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악 막아내고, 시간 선택제 교사 저지하고, 돌봄교실은 반드시 학교 밖으로 원위치 시키겠습니다.” 신임 유병열 서울교총 회장의 각오는 단단하고 명쾌했다. 지난 5월 23일 제36대 서울교총 회장에 당선된 그는 교사들의 정상적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그 어떤 세력과도 타협하지 않겠다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달 2일 서울 신문로에 있는 서울교총 회장실에서 만난 유 회장은 선거 운동을 하면서 교사들이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며 “임기 동안 서울교총이 회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교사들이 불안해하는 공무원 연금 개악은 한국교총 등 힘을 모을 수 있는 모든 세력들과 함께 막아 낼 생각이다. 또 올 초 교육계를 강타한 돌봄 교실에 대해서는 ‘가장 권위적인 탁상행정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교육 현장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결과 학교가 난장판이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 회장은 교사들에게 과중한 업무부담은 물론 교육 본연의 기능을 마비시켜버린 돌봄교실은 시·군·구 등 지자체에서 맡아 운영하도록 반드시 원위치 시켜놓겠다고 다짐했다.
교사들, ‘교권은 둘째 치고 수업권이라도 확보됐으면….’
“교권침해 사건이 발생하면 교원들은 외롭습니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아요. 교육청조차 모른 척하기 일쑤입니다. 사건 발생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해 부당한 압력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하고 억울한 선생님이 없도록 적극 지원하겠습니다. 직을 걸고서라도 이 문제에 대처할 생각입니다”라며 심각한 수준을 넘어 이젠 학교의 존립을 위협하는 단계에 접어든 교권침해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은 “선생님들로부터 ‘교권은 둘째 치고 수업권이라도 확보됐으면 좋겠다’는 하소연을 들었다”면서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서울교총 회장으로서 고민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젊은 교사들의 가입이 줄어들면서 회원 수 감소는 물론 조직이 고령화 추세를 보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교사들의 교원단체 가입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이며 의무라고 강조했다. “요즘 젊은 교사들은 교원단체 가입이 자신에게 이익인지 손해인지만 따지는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교총은 교사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유일한 단체입니다. 이런 단체가 힘을 가져야 교사들의 권익이 진정으로 보호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조희연 서울교육감과는 ‘비판적 협력자’로 관계를 유지할 뜻임을 밝혔다. 서울교육 발전을 위해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리겠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서울교총 회장으로서의 소임과 역할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유 회장은 강원도 출신으로 서울교육대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서울교대 교수에 임용된 뒤 신문사 주간, 학생처장, 교무처장, 교육전문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서울교총 이사와 서초구 교총 회장을 지냈으며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회장 선거에서 낙승을 거뒀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현장에 가보니 교장이건 평교사건 모두들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교사들의 분노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참고 참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쳐도 존경은커녕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데다 정부는 정치·경제논리를 내세워 학교현장을 헤집어 놓고 있으니 오죽하겠습니까. 당선된 순간 그런 선생님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교원들을 위한 서울교총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는데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선거를 통해 느낀 교육계 民心은 무엇이던가요.
“많은 교장 선생님들이 외롭고 힘들다고 하셨어요. 어떤 교장 선생님 한 분은 학부모들과 갈등으로 난처한 상황에 부닥치니까 교육청이고 뭐고 다 도망가고 나중에는 혼자만 남게 되더라며 씁쓸해하더군요. 말로는 교권보호 운운하지만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하는 지수는 매우 낮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교사들 중에는 교권을 강조하는 분들이 많았고, 연금에 대한 걱정도 많은 분들이 하셨어요.”
중학교 선생님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고 들었습니다.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그래요. 중학교 선생님들은 이구동성으로 ‘교권은 둘째 치고 수업권이라도 확보됐으면 좋겠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돌봄교실은 무책임한 탁상행정의 전형 … 확대 용납 안 할 것
외롭고 힘든 교원들을 위해 생각해 둔 대책이 있습니까?
