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국정 역사교과서 보조교재 활용에 대한 일선 학교의 신청 현황을 발표했다. 그 결과 전국에서 83개교가 3982권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교육부의 국정 역사 교과서 활용 신청 현황 발표를 계기로 이제는 교육의 안정과 바른 역사교육 추진을 위해 국민 모두가 힘과 뜻을 한 곳으로 모아야 할 것이다. 이제 이 역사 교과서의 소모적 논쟁의 일단락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동안 역사교과서와 연구학교 신청 등에 관련한 갈등이 증폭되고 비교육적 행동마저 나타나는 등 학교와 교육이 매몰된 수렁에서 하루빨리 헤어나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역사교과서와 관련해 우리는 학생과 교육을 사이에 두고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외나무다리 싸움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최근 연구학교 신청을 둘러싸고 학교의 신청권한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 등을 반성해야 한다. 또 이념이 다른 특정단체와 세력들이 당해 학교에 찾아와 비교육적 언행과 학교 경영을 간섭하는 등 비교육적 일탈을 한 것에 대해서 심심한 반성이 요구된다.
특히, 국정 역사 교과서 활용,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 문제에 대한 민주주의 철학과 민주시민교육, 민주시민 의식 등에 대한 심사숙고가 전제돼야 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로 풀어야 할 역사 교과서 문제를 이념주의로 경도된 시각으로 접근하지 않았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자기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은 그르다는 사고는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 자신의 사고만이 최선이고 정당하다는 논리야말로 그른 논리이다.
그 와중에 일부 교직단체와 집단의 구성원들이 당해 학교에 무단 진입해 학교장과 이사장, 교직원들을 다그치는 등 법과 교육을 훼손시키는 행동마저 서슴지 않은 것은 독단과 독선이며, 생각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는민주주의의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일탈이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입에 달고 다니면서 실제 언행은 독선으로 흐른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민주주의 이념은 자유, 평등,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다. 그 중심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것이다.
사실 국정 역사 교과서 채택, 역사 교과서 보조교재 활용, 연구학교 신청 등을 학교장 책임 하에 교직원 등 교육공동체 구성원들이 소정의 규정과 절차를 거쳐서 수행했으면 그 결과에 따라 시행하면 된다. 그 권한과 책임은 시종일관 학교장에게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의 압력으로 역사 교과서 선정, 연구학교 신청이 철회되고 당해 학교 입학식이 무산되는 등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하는 학교에서 비민주적 행태가 난무한 상황을 우리는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부와 교육당국도 소임을 다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물론 최근 소위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에 빠진 격이었지만, 그동안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수많은 갈등이 증폭되고, 교육현장에서의 대립이 격화되는데도 정부와 교육당국은 무대책으로 일관했다. 제대로 된 대책은 찾아볼 수 없다.
국정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이를 믿고 신청한 것인데, 교육부가 외부의 세력으로부터 학교와 교육을 지키지 못한다면 정부를 믿고 제대로 된 교육, 소신 있는 교육은 불가능한 것이다. 정부는 정책에 대한 일관된 집행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 공권력이 마비된 국가는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칠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2018학년도부터 사용하게 될 국정과 검정의 혼용체제를 대비하여 교과서에 문제점이 없는 지 보완하고 보충해야 하며 다양성과 민주주의 차원에서 역사 교과서와 연사 교과서 연구학교를 교육에서 바로 세우는데 노력해야 한다.
국정 역사 교과서 채택,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 신청 및 선정, 역사 교과서의 보조교재 활용 등은 이념적, 진영적 대립의 논제가 절대 아니다. 시비, 정오, 찬반의 논리가 절대 아니다.
역사가 바로 선 나라가 정체성 있는 선진국이듯이. 역사 교과서가 바로 선 국가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민주주의 국가인 것이다. 역사 교과서 문제가 단위 학교와 학교장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면 이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국정 역사 교과서의 보조교재 활용 신청 학교가 83개교라고 발표하고 학교 실명을 밝히지 못한 교육부의 고뇌도 십분 이해해야 한다. 떳떳하지 못한 행정이라고 힐난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사회적 분위기와 포용력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적어도 우리나라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려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집단의 사고를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다양성과 수용성’를 가져야 하는 것이다. 6500여개의 고교 중 1개교만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로 남은 현실이 우리나라 교육 민주화, 민주주의 교육의 현주소임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전국 중 유일한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가 단위 학교의 자율적 민주주의에 터한 구성원들의 의사 그대로라면 그 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평가가 많은 게 사실이다. 누가 뭐래도 ‘세상에서 나와 다른 것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보듬고 함께 갈 수 있는 아량’이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다. 한 가지 꽃만 만발한 온실 화원보다 온갖 야생화가 만발한 산이 더 아름다운 이유를 음미해 봐야 할 것이다.
일찍이 철학자 하버마스는 ‘역사는 진실을 펼쳐가는 활동’이라고 갈파했고, 진보주의 교육의 태두 존 듀이는 그의 역저 ‘민주주의와 교육’에서 민주주의를 떠난 교육은 죽은 교육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혼란과 역사 교과서 문제 파행에 즈음하여 음미해 보아야 할 의제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