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부터 국어를 제외한 초등학교 5,6학년 교과서 일부 단어에 한자의 음과 뜻을 함께 적는 ‘한자 병기’가 이뤄진다. 교과서 용어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경우 300자 안에서 한자를 표기한다. 표기 한자는 미리 정한 300자 내로 제한되며, 교과서의 밑단이나 옆단에 한자와 음, 뜻을 모두 제시해야 한다.
교육부는 이 같은 내용의 ‘초등 교과서 한자 표기 기준’을 마련해 2019년부터 적용한다고 2일 밝혔다. 교육부는 “한자 지식이 따로 없어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음과 훈을 제시하며 표기 위치도 밑단과 옆단이라 학습량과 수준에서 학습 부담이 거의 없다”며, 적정 한자 수와 표기 방법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걱정이 앞선다. 우선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는 교과서 용어 이해에 대해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자는 300자로 제한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수준의 학습 용어는 한자 표기까지 해야 하는 어려운 개념어가 많지 않다. 한글로 표기해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따라서 굳이 한자로 표기할 필요가 없다. 아울러 300자의 한자라면 그리 어려운 용어 개념이 아니라는 전제를 포함하고 있다. 300자의 한자로 표기할 전문 용어라면 한글 표기로 충분하다.
교육부는 한자 지식이 따로 없어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도록 음과 훈을 제시하고, 표기 위치도 밑단과 옆단이라 학습량과 수준에서 학습 부담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이 설명에도 모순이 있다. 한자 지식이 따로 없어도 이해할 것이면 무엇 때문에 병기를 하는가. 그리고 밑단과 옆단이라는 공간적 위치로 한자 병기의 억지를 비켜가려는 의도를 스스로 고백하고 있다.
한자에 대한 학습 부담이 없다고 하지만, 잘못된 인식이다. 교육부의 의도대로 용어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면 한자를 봐야 할 것이 아닌가. 한자를 보는 순간 학습 부담이 생기고, 사교육 위험 또한 높다.
초등 교과서 한자 병기 표기는 헌법재판소의 판결과도 배치되는 상황이다. 지난 11월 24일 한자 혼용을 원하는 단체에서 공문서 한글전용을 규정한 ‘국어기본법’과 중·고교 한문 교육을 선택 과목으로 돌린 ‘교육과정’이 위헌이라며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모두 기각 결정을 내렸다. 헌재에서는 “낱말이 한자로 어떻게 표기되는지를 아는 것이 어휘능력 향상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중·고교 한문을 선택 과목으로 돌린 교육과정이 위헌이라고 본 소수 재판관조차 초등학교 한자 교육이 반드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중학교부터 한문을 필수 교과로 가르치라 권했다.
한자 병기를 주장하는 측은 용어의 의미가 정확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고종 칙령에서 한글을 나라 글자로 밝힌 이래 한글 시대로 완벽하게 옮아왔다. 120여 년 동안 과도기를 거쳐 이제 완벽한 한글을 쓰고 있다. 신문에도 한자가 안 보이고, 교과서를 비롯해 웬만한 책에는 한자가 없다. ‘태양계, 광합성, 액체, 밀도’ 등의 한자어도 한글 표기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국어는 70%가 한자어다. 오랫동안 한자 문화권에 언어가 생성된 결과다. 이런 역사적 맥락은 있지만, 오랜 한글 표기 언어생활로 한자어 없이도 의미 표현이 가능하다. 한자 표기가 꼭 필요한 학문적 글에는 어쩔 수 없이 한자를 병기할 수 있다. 그 외에는 한자 표기가 오히려 어색하고 낯설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올바른 언어생활과 함께 한자 표기를 배격해야 하는 일이다. 공원 등에 동상이나 기타 시설물을 만들고 한자로 써 놓은 것을 본다. 특정 단체의 임명장이나 문서 등에 아직도 한자를 쓰고 있다. 사회적으로 유명한 집안의 부고가 신문 하단에 광고처럼 실리는데 그때도 온통 한자로 쓴다. 이런 것은 읽기도 어렵고 거부감이 든다.
우리 글자는 소리글자다. 한문은 뜻글자다. 애초부터 다른 문자다. 우리 문자 옆에 한자를 표기하겠다는 것은 소리글자를 뜻글자로 이해하겠다는 엉뚱한 발상이다. 초등 교과서에 한자 병기는 그 자체로도 바르지 않지만, 한자 노출로 생기는 여러 사회적 폐단도 걱정이다. 관광객이 우리나라에 와서 여기저기서 한자 표기를 많이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를 보고 우리나라를 중국의 속국이라는 의심을 한다. 초등 교과서 한자 정책보다 우리가 우리 글자의 특성을 살려 바르게 사용하는 교육과 실천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