“우선은 세 가지예요. 공무원 연금 개악 반드시 막아내고, 시간 선택제 교사 도입하는 것 저지하겠습니다. 또 돌봄교실은 원래 있던 ‘보육’으로 원위치 시키겠습니다. 학교는 교육하는 곳이지 어린이집이 아니잖습니까.”
‘돌봄교실 원위치’는 무슨 뜻입니까.
“구청이나 시청에서 해야 할 보육업무를 왜 공부하는 학교에다 떠넘기냐는 거죠. 학교가 엉망이 돼 버렸어요. 돌봄교실을 만들어야 하는데 공간은 없고, 모자란 예산 때문에 학교는 쩔쩔매고, 공문은 홍수처럼 쏟아지니 배겨날 수 있겠어요. 보건복지부건 지자체건 보육을 담당하는 부서가 책임져야 합니다.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을 겁니다.”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돌봄교실은 아주 무책임하고 학교 현장 무시한 탁상행정의 전형입니다. 그리고 매우 권위주의적 발상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어요. 정책의 합리성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밀어붙인 것 아닙니까. 지금 선생님들만 죽을 지경입니다.”
강한 교총을 말씀하셨는데 교권보호도 더 강력해지나요?
“교권보호를 위한 서울교총 시스템은 과거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어요. 300여 명에 달하는 자문변호인단이 교권수호에 앞장서고 있고, 한국교총과 연계된 ‘교권 119’가 있어 사건이 발생하면 회원 편에 서서 신속히 처리하고 있습니다. 또 교권 침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선생님의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교권 침해 사건을 먼저 찾아가서 보호하는 것도 절실하다는 생각입니다. ‘드러나지 않은 교권 침해 사건’의 모니터링과 함께 서울교총 홈페이지에 익명으로 교권 침해 사건을 신고할 수 있는 게시판을 만들 계획입니다.”
교권보호 3단계 시스템을 공약으로 내걸으셨더군요.
“교권침해 사건은 묘한 특징을 갖고 있어요. 교사가 피해자인데 오히려 가해자들이 큰소리치고 정작 교사는 죄지은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건이 발생하면 그것을 신고하는 선생님도 많지만, 마음으로 삭여버리는 선생님도 많습니다. 어떤 학교는 학교 전체가 교권 침해 사건을 쉬쉬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교권보호 3단계 시스템’입니다. 1단계는 사건 초동단계에서 교사보호 및 처리에 나서고, 2단계는 법률 지원 및 변호사 지원, 그리고 3단계는 교사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것으로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교권시스템을 확립해 나갈 것입니다.”
3년 임기 동안 서울교총은 어떻게 달라지나요.
“학교현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잘못된 정책에 대해 강력하게 저지 투쟁할 것입니다. 또 젊고 살아 움직이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고 선생님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서울교총을 새롭고도 강력한 교총으로 재탄생시켜서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선생님을 위한 진정한 교총으로 재창조해 내겠습니다.”
전교조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젊은 교사들의 가입이 저조합니다.
“요인이 여러 가지죠. 외부적으로는 교권붕괴와 교원의 생존권을 흔드는 정책이 계속됐고 내부적으로는 교총이 시대의 염원과 바람을 따라잡지 못한 탓이 크겠지요. 이제부터라도 회원의 목소리를 적극 수용하기 위해 ‘2030 위원회’와 ‘4050 위원회’를 둬 회원들의 의견을 따르고 서비스하는 조직으로 개편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세무·가정법률 무료 상담 실시, 건강한 여가활동을 위한 혜택 강화 등을 비롯하여 맞춤형 연수 확대, 각종 교육연구회 지원도 추진해 나가겠습니다. 무엇보다 젊은 교사들에게 교총에 가입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적극 노력할 생각입니다.”
서울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가 당선됐습니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서울교총은 비판적 협력관계로 교사들 입장에서 시교육청을 견제하고 또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조 당선인께는 3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첫째 정치권 눈치 보지 마라. 둘째 정치·경제논리에 매몰되지 말고 교육본질을 실현하는데 충실해라. 셋째 교육정책을 펼칠 때 반드시 현장을 봐라 입니다. 전임 곽노현 교육감처럼 현장에서 수용할 수 없는 정책들로 학교현장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