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자신에게 장애가 찾아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신체적 고통과 불편함은 물론이겠거니와 그로 인해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면…. 상상만으로도 정말 견디기 힘들 일입니다. 남들은 다 할 수 있는 일을 나만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 그래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한없이 낮아지는 것처럼 느껴지면 실로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갑자기 닥친 어둠에 무너져 내린 삶
이번에 소개하려는 책 <전맹선생>은 어느 날 갑자기 양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일본의 중학교 교사 아라이 요시노리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8세에 갑자기 오른쪽 눈에 망막박리가 발병, 34세에 왼쪽 눈마저 실명한 그는 학교와 가정 모두에서 자신이 설 곳을 한순간에 잃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된 후 그는 방구석에 틀어박혀 걸핏하면 힘들게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아내에게 화를 내고, 심지어는 어린 딸의 사소한 한마디에도 화를 참지 못할 정도로 절망과 분노 속에서 시간을 보내며 수차례 자살의 유혹에도 시달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직원조합을 통해 걸려온 한통의 전화가 저자의 삶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미야기 미치오라는 사람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있으면서도 고등학교에서 물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노력만 하면 얼마든지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다고 저자를 설득합니다. 처음에 저자는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제안을 거절하지만 거듭된 권유에 결국 재활을 결심하지요.
힘든 재활기간을 거쳐 저자는 결국 양호학교로 복직하고 매일 왕복 5시간 거리를 통근하면서도 교직에 대한 열의를 불태웁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그가 바라던 집 인근의 일반 중학교에서 다시 교편을 잡습니다.
걱정의 목소리가 높자 정장(우리나라의 읍장에 해당)은 이렇게 단언했다지요.
“괜찮아. 어떻게든 되겠지. 아라이 씨는 중도에 실명하고 우리는 상상도 못할 고생을 해온 사람이에요. 그런 아라이 씨를 교사로 맞이한다면, 우리 나가토로 아이들은 사람을 대하는 배려심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게 될 겁니다.”(201쪽)
삶을 지탱해주는 ‘존재의 가치’
이 책을 읽는 동안 다시금 확인한 것이 있다면,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존재’ 그 자체가 갖는 가치이고 그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것은 바로 ‘관계’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이라고 하면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경우가 많지만, <전맹선생>에서는 저자 개인의 노력보다는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춥니다. 묵묵히 저자를 지켜봐주는 부모님과 가장을 대신해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아내부터 저자의 재기를 지원하는 지역 인사들, 동료교사, 자원봉사자 그리고 안내견 클로드와 마린까지…. 매일 아침 등굣길에서 길을 안내하는 귀여운 학생들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이런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저자는 자신의 존재를 되찾아가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존재에도 숨을 불어넣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모든 존재는 나름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것입니다. 한명의 사람으로서, 교사로서, 학생으로서, 부모로서, 자식으로서…. 조금 여유를 갖고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하나의 존재에 의미를 불어넣는 것은 어떨까요? 그러다 보면 각박한 우리 삶에도 상쾌한 여유가 한가득 채워지지 않을까 합니다. | 강중민 jmkang@kft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