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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 의 끝, 한 시대와의 이별

대한민국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MBC ‘무한도전’이 지난 3월 31일 막을 내렸다. 10년 넘게 이어져 온 ‘토요일 저녁의 전설’ 치고는 담백한 마무리였다. 대대적인 특집 방송을 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 겠지만 ‘무한도전’의 마무리는 무척이나 담담했다. 그래서 더욱 허전한 느낌을 자아냈다.


유튜브로 대표되는 인터넷 예능 전성기는 ‘엔터테인먼트’라는 단어의 의미 그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나 유튜브 채널에서 인 기를 얻은 진행자들은 이미 10~20대 사이에서는 지상파 TV를 압도하는 영향 력을 갖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기존의 일인자들이 서서히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는 모양새다.


유독 장수 프로그램이 많은 옆 나라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침 ‘무한도 전’이 종영한 바로 그 날, 일본 후지TV의 ‘메챠메챠이케테루(めちゃ×2イケてる ッ!)’ 역시 방송 시작 22년 만에 마지막 방송을 했다. 역시 토요일 저녁에 방송되 던 일본의 대표적인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이밖에도 일본 문화계는 방송 32년의 예능 ‘모리타 카즈요시 아워 와랏테 이이토모(もりたかずよしアワー わらっ て いいとも)’ 종영(2014), 결성 28년의 5인조 그룹 스맙(SMAP) 해체(2016), 데뷔 25 년의 솔로 가수 아무로 나미에(あむろなみえ)의 은퇴 예고(2017) 등 굵직굵직한 사건을 연이어 맞이하고 있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일본의 버블시대를 상징하던 주옥같은 스타들이 아쉬움 속에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평균 이하’에서 ‘한국 최고’로

다시 ‘무한도전’ 얘기로 돌아오면, 2006년 5월 ‘무모한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이 프로그램이 처음부터 인기를 끌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유재석을 위시한 멤버들은 언제나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한 주 한 주 방송을 찍어갔다. 이 과정에서 김태호 PD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며 조금씩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2007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무한도전’이라는 팀이 대상을 수상한 것은 ‘밑 바닥부터 시작된 성공’에 대한 일말의 보상이었다. 이미 ‘무한도전’의 전 멤버와 김태호 PD는 한국 예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요인물이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한국의 연예계에서 ‘무한도전’만큼은 언제나 한발 앞서 방향을 제시하는 ‘예능 연구소’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그들은 한국 예능의 두 가지 성공 코드 ‘재미’와 ‘감동’을 모두 포섭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무한상사’와 같은 패러디 콩트는 배꼽 잡는 웃음과 함께 시대적인 의미를 담았다. 레슬링 특집 이나 조정 특집과 같은 ‘불가능한 목표’에 도전하는 모습은 눈물을 쏙 빼놓기도 했었다.


국민들은 그들을 가족처럼 여겼고 그들 역시 시청자들에 대한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달력을 만들어 팔았을 때도, 음원으로 수익이 발생했을 때도, 일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성금을 기부했다. 유쾌하고 감동적인데 착하기까지 한 ‘무한도전’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면서 ‘대한민국 평균 이하’들은 점점 성숙해져 갔다.


‘유재석’이 표상하는 한 시대

리더격인 개그맨 유재석의 캐릭터는 점점 ‘무한도전’ 그 자체의 캐릭터로 표상 돼 갔다.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의 무게감을 의식한 듯 그의 표정도 점점 진 지해져갔고, 2018년 현시점에서 유재석은 단순히 한 사람의 개그맨이 아니라 ‘저 명인사’처럼 돼버렸다. 그런 그의 캐릭터를 배출해낸 ‘무한도전’ 역시 토요일 저녁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편한 프로그램은 더 이상 아니게 돼버렸다. 재미와 감동을 갖추면서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지 않는, ‘정치적으로 완전무결한’ 프로그램을 만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무한도전’의 마지막 몇 년은 바로 그 불가능한 작전을 수행하는 고된 과정이었던 게 아닐까.


MBC 측은 이번 종영이 ‘시즌 1’의 마지막임을 밝히면서 부활의 가능성을 열어 놨 다. 하지만 ‘무한도전’이라는 네 글자에 담긴 지나친 무게감이 희석되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격변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속도감을 생각 하면 ‘무한도전’을 기다려 준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무한도전’ 종영이 남긴 쓸쓸 함은 바로 그런 불확실성에도 기인하는 것이다.


‘일본의 유재석’이라 볼 수 있는 일본의 진행자 나카이 마사히로(なかいまさひろ)는 ‘와랏테 이이토모’의 마지막 생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영화와 드라마에는 촬영 마지막 날이 있고, 콘서트에도 공연 마지막 날이 있습니다. 모두가 마지막 날을 바라보며 달려가지만 예능 프로그램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끝나지 않는 것’이 예능의 목 표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예능 프로그램의 마지막은 더없이 쓸쓸합니다.”


끝나지 않고 무한히 지속되길 원했던 ‘무한도전’의 마지막은 우리에게 ‘한 시대의 끝’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온 국민의 축제였던 2002년 월드컵을 ‘역사책’에서만 접한 세대들이 나타났듯,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알지 못하는 세대 들도 곧 나타날 것이다. 그렇게 시대의 흐름을 인식하고 새로운 세대들을 받아들이면서 기성의 어른들도 하루하루 더욱 성숙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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