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한 사람이라도 살믄 우리가 이기는 거여~.”
영화 군함도의 명대사 중 하나다. 일제가 저지른 대표적 만행으로 꼽히는 조선인 강제 징용의 상징 군함도.
우리민족의 한과 피와 눈물로 쓰여진 아픈 역사의 현장을 지난 8월 서울 동원중학교 학생들이 찾았다. 학생 21명과 인솔교사 5명이 함께한 이번 군함도 탐방은 동원중학교의 특색사업인 ‘창의 융합적 독서활동을 통한 역사 바로알기’ 일환으로 이뤄졌다. 학생들이 독서활동을 하고 책 내용과 관련 된 곳을 직접 찾아봄으로써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는 살아있는 체험교육을 구현한 것이다.
실제로 군함도 탐방은 동원중학교가 소설 <군함도>의 한수산 작가와 학생들 간 ‘작가와 만남’ 행사를 가진 것이 계기가 됐다. 정덕채 교장은 “독서체험 여행을 통해 독서와 독후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사고력과 비판력을 향상시키고, 바른 역사인식을 갖춘 미래세대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 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다양한 앱의 활용과 현장체험을 연계한 독서체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적 사고와 교과 융합적 활동을 폭넓게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군함도 탐방기사는 동원중학교 박예인(2학년), 이경빈(3학년) 학생이 작성했다.
지난 8월 9일, 나가사키에는 비가 내렸다. 이날 우리는 군함도에서 조선인 원폭 피해자에 대한 추도식 행사에 참여했다. 이 추도식은 평화공원에서 이루어지는 일본 정부의 공식 추도식과는 별개로 일본 시민단체가 중심이 되어 조선인 희생자를 기리는 행사다. 아침 8시로 예정된 추도식 행사를 위해 우리는 6시부터 일어나 서둘러 길을 나섰다. 비까지 세차게 내려서 도로는 혼잡했고 차는 느리게 이동했다. 결국 시간에 맞추기 위해 거의 뛰다시피 빨리 걸어 현장에 도착했다. 숨찬 가슴을 진정하며 돌아보니, 조선인 원폭 희생자를 기리는 추도비는 길가 작은 공원의 모퉁이에 세워져 있었고 추도식을 위해 15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 단체가 함께 진행한 추도식에서 일본인 시민운동가는 <아리랑>과 <고향의 봄> 같은 한국 노래를 대금으로 연주해 주었다. 비 오는 아침의 조용한 공원에서 울려 퍼지는 우리의 민요와 노래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줄지어선 일본인과 한국인 참배객들과 함께 조선인 원폭 희생자의 넋을 기리고 평안과 안식을 기원하며 차례로 추도비 앞에 헌화를 했다.
이어 자원봉사자 기무라 히데토 씨를 만나 평화공원 내에 있는 원폭기념관으로 이동했다. 기무라 씨는 시민단체 ‘나가사키 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군함도 강제징용 피해 자들의 사연을 일본 사회에 알리는 한편 생존자들의 사연을 듣기 위해 한국말을 배울 만큼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다.
원폭기념관 입구에서 우리는 피폭 때 멈춘 괘종시계 바늘과 피폭으로 녹아내린 철탑 구조물을 마주했다. 기념관에서는 많은 사진과 물품을 통해 당시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원폭의 피해 참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폭음과 열선, 방사능을 동반하는 원폭으로 당시의 나가사키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겪은 고통이 상상 이상으로 커서 놀랐다. 하지만 전시 내용을 볼수록 전쟁을 일으킨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원폭의 피해자라고 외치면서 가해자라는 점을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기무라 씨는 서툰 우리말로 “전시관에 적혀 있는 조선인 피폭자 수치가 지나치게 축소되었다”며 “역사적 진실이 왜곡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하고 바로잡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우리에게 강조했다.
평화공원 안의 대규모 기념관을 나온 우리는 광장을 지나 좁은 골목길 위쪽 작은 주택 앞에 섰다. 그곳은 시민단체가 운영하고 있는 또 다른 원폭기념관이었다. 앞서 보았던 원폭기념관이 일본인의 관점에서 바라본 원폭의 참상과 일본의 피해에 충실한 내용이었다면 이곳의 전시물들은 나가사키 인근 탄광과 군함도에서 강제 노역을 당했거나 피폭으로 숨졌던 조선인들에 대한 기록과 모습들을 전하고 있었다. 제국주의 일본이 피해를 끼쳤던 역사적 사실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중국과 동남아시아에서 민간인들에게 가해졌던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행위를 담은 자료들도 있었다. 기무라 씨는 “원폭의 피해자 중에는 조선인 희생자도 있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가르치는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면서 “나는 일본인이 되는 것보다 양심을 지키는 인간이고 싶어 일본의 만행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고 말했다.
셋째 날인 8월 11일에는 군함도 자료관 관람 및 군함도 방문을 했다.
먼저 군함도 자료관부터 보았는데, 그곳에서는 군함도의 역사와 현재의 모습 등을 보여주고 있었다. 각종 전시물과 사진, 영상, 모형제작이 되어 있어서 군함도의 현재의 외형적 특징과 과거에 어떠한 건물들이 있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곳 자료관 역시 군함도에서 일어난 조선인에 대한 억압과 비인간적 처우는 철저히 감춘 채 근대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홍보하고 당시 일본인들의 경제적 생활수준이 높았음을 선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오후에는 드디어 군함도를 보러가게 되었다. 군함도까지는 배를 타고 나가사키- 다카시마 섬-군함도 순서로 약 1시간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출항 때부터 약간씩 배의 출렁임이 느껴지더니 결국 파도가 높아 접안을 못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와 우리는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군함도 주변을 선회하는 동안 회색 콘크리트의 차갑고 우울한 색깔이 마음을 눌렀다. 비록 땅에 발을 내딛진 못했지만 소설 속 인물들이 살았던 배경을 실제로 보며 비교 할 수는 있었기에 유익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군함도에 담긴 아픈 역사를 바르게 알고 이를 알리기 위해서 역사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나가사키의 거리를 걸었던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이제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의 여행들은 그 기억이 옅어진다. 하지만 소설 <군함도>를 읽고 떠났던 이번 여행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우리는 이 독서여행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와 올바른 역사의식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다. 과거는 기억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그 다짐의 끝에서 우리는 인간애의 실천과 평화의 실현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