.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중장 출신의 독립운동가로서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서 항거하며 한국인의 기개를 만방에 떨친 영웅 안중근 의사를 만날수 있다. 이 작품은 뮤지컬 <명성황후>를 제작한 ㈜에이콤인터내셔날이 2004년부터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실제 제작기간도 3년이 걸린 뮤지컬로 대형 뮤지컬의 단골 메뉴인 역사성과 스펙터클한 무대를 갖추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
<영웅>은 역사적 현실(Fact)에 가상 이야기(Fiction)를 결합한 이른바 ‘팩션’(Faction)을 표방하고 있다. 명성황후가 낭인들의 손에 죽어간 참상을 목격한 유일한 궁녀로서 빼앗긴 조국을 되찾으려는 일념으로 일본에 <제국익문사>의 요원으로 건너갔다가 이토의 총애를 받는 여인으로 그려지는 설희가 바로 그렇게 창조된 여주인공 격인 인물이다. 안중근과 독립군을 돕는 중국인 동료 왕웨이와 그의 여동생 링링 역시 국경을 초월해 평화 사상의 전도자인 안중근의 캐릭터를 지원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조역들이다.
요즘 흔한 연예인 캐스팅이 없고 노래 잘하는 전문 뮤지컬 배우들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 안중근 의사 역은 류정한과 정성화가, 이토 히로부미는 이희정과 조승룡이 연기한다. 설희 역은 김선영과 이상은이 맡고 있으며 링링 역에는 소냐와 전미도가 캐스팅됐다.

초호화 캐스팅 <살인마 잭>

11월 13일부터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중인 체코 뮤지컬 <살인마 잭>은 19세기 말 빅토리아 여왕 시대 런던의 윤락가 화이트채플 지역에서 매춘부 다섯 명이 처참하게 살해됐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졌던 연쇄살인범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물이다. 이 작품의 특징은 올해 충무아트홀 대극장에 올려져 큰 인기를 끌었던 <삼총사>의 제작진이 그대로 참가하고 배우 구성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체코 원작 <삼총사>는 한국 관객의 입맛에 맞게 많은 수정을 거쳐 발표돼 인기를 끌었는데 <살인마 잭> 역시 체코에서 공연된 원작 스토리를 원작자의 동의하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대어 ‘전신성형’을 감행한 작품이다. <삼총사>에서 그랬듯이 주인공보다 조연들의 비중을 높여서 남자들의 쫓고 쫓기는 블랙 코미디로 포장했으며 작곡가(체코의 국민 가수 겸 작곡가 바소 파테이들)의 다른 곡들도 이 작품을 위해 특별히 사용을 허가받았다.
<삼총사>는 뮤지컬 기본 관객인 20~30대 여성 관객의 지지가 높았는데 그 핵심은 인기 있는 남자 배우들로 짜인 캐스팅이었다. 이 작품 역시 티켓파워 높은 쟁쟁한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의대생 다니엘 역에 엄기준과 김무열이, 타락한 수사관 앤더슨 역에는 유준상과 신성우가, 살인마 잭 역에는 김원준과 최민철이, 특종에 눈이 먼 기자 역에 김법래와 남문철이 출연한다. 앤더슨의 옛 연인인 매춘부 폴리 역에는 양소민과 백민정이 각각 더블캐스팅으로 경쟁을 벌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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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고풍 사랑 이야기 <웨딩싱어>

