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이게 얼마 만에 해보는 모내기란 말인가?” 1970년대 후반 시골학교에 첫 발령 받아 어린이들과 동네 모내기 봉사활동 이후 처음이다. 그러니까 40 여 년 만의 일이다. 감회가 새롭다. 오늘 참가한 사람들 보니 모내기가 처음이라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그만치 도심 속에서 모내기란 구경하기 어렵고 체험하기는 더 어렵다. 도심에서 논 자체를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모내기란 못자리에 있는 모를 본래의 논에 옮겨 심는 일이다. 보온 못자리에서 자란 모는 모판 째 여기로 왔다. 우리나라 모내기 시기는 5월 중순에서 6월 하순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요즘이 모내기 적기이다. 모판을 만들면 못자리를 집약 관리할 수 있고 논에 물대기 기간을 단축할 수 있어 관개수가 절약되고 본 논 이용률을 높임은 물론 단위 면적 당 수확량을 높일 수 있으니 1석4조다.
6월 2일 오후 4시, 우리들이 모인 곳은 서수원에 위치한 일월공원 행복텃밭. 텃밭 운영자, 경기마스터가드너 등 모두 20 여명이 모였다. 모내기할 논은 손바닥만 하지만 마음은 하나이기에 이렇게 모인 것. 그런데 시작부터 문제가 생겼다. 논에 물이 부족하여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어떻게 해결할까? 도시농부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인근 일월천 개울에서 물을 퍼서 릴레이식으로 물을 나르니 금방 해결된다. 협동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써레질 준비를 마치니 곧바로 바닥 고르기에 들어간다.
모판의 모는 3종이 준비되었다. 수원토종벼 수원조(멥쌀), 대추찰벼(찹쌀), 신품종 진상벼. 이 곳을 운영하는 김태현 대표가 일월텃밭의 목표가 ‘종 다양성’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못줄을 띄우고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모내기에서도 여성시대를 실감한다. 장화를 신고 모내기에 참가한 사람 모두가 여성이다. 준비가 잘 된 경기가드너 마스터들이다. 남성은 못줄을 잡는다. 오랜만에 보는 못줄이 반갑다. 못줄 간격은 30cm라고 박영재 대표가 답한다.
수원조와 대추찰벼를 심고 나서 중간 새참시간. 섬잣나무 그늘에 모였다. 준비된 간식은 떡과 막걸리. 오미자 음료수 등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위하여’ 구호도 외치고 행복한 대화와 웃음시간이 이어진다. 한마음으로 모내기에 참가하니 힘든 줄도 모르고 작은 일에 감사해 한다. 이것이 바로 농심(農心) 아닌가 싶다. 농심은 자연에 대해 인간의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김 대표에게 도심 속 텃밭 논의 의미애 대해 물었다. 텃밭의 목표가 종 다양성인데 논이야말로 종 다양성의 최고 공간이라고 말한다. 해 모양의 둠벙에는 가시연꽃 등 수생식물이 자라고 달 모양의 논에서는 개구리밥이 떠 있고 소금쟁이가 헤엄치고 올챙이, 미꾸라지, 물방개, 수원청개구리, 금개구리 등이 서식하니 도시민들이 논 생태계와 밭 생태계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이 일월텃밭이 전국의 모범이 되어 전국에서 찾아오는 탐방객이 연 2천 여명이 된다고 하는데 둠벙의 가시연꽃과 수생생물, 오리가 찾아오는 친환경 논, 하트 모양의 배수로에서 자라고 있는 미나리와 창포가 주목을 받을 것 같다. 일월 저수지 둑 아래에 위치한 일월텃밭은 산책객에게 인기가 많다. 산책의 주요 코스가 되어 주민들의 힐링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산책객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웃이 되어 아침 해장국을 함께 먹은 적도 있다.
이제 힘을 합쳐 모내기를 다 마쳤다.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각자가 운영하고 있는 텃밭으로 향한다. 텃밭에 퇴비를 주는 사람, 모종 이식하는 사람, 토마토 줄기 순치기 하는 사람, 김매기를 하는 사람, 물주기를 하는 사람 등 각자 알아서 움직이다. 이 덕분에 일월텃밭에는 묵정밭이 없다. 운영자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
작년과 다른 점은 텃밭에 과수나무가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자두나무, 살구나무, 감나무, 아로니아를 비롯해 블루베리가 자란다. 포도나무 네 그루는 정읍에서 왔다. 옥천 블루베리는 옮겨심기를 했음에도 열매를 맺었다. 참가자 몇 명이 떠들썩하다. 뽕나무 오디열매를 따서 맛을 보고 있다. 이 뽕나무에서 작년에 누에가 자라는 것도 보았다. 볼거리가 풍성한 일월텃밭이다.
경북 영양에서 참가한 서정희 씨는 텃밭은 밥상이며 삶의 텃밭이 된다고 강조한다. 쌀이 주식인 우리에게 엄마가 퍼 주는 공기 수만큼 아이의 삶이 달라진다고 자신의 육아 경험담을 이야기 한다. 텃밭은 삶이요 인문학이라는 것이다. 도시텃밭은 도시민의 삶을 어루만져 주어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필자는 오늘 모임에서 소중한 체험을 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면서 이웃과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의 방법을 깨달았다. 참가자 한금옥 씨는 “퍽퍽 빠지는 논에서 모내기를 하고 새참으로 막걸리와 떡을 먹으면서 옛날 농부들이 노고를 생각했다”고 했다. 김현미 씨는 “몇 평 안 되는 모내기였지만 마음은 몇 천 평 하는 마음으로 행복하고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