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하순 독일 함부르크에서 개최된 국제수학교육자대회(ICME13)에서 한국에 대한 언급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한국 학생은 수학적인 숙달도를 평가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고를 확장하여 다방면에 활용할 줄을 모르기 때문에 실제 수학실력은 형편 없다는 극단적인 시각도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 교육 관련 행사장을 가기 위하여 엘리베이터를 탔다가 학부모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우르르 나오는 수백 명의 아이를 보니까 ‘저 많은 아이가 내 자식의 경쟁자구나. 저 학생들을 모두 시험을 쳐서 눌러야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심장이 답답해졌어.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 마음이 착잡해.”
대입제도에 무릎 꿇은 교육과정 대학은 초·중·고등학교 교육의 최종 목표이자 결과가 된 지 오래다. 선호하는 대학의 정원에 비하여 입학을 원하는 학생의 숫자는 압도적으로 많다.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 때문에 학습의 본질 추구보다는 점수 따기 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떠한 내용으로 어떻게 치러지느냐에 따라 학교의 교실 풍경은 크게 달라진다.
2015년 9월에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되었다. 고시된 총론을 읽어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실은 이전의 교육과정도 원론적으로는 훌륭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아무리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겠다'고 천명할지라도 학생들 서로가 시험으로 이겨야 승자가 되는 입시 구조가 지속되면서, 우리의 교육과정은 번번히 대입제도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고시된 지 2년 후인 2017년도에 새 교육과정에 걸맞은 대입제도가 발표될 예정이라고 한다. 한창 새로운 대입제도가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대학수학능력시험 시기와 시험 문항이 학교 교육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교육과정 종료 전 시행하는 '수능'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기초과목이었던 국어·영어·수학 교과군의 일반과목을 6개 정도로 나누고, 6학기에 1과목씩 개설하여 배우도록 샘플이 제공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내용을 포함한 수능시험이 3학년 2학기 11월 둘째 주 목요일에 시행된다. 고등학교에서는 개설된 교육과정과는 별개로 3학년 2학기에 개설된 과목은 1학기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미리미리 진도를 당겨서 수업을 진행해야 대입 수능일 전에 교과서 분량을 다 가르칠 수 있다. 교육과정과 수능시험 일자의 충돌은 모두가 알면서도 대학의 편의를 위하여 교육부도 방치하였고, 학교에서도 교육과정과 다르게 수업을 운영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더욱 큰 문제는 수능 이후이다. 수능시험을 치르고 나면 더 이상 배울 교과서 분량이 없다. 학생들도 교사들도 수능 이후 교실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방황하기 일쑤다. 과연 이것이 학교가 혹은 교사들이 노력하지 않아서인지, 교육정책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와 교육청은 수능 이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운영하라고 매년 학교에 경고성 공문을 보낸다.
수능 대상 과목 외에는 무관심한 학생들 국어·영어·수학 교과에서도 수능 출제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수업시간에는 교과서와 별개로 운영되고 있으며, 원칙대로 진행하면 학생과 학부모는 학원에서 해결하려 한다. 사회·과학탐구 교과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세계사 편성시간에 한국사를, 세계지리 편성시간에 한국지리를, 법과 사회 편성시간에 사회문화를,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Ⅱ 편성시간에 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Ⅰ을, 화법과 작문 편성시간에 문학을, 영어회화편성 시간에 영어독해와 작문의 운영 및 평가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와 별개로 학교 현장은 수능 선택률이 낮은 과목 시간을 선택률이 높은 과목의 수업으로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의 대학입시 준비에 더 유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만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는 공교육정상화법에 의한 선행학습금지정책에 역행하는 것은 물론 파행적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