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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연구

[수업이야기] 학생과 관계 맺기②

마주보고 소통하기



지난 학기, 경력 4년차 S교사(영어)는 1학년 수업공개를 자청했다. 
 
학습자료를 한 아름 안고 교실로 들어온 그는 수업 시작 5분 전부터 칠판에 정갈하게 판서를 시작했다. 모둠칠판과 보드 팬 학습지, PPT 점검이 끝나자 수업 종이 울렸다. 
 
이내 S교사는 4명이 한조가 되게 모둠형태로 책상을 배열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마지못해 느릿느릿 움직였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종이 친 후 늦게 들어오는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부탁했고 같은 불평이 되풀이 돼 정작 모둠은 15분이 지나서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사물함으로 필기구를 가지러 가거나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아이들로 S교사의 상냥한 수업 안내는 묻히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 아이가 “야! 조용히 해!” 소리를 질렀다. 
 
학습지와 모둠칠판이 분배되자 여기저기서 “뭐 하래냐?”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S교사는 PPT 화면에 새로운 단어를 띄웠고 정확한 발음으로 읽어주며 따라 읽으라는 멘트를 했다. 마지못해 몇몇 아이들이 따라 읽었다. 모둠칠판을 교탁 앞 칠판에 배열해보자고 하자 서둘러 옆 모둠의 내용을 베껴 모두 똑같은 답이 올랐다. 답이 같으니 특별한 피드백 없이 김이 빠졌다. 
 
수업 전 판서한 문장을 읽고 해석하는 S교사의 목소리와 발음은 완벽했지만 문법을 설명할 때쯤 조는 아이가 늘고 아예 엎드려 자는 경우도 생겼다. 그러자 S교사는 준비한 푸치니의 오페라 중 ‘여자의 마음’을 동영상으로 들려줬다. 오늘 본문 내용이 바로 푸치니의 생애에 관한 것이었고 그래서 동영상도 준비한 듯했다. 한 남학생이 “여자의 마음이네요” 흥얼거리자 S교사는 반가운 듯 칭찬했지만 대다수 아이들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이내 선생님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졌고 더 준비한 설명을 생략한 채 학습지 형성평가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수업나눔 후 S교사는 “항상 수업준비를 2시간 이상 하는데도 수업 후 낭패감이 든다”는 고민을 털어놨다. 학생 활동중심 수업을 위해 협동학습, 토론학습 연수도 받고 수업 적용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는데도 아이들 반응은 시큰둥하다는 것이었다. 사실 수면시간을 줄여가며 애를 쓴 S교사의 수업 디자인은 완벽하고 자료도 풍성해 충분히 지지되고 격려 받을 만한 것이었다. 
 
다음 날, 나는 두 명의 아이들을 인터뷰하고 수업나눔을 시작했다.  
 
S교사의 고민을 염두에 두고 먼저 어느 지점부터 아이들의 수업이 시작되는지 살폈다. 차분히 동영상을 본 그는 15분이 지나서야 수업이 시작됐음을 알아차렸다. 이 후에도 설명할 때 듣지 않고 활동상황이 주어지면 “뭐 하래냐?”고 되묻는 등 모둠활동이 활발하지 않았고 개인 학습활동도 하지 않은 채 답이 주어지면 단어의 뜻 정도를 받아 적는 정도에 그쳤다. S교사는 자신이 준비한 모든 것을 설명하고 보여주고 나누어 줬지만 아이들의 이탈된 행동들은 묵인하고 있었다. 
 
“화를 내면 아이들이 나를 싫어해 관계가 무너질까 두려웠어요.” S교사는 더 재밌는 수업을 만들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더 많은 자료와 더 정교한 수업과정을 구성하는데 스스로를 채찍질 하고 있었다. 
 
나는 수업 중 큰 소리로 “조용히 해!”라고 외친 명수(가명)와 은서(가명)의 인터뷰장면을 보여줬다. 명수는 “정말 정성껏 수업을 준비하시고 실력도 좋으신 걸 알지만 아이들이 듣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라며 “선생님이 너무 착하신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은서는 “선생님이 내버려 두니까 늦게 들어오고 떠드는 애들이 자기 잘못을 잘 모른다”며 “우리가 듣든지 안 듣든지 상관없이 진행되는 인터넷 강의 같아요”라고 말했다. 
 
S교사는 충격을 받으신 듯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인터넷 강의 같다’는 말에 그는 수업 구조는 완벽하지만 상호작용이나 적절한 개입이 부족했음을 감지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모둠 만들기를 싫어하는 장면과 모둠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베끼기만 하는 장면도 함께 보며 얘기를 나눴다. S교사는 “학습활동은 생각을 서로 나누고 확인하는 과정인데 내 수업엔 그 모양만 있고 아이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돌려주는 공감과 비평이 부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업나눔은 그렇게 마무리했다. 
 
좋은 수업은 완벽한 구성과 내용을 전달하는 것보다 마주보고 소통하는 상호작용에서 만들어진다. 스스로를 채찍질만 하던 시선을 아이들에게 돌려야 한다. 때로는 단호하게 수업의 질서를 제시하고 경계를 세우는 연습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일관성 있게 대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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