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여유가 생기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최근에 전기자동차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이처럼 전기 자동차가 보급이 잘 이뤄지려면 충전소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다행히 내가 사는 아파트 주차장에도 급속충전소가 마련되어 편리하다. 그러나 가끔 충전을 하러가면 고급차를 타는 사람들이 이곳에 주차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왜 그런가 곰곰히 살펴보았더니 전기차 충전을 하는 공간은 다른 주차공간보다 영역이 넓다. 주차 공간이 넓다는 것은 차를 넣기가 쉽울 뿐만아니라 다른 차와의 차간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어 옆 차의 문짝에 찍힐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고급차를 관찰하여 보니 이 승용차 주인은 중학생인 자녀를 항상 자동차로 등하교 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학생이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오가는 길을 자동차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아이가 이같은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전기 자동차를 가진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는 엄마의 모습에서 아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이제 올 9월부터는 전기충전소에 주차를 하는 것을 방지하는 법이 적용된다고 한다. 장애인 주차장에 주차하면 벌금을 내야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공동체가 행복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법 이전에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조율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관계의 기본은 부모를 통하여 배우게 된다. 원초적 교육의 출발은 부모님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학교 선생님이다. 예전에는 이런 식으로 집안에서뿐 아니라 마을 골목 어디에서나 남을 배려하는 능력을 키웠다. 한마디로 이같은 생활을 하면서 자기조절 중추가 발달하여 자기감정과 행동을 잘 통제하고 공감 능력, 문제해결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교사가 학교에서 수업하는데 학생들은 자거나 딴짓을 한다. 요즘은 교사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어떤 부모는 자기 아이가 기가 죽는다고 학교로 찾아와 교사한테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다. 또, 최근에는 밤 늦게까지 카톡에 시달리는 교사도 있다고 한다. 지금 한국의 이같은 학교 풍경은 1960년대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 벌어졌던 일이었다. 한 정신과 의사가 30여 년에 걸친 연구 결과, '교실 붕괴의 가장 핵심적 요인은 아이들의 자기 조절 중추 즉,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뇌가 제대로 발달되지 못한 데에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자기 조절 능력은 아픈 기억을 소거하면서 어떤 일에 실패해도 극복하고 다음 시도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한 마디로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밥벌이는 하게 해주는 작용을 한다. 자기조절 능력은 우리가 인간적인 사회로 만드는데 꼭 필요한 능력이다. 미래를 위해 참고 기다릴 줄 알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능력이다. 이는 세상이 내 맘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능력이기도 하다.
이 능력을 갖추고 사는 사회는 훈훈한 바람이 불 것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모두 과민한 상태에서는 행복을 찾을 수 없다. 부모가 해줘야 할 것은 기본적인 안전을 지키는 일이요 자신의 일을 자신이 처리하는 습관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의 기본이다. 최소한 우리 아이들에게 정신과 찾는 아이를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할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