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여기저기 ‘수학’이 숨어있지 않은 곳이 없다. 약 4,000년 전에 발견된 수학적 사실들은 변함없이 그대로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그 바탕 위에 또 다른 발견들이 축적되고 있다. 수학은 보편적이고 불변하다. 시대와 장소, 사상과 민족을 초월한다. 그래서 수학은 그 무엇보다도 아름답다.
‘No one ignorant of geometry may enter(수학을 모르는 자는 들어오지 마라).’ 약 2,500년 전, 탁월한 수학자, 철학자. 천문학자 등 당대 최고의 지성이 모였던, 플라톤이 세운 ‘아테네 학당(Academia, School of Athens)’ 입구에 쓰인 문구이다. 그들은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임을 이미 알았다. 당시, 수학은 현대 수학과 동일한 틀로 이미 확립되어 있었다. 유클리드(Euclid)의 ‘원론(Elements)’이다.
수학은 인류 문화유산 중 최고이며 영원한 가치를 지닌다. 모든 국가가 사라지고, 모든 이념이 퇴색되어도 수학은 사라지거나 퇴색될 수 없다. 당대 최고의 수학을 소유한 민족이 세계를 경영했지만, 수학은 요란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온통 수학이지만 수학은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경제학, 공학, 의학에 재화가 몰리지만 수학은 태초부터 가난하다. 수학은 ‘수학적 논증으로는 영원히 접근할 수 없는 진리가 있음’을 증명한다. 스스로의 한계를 규정함은 수학의 능력이며 동시에 진리 앞의 겸손이다. 예술을 하기 위해 수학을 떠난 제자에 대해 ‘예술 할 만큼의 상상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수학할 만큼의 상상은 부족했다’며 흔쾌히 보낸 큰 수학자의 독백은 무엇을 뜻하나? 수학은 상상이고, 사상이며, 철학이고, 예술이다. 아날로그 수학엔 정신과 영혼이 필수적이다.
수학은 이론일 때 아날로그이고, 구현되어 감각하게 되면 디지털이다. 급한 마음에 디지털에 들뜨지 않고, 차분히 아날로그로 뜸 들어야 한다. 아날로그 교육 없는 스마트 교육은 결코 스마트 할 수 없다.
디지털에 아날로그가 없는 것은 공허할 뿐만이 아니라 불가하다. 교육에 신념과 사상, 철학과 예술이 있어야 한다면, 아날로그가 교육의 기초를 굳건히 받쳐야 한다. 아날로그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권한다. 디지털 교육의 성패는 아날로그 교육의 성패에 달렸기 때문이다. 수학은 이론일 때 아날로그이고, 구현되어 감각하게 되면 디지털이다. 기초체력과 기본기 없이 고난도 기술이 가능할까? 기초과학 없는 기술이 퍼스트 펭귄이 될 수 있을까? 아날로그는 내용이고 디지털은 수단이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의 결과이며 구체화이다. 세계를 호령하던 톨레미 왕이나 알렉산더 대왕은 수학의 힘과 아름다움을 알았다. 탁월한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들은 왕만 다니는 길이 있듯이 수학을 배움에도 왕도(王道, royal road)가 있을 줄 알았다. 수학자는 그들에게 분명히 일렀다. ‘왕이 통치하는 나라엔 왕도가 있어도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급한 마음에 디지털에 들뜨지 않고, 차분히 아날로그로 뜸 들어야 한다. 아날로그 교육 없는 스마트 교육은 결코 스마트 할 수 없다. 수학에 관심을 권한다.
그림 안에 수학이 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Non mi legga chi non e matematico(수학자가 아닌 사람은 내 책을 읽지 마라)’라며 미술에서 수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림 속으로 들어 온 수학을 살펴보자. 궁궐의 화려한 단청과 절집의 대웅전 꽃 창살을 수학적으로 감상해 보면, 색이나 모양으로는 감지할 수 없었던 깊은 아름다움이 드러난다. 한국의 깊고 그윽한 전통 문양과 이슬람의 화려하고 다양한 문양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지만, 거기에 스며있는 수학적 원리는 동일하다. 실제로 수학은 한국의 전통 문양이건, 이슬람 문양이건 가능한 띠(frieze) 문양은 일곱 개뿐이고, 가능한 벽지(wallpaper) 문양은 열일곱 개뿐 임을 증명한다. 단청, 한복, 도자기 등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에서 일곱 개 각각의 띠 문양 모두와 열일곱 개 각각의 벽지 문양 모두를 찾아 제시하는 것은 우리 전통 문양의 다양성을 수학적으로 과시하는 결과가 된다. 문양의 수학적 접근은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기준에 근거하며, 패턴의 특성을 수치화하기 때문에, 현대 감각에 맞는 전통 문양 디자인을 풍부하게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즉, 수학은 아날로그적으로 확립된 문양 생성 과정을 프로그램화하여 디지털 컴퓨터를 활용하여 다양한 문양을 디자인할 수 있게 한다.
수학, 암호의 정체를 밝히다 영국의 수학자 튜링(A. Turing)이 ‘이미테이션 게임’을 통해 에니그마(ENIGMA)의 암호를 푼 것은 수학의 힘이었다. 그 전쟁에서 수학은 어느 전투함이나 폭격기, 어느 탱크보다 전쟁의 승패를 크게 좌우했다. 인간의 사고 과정을 기계로 모방(imitation)하는 ‘튜링 기계(Turing machine)’는 컴퓨터의 원조가 되었다. 튜링이 적용한 그 아날로그 수학이 요즈음의 첨단 디지털 컴퓨터로 진화하여, 당시의 특급 비밀인 암호 해독 기법은 이제 장난감이 되었다. 아날로그 수학은 디지털 컴퓨터를 가능하게 하고, 그 디지털 컴퓨터는 다시 새로운 아날로그 수학을 견인하여 더 강력한 힘을 얻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줄리아(G. Julia)는 복소수 함수의 되먹임(feedback)이 흥미 있는 현상을 유발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수학적 발견이 수학의 역사에서 잊힐 리 없다. 수십 년 후, 디지털 컴퓨터가 이 아날로그적 현상을 보여준 것이 프랙탈(fractal) 도형이다. 무한히 자기를 복제하는 모습을 디지털 기법으로 관찰하는 일은 즐겁다. 어느 화가도 그리지 못했던 가상의(virtual) 풍경을 그려내는 디지털 기술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그 시각화를 가능하게 하는, 보이지 않는(invisible) 아날로그 수학을 잊으면 그 비주얼은 허상일 뿐이다. 디지털은 감각할 수 있는 아날로그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