연말에 새롭게 소개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로는 <웨딩싱어>가 있다. 결혼식 파티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웨딩싱어 로비 하트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웨이트리스 줄리아 설리번이 만나 결국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1998년 아담 샌들러와 드류 배리모어가 출연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를 각색한 ‘무비컬’이다. 주인공이 가수라는 설정, 로맨틱 코미디 등 여러 면에서 무대화하기에 적합한 소재를 가진 <웨딩싱어>는 2006년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로 초연됐다.
줄거리는 영화와 동일하지만 뮤지컬 각색 과정에서 작은 변화가 있다. 영화에서 로비와 줄리아의 비중이 엇비슷했다면 뮤지컬에서는 로비가 중심이다. 또한 영화에서 로비의 옆집 할머니였던 캐릭터가 친할머니로 바뀌고, 줄리아의 친구이자 로비와 줄리아의 사랑이 이루어지는데 도움을 주는 홀리는 감초 캐릭터로서 격렬한 안무를 보여주는 등 영화보다 캐릭터의 비중이 커졌다.
또한 당시 영화 사운드트랙 앨범이 ‘컬쳐 클럽’, ‘빌리 아이돌’, ‘탐슨 트윈스’ 등 198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히트곡들을 담아 큰 인기를 끌었다면, 뮤지컬은 1980년대 스타일로 새롭게 작곡했다. 로비 역에는 전혀 다른 느낌의 두 배우 황정민과 박건형이 나란히 캐스팅됐다. 줄리아는 <마이 스케어리 걸>의 방진의가, 줄리아의 친구 홀리 역은 윤공주와 김소향이 나눠 맡는다.

편견을 타파하라! <금발이 너무해>

위더 리즈스푼 주연의 원작 영화로 유명한 따끈따끈한 브로드웨이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원제 : Legally Blonde)>도 연말 무대를 달굴 기대작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금발 미녀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서 사랑까지도 쟁취해내는 하버드 법대생 엘 우즈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의 한국판 공연은 엘에게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춘 화려한 쇼 중심의 브로드웨이 원작 공연에 비해 조연 캐릭터를 부각시켜 엘의 성장기를 보다 드라마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 작품은 이미 연예인 캐스팅으로 매체를 뜨겁게 달군 바 있다. 엘 우즈 역에는 이하늬, 김지우, 제시카(소녀시대)가 나란히 캐스팅됐다. 또한 상대역인 에밋에는 김동욱과 김도현, 엘의 친구이자 미용사 겸 네일 아티스트 폴렛 역에는 전수경, 엘의 전 남자친구 워너 역에는 고영빈, 캘러한 교수 역에는 가수 김종진이 나온다.

도시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생 <달콤한 나의 도시>

서른한 살의 미혼여성 오은수를 중심으로 현대 도시인의 일과 사랑, 가족과 우정 등 도시의 젊은이가 겪어야 하는 삶의 단편들을 솔직하게 담아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정이현의 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가 TV 드라마에 이어 동명의 뮤지컬로도 만들어진다. 뮤지컬은 중극장 규모로 같은 이야기 구조를 가지지만 무대 특유의 장점을 살리면서, 은수의 내면에 보다 초점을 맞춘다. 그녀의 속마음을 대변하며 극을 이끌어가기 위해 새로 투입된 나레이터 역(김우형)을 지켜보는 재미를 기대할 수 있다.
<아트>, <클로저 댄 에버>, <나쁜 녀석들> 등으로 업계의 촉망받는 젊은 연출가 황재헌이 각색, 작사, 연출을 맡았고 드라마 <파리의 연인>, <온 에어> 등에서 음악을 담당한 박세준이 작곡을 맡았다. 오은수 역은 박혜나와 이정미가 캐스팅됐다.

그 밖에도 컴퓨터에 익숙한 88만원 세대를 다룬 김영하의 원작소설을 각색한 창작뮤지컬 <퀴즈쇼>도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방송인 박경림이 주인공 트레이시 역을 맡은 <헤어스프레이>도 연말 화제작 목록에 올라있다.
지난 9월에 개막해 이미 12월 티켓이 대부분 매진된 <오페라의 유령> 한국어 공연, 파격적인 무대 연출이 돋보이며 내년 초까지 공연하는 <스프링 어웨이크닝>, 지난 7월 작품을 통해 부부의 연까지 맺은 임태경과 박소연이 동반 출연하는 프랑스 뮤지컬 <로미오 앤 줄리엣> 재공연도 열린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의 애창곡을 선사한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도 가족단위의 관객들을 찾아간다. 도로시 역은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임혜영이 맡았다.
또한 스테디셀러 뮤지컬 <헤드윅>에 캐스팅된 로커 윤도현의 변신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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