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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다문화 아이들, 사랑이 새 희망을 만든다

“나는 중국산이 아니야!”
“야, 중국산! 여기는 우리나라야. 너희 나라로 가!”
신토불이 기치를 높이 세우는 우리에게 중국산이란 ‘속기 쉬운, 못 믿을, 변변치 못한, 우리에게는 영 맞지 않는 그 무엇’이라는 강한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얘기하는 ‘중국산’이라는 말은 중국에서 건너온 농산물이나 ‘짝퉁’ 상품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올해 6학년이 된 찬우(가명)가 1학년 입학하면서부터 친구들에게 얻은 별명이다. 아이 어머니가 중국에서 오셨다는 사실은 안 친구들은 선생님이 안 계실 때를 골라 돌아가면서 아이를 중국산 취급했고,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의 멍든 마음은 변변치 못한, 사랑받지 못하는 진짜 중국산이 되어갔다. 멍든 아이보다 더 피멍든 가슴을 가진 부모는 결국 3년이나 지난 다음에야 다른 학교로 전학을 시키고 말았다.

“엄마, 꼭 다시 만나요”
필리핀에서 시집 와 남편과의 불화를 못 이긴 아내는 어린 두 아들을 떼어놓고 매정하게 가정을 버렸다. 그래도 어미라고 가끔 전화하고 찾아와서 맛난 음식에 선물보따리를 잔뜩 안기고는 훌쩍 사라지기를 반복해 형제는 또 하염없는 날들을 기다림으로 절망하며 지내야 했다. 알코올에 의존해 자식마저 돌보지 않는 아버지. 두 형제는 무단결석을 일삼으면서 길거리를 방황했고, 이들을 발 벗고 찾아 나선 담임선생님과 때로는 PC방에서, 때로는 동네 놀이터에서 마주치곤 했다. 아이들의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한 주변의 선생님들이 결국 인근의 작은 학교를 소개해 전학하게 되었다. 한 학급이 10명 남짓이니 선생님의 따스한 손길을 좀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주변 어른들의 생각에서다. 지금도 작은 아이는 일기장에 쓰곤 한다.
‘엄마, 왜 미국에 갔어요? 나는 엄마가 없어서 슬퍼요. 그렇지만 엄마 얼굴 생각하면 웃음이 나요. 나는 커서 비행기 조종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아빠랑 형아를 태우고 미국에 날아가서 엄마를 만날 거예요. 그때 꼭 우리를 다시 만나요.’

“참 다르게 생겼네”
이슬이(가명)는 한 눈에 봐도 다문화가정 아이다. 거무스름한 얼굴빛, 커다란 쌍꺼풀, 낮은 코, 두툼한 입술. 같은 반에 다문화가정 학생이 없었기 때문에 외모가 특별한 이슬이는 입학할 때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았다. 친구 집에 놀러가지도 못하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일도 없었다. 아침이면 학교에 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엄마랑 다투고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혼자 놀기’ 대장이었다. 보다 못한 엄마도 덩달아 마음에 그늘이 깊어졌다. 결국 엄마는 딸아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다문화가정 학생들이 많이 모여 공부한다는 학교를 찾아 이슬이를 전학시키게 되었다.
“가나다밖에 못 써요”
‘똘망똘망’ 영특해 보이는 눈동자에 기다란 속눈썹, 누가 봐도 2PM의 닉쿤을 닮은 범수(가명)는 어린 시절에 엄마를 따라 베트남에 가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낯선 환경, 낯선 친구들에 둘러싸여 겁을 먹은 채 입조차 제대로 뗄 수 없던 범수는 말 못하는 아이, 글 모르는 아이로 1년을 소리 없이 살아야했다. 말 안하는 아이를 보고 선생님들조차도 한국말을 모르는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범수는 글은 쓸 줄 몰랐지만 우리말은 유창하게 하는 아이였다. 주변사람들의 오해로 인해 말 못하는 아이로 1년을 지낸 범수는 말과 글이 막힌 곳에서 친구도 하나 없이 어떻게 1년여를 견디며 지냈을까? 아버지는 주변에 다문화학교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2학년이 되면서 전학시킬 결심을 하게 되었다. 범수가 새 담임선생님을 만나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리며 처음 건넨 말은 “선생님, 저는 ‘가나다’ 밖에 못 써요”였다. 정말로 범수는 ‘라’자는 받아쓰지 못했다.

“교사들도 준비가 필요하다”
아무런 준비나 대책 없이 찬우나 이슬이, 범수와 같은 다문화가정 학생의 담임이 되는 순간, 모든 교사들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특별한 관심과 지도가 필요한 아이에게 어떤 순서와 방법으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더 많은 애정을 쏟고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리라’ 굳은 결심도 하게 된다. 그러나 그 기나긴 미로의 도착점은 결코 쉽게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저마다 다른 색깔의 요구와 기대를 가진 30여 명의 아이들, 그 아이들 모두를 오로지 열정 하나로 가르칠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학교생활에 부적응 현상을 보이는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문제를 담임교사 탓으로 돌리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하지만 학교 현장엔 올바른 다문화교육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빈곤한 상태다. 선생님들은 매일매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 그런 시각을 쪼개어가며 학생들 개개인을 제 나름의 특성대로 키워내기란 ‘초울트라슈퍼’ 교사라도 안 될 일이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 다문화교육이 화두가 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이다. 교사들에게도 준비가 필요하다. 교사들은 다문화가정 학생 지도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거니와 주변에 도움을 청할 컨설턴트도 흔하지 않고,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고 소통할 네트워크도 구축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유창한 다문화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은 찬우나 이슬이, 범수를 끌어안고 갈등과 선택의 길 위에서 번민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중국산이라고 놀림 받던 찬우. 찬우는 전학간 뒤 2학기 때 반장이 되더니, 학년말고사에서는 1등을 했다. 지금은 전자과학탐구대회 교내 대표로 선발되어 학교가 끝나고도 해가 지는 줄 모르고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무단결석하며 거리를 방황하던 두 형제. 수학공부를 잘하는 형과 그리기에 소질을 보이는 아우는 누가 깨워주지 않아도 자명종 소리에 벌떡 일어나 아침 7시 40분 학교버스를 타고 등교하는, 하루도 결석 안 하는 모범생이 되었다.
외모가 특별해 외로웠던 이슬이는 운동능력을 알아보신 담임선생님의 노력으로 서산시 초등학교 투포환 대표선수가 되었다. 비록 도 대회에서 상을 타지는 못했지만 자신감이 한껏 차올라 학교생활에서도 선수가 다 되었다.
벙어리 아닌 벙어리로 살던 범수. 글을 읽을 수 있게 때려서라도 가르쳐 달라던, 그게 소원이라던 범수 아버지의 바람은 이루어졌다. 담임선생님과 한글사랑 선생님의 끈질긴 한글지도로 이제는 하루에도 책을 몇 권씩 읽어내고, 가끔은 100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로 아버지 심장을 벌떡거리게도 한다.
나는 이 아이들이 전학 온 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다. 하지만 우리 학교는 다문화가정 학생들만 다니는 특수한 학교는 아니다. 전교생이 75명인 시골의 작은 학교, 그 안에 다문화가정 학생 26명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는, 정말이지 지극히 평범하고 조금은 색다른 다문화 특성화학교다. 이 작은 학교에서 세상의 모든 행복한 아이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어우렁더우렁 재미있게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여러분께 들려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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