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서울을 끝으로 전국 4개 권역에서 진행된 2022학년도 대입 개편 공론화 추진에 따른 국민제안 열린마당이 마무리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공론화 범위를 설정하고 의제를 선정한 후, 토론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시민참여단(400명)의 투표로 최종안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번 대입개편안의 최대 쟁점은 바로 수능 평가 방식에 있다. 현재의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혼합한 형태를 유지하느냐 아니면 절대평가를 통해 사실상 수능을 자격고사화할 것인지, 과거처럼 상대평가로 돌아가 수능의 영향력을 높일 것인지가 핵심 관전 포인트다. 문제는 이같이 중차대한 사안을 전문가가 아닌 시민참여단이 투표로 결정한다는 점이다.
개정교육과정 이해 앞서야
사실 현행 고1부터 적용된 2015 개정교육과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대입개편 논의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비교육적인지 알 수 있다. 현 고1은 내년부터 계열별 구분이 사라지고 자신의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해 배우게 되는데 이는 수능의 영향력 축소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데 수능의 영향력이 지금과 같거나 오히려 강화된다면 결국 수능 중심의 과목 선택을 유도하거나 아니면 수능과 관련이 없는 과목은 자습으로 돌릴 수밖에 없다.
2015 개정교육과정은 단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의 토론, 발표, 탐구 등 다양한 활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주입식, 암기식 문제풀이 중심의 수능과는 병존할 수 없다. 말하자면 2015 개정교육과정의 적용을 받는 학생들은 교과 지식을 밀어넣기식으로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찾아 해결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능동적으로 지식을 습득한다는 차이가 있다.
수능 강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논거는 바로 공정성이다. 객관적 점수야말로 신뢰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수능을 강화하면 소위 ‘강남 효과’와 ‘졸업생 강세’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수능의 비중이 높을수록 소위 강남3구(강남, 서초, 송파구) 소재 고교와 졸업생들의 ‘스카이’ 입학이 증가한다는 것은 이미 각종 통계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수능강화에서 오는 딜레마
교육부 차관의 정시 확대를 거부한 서울대의 문건을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는 자체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능 중심의 정시를 확대하면 특정 과목 기피와 쏠림 현상이 심해져 결국 2015개정교육과정의 파행운영은 물론이고 교육 불평등 심화와 교실붕괴는 통제 불가라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공론화 과정을 거쳐 수능이 강화되면 공정의 가면을 쓴 불공정이 정당화되고 2015개정교육과정의 파행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수능 평가방법을 공론화 테이블에 올리는 것 자체가 교육당국의 책임 방기에 다름 아니다. 굳이 수능 평가방법을 시민참여단의 인기투료로 결정할 수밖에 없다면 수능의 이면에 담긴 불공정의 진실을 공개하고 올해부터 적용된 2015개정교육과정의 전면 수정부터 선행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