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시작되면서 서울 도심 여기저기에도 배롱나무꽃이 피기 시작했다. ‘화무십일홍(花無 十日紅)’이라지만 배롱나무는 약 100일간 붉은 꽃이 핀다는 뜻의 ‘백일홍(百日紅)나무’가 원래 이름이었다. 그러다 발음을 빨리하면서 배롱나무로 굳어졌다. 꽃 하나하나가 실제로 100일 가는 것이 아니다. 작은 꽃들이 연속해서 피어나기 때문에 계속 피는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 원산의 ‘백일홍’이라는 1년생 식물은 따로 있다. 배롱나무는 원래 주로 충청 이남에서 심 는 나무였다. 그러나 온난화의 영향으로 서울에서도 월동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도, 특히 최근 조성된 화단에서 배롱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 용산구 원효로와 구로구 등에는 가로수 로 심은 배롱나무까지 있다. 다만 겨울철에는 보온재로 나무줄기를 감싸주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배롱나무는 우리 주변에 많은 나무라서 여러 문학 작품에도 등장하고 있다. 이문열의 장편소설 ‘선택’에서는 배롱나무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의 나무로 나온다.
“그런데 중문을 들어설 때쯤이었을까. 그 총중 에도 무언가 날카로운 빛살처럼 내 눈을 찔러왔다. 움찔하며 곁눈으로 가만히 살피니 안마당 서쪽 모퉁이에서 있는 한그루 자미수(紫薇樹=백일홍나무)였다. 이미 꽃도 잎도 지고, 가지만 남은 아름드리 자미수가 묘한 뒤틀림으로 저무는 가을 햇살을 받고 있었다. 갓 신행 온 새색시의 눈길을 먼저 끈 것은 여러 가지일 수가 있다. (중략) 그런데 하필이면 그 자미수가 그토록 강한 인상으로 내 눈길을 끈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의 주인공인 정부인(貞夫人) 안동 장 씨가 영해부(寧海府) 나라골(지금의 경북 영덕군 인량리 전통마을) 시댁에 처음 도착하는 장면이다. 부인은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뒷날의 내 삶과 연관된 어떤 신비한 끌림이었 던 것 같다”라며 “자미화(紫薇花=백일홍)는 바로 시가인 재령 이 씨들의 꽃이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재령 이 씨들이 자미화를 가문의 꽃으로 귀히 여기고 어디로 가든지 그들이 가는 곳에는 그 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배롱나무와 장 씨 시댁 에 얽힌 사연을 5~6페이지에 걸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위 대목은 소설에 나오는 그대로 쓴 것인데, 용어를 좀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 자미수라고 쓴 나무는 ‘백일홍나무’라 부르기도 하지만 표준어는 ‘배롱나무’다. ‘백일홍’이라는 초본 식물이 따로 있기 때문에 배롱나무를 그냥 백일홍이라 부르면 맞지 않다. 배롱나무의 중국 이름이 자미화(紫薇花)다.
소설의 주인공은 실존 인물인 장계향(1598~1680)이다. 장 씨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삶을 산 여인이다. 선조 31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19살에 부친의 제자인 이시명에게 시집갔으며 숙종 6년 83세에 타계했다.
배롱나무처럼 자손과 가문을 꽃피워
소설에서 장 씨는 학문에 뜻을 세웠다가 나중에는 “아내로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어머니로서 보다 나은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것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생각하면서 평범한 여인으로 돌아간다. 그는 남편을 잘 받들고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전형적인 현모양처였다. 시문과 서·화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 여럿을 역사에 이름이 남는 학자로 키웠다. 특히 셋째 아들 이현일이 이조판서에 오르면 서 ‘정부인’ 교지를 받았다. 가문의 꽃 배롱나무가 한여름 만개하듯이 자손들을, 가문을 화려하게 꽃피워낸 것이다.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과 여러 모로 닮은꼴이다. 장 씨는 말년에 여성이 쓴 동양 최초의 요리서 ‘음식디미방’을 한글로 남겼다. ‘디’는 ‘지(知)’의 옛말로, 제목을 풀이하면 ‘음식의 맛을 아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소설 ‘선택’은 장 씨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장 씨는 작가 이문열의 직계 조상이기도 하다.
소설이 유명해진 것은 이른바 ‘페미니즘 논쟁’ 때문이었다. 1996년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첫 회가 발표되자마자 장 씨의 입을 통해 당시 페미니즘 운동을 공격했다는 이유로 ‘반페미니즘’ 소설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이문열은 자신이 비판한 것은 ‘천박한 페미니즘’이지 일반적인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배롱나무는 예부터 청렴을 상징해
배롱나무는 한창일 때면 불타는 듯 붉은 꽃이 나무 전체를 뒤덮는다. 멀리 서 보면 마치 진분홍 구름이 내려와 머무는 것 같다. 꽃을 자세히 보면 다닥다닥 달린 콩만한 꽃망울이 팝콘처럼 터져 꽃잎과 꽃술을 넓게 펼치는 형태다. 한 개의 꽃에 6개의 꽃잎과 30∼40개의 노란 수술, 1개의 암술이 달려 있다. 꽃잎에 쭈글쭈글한 주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이 지은 원예서 ‘양화소록(養花小錄)’에는 이 꽃에 대해 “비단 같은 꽃이 노을처럼 곱게 뜰을 훤히 비추면서 사람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아름답다”라고 표현했다. 배롱나무는 예부터 청렴을 상징하는 나무로 여겨져 서원과 서당 등에 많이 심었다. 선비들이 ‘개인의 영달이나 처자식 때문에 신념을 굽히게 될지도 모를 자신을 미리 경계하느라’ 뜰에 곧고 담백한 배롱나무를 심었다는 것이다. 서울시청 다산공원 입구에도 심어놓았다. 담양 명옥헌 원림(園林), 고창 선운 사, 안동 병산서원 주변, 부산 양정동 동래 정(鄭) 씨 시조묘의 배롱나무도 유명하다.
배롱나무는 껍질도 유별나게 생겼다. 얇은 조각이 떨어지면서 반질반질한 피부가 드러난다. 나무 표피를 긁으면 간지럼 타듯 나무가 흔들린다고 해서 ‘간지럼 나무’라고도 부른다. 배롱나무는 정말 간지럼을 타는 것일까. 실제로는 조금 만 바람이 불어도 배롱나무가 흔들리는데, 사람이 간지럼을 태우기 위해 나무에 다가 갈 때 바람에 나무가 흔들리는 것이다. 또 나무 표면이 아주 매끈해 원숭이도 미끄러진다고 일본에서는 ‘원숭이 미끄럼나무’라고 부른다. 요즘에는 흰색, 연보라색 꽃이 피는 배롱나무도 가끔 볼 수 있다.
배롱나무는 9월까지 여름 내내 우리 곁에서 진분홍 꽃망울을 터트릴 것이다. 배롱 나무를 보면 한 번쯤 다가가 팝콘처럼 터지는 꽃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선조들의 청렴 다짐을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