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더 웨이브(The Wave)’라는 장소가 있다. 이곳은 옷깃만 스쳐도 쉽게 떨어져 나가는 사암층으로 이뤄져 있어 하루에 딱 20명에게만 출입이 허락된다. 10명은 수개월 전 인터넷을 통해 사 전 추첨으로 정해진다. 나머지 10명은 매일 아침 9시 캐나브(Kanab)라는 마을의 방문객(인포메이션) 센터를 직접 방문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제비뽑기를 통해 결정된다. 하루 20명 규칙은 엄격하다. 제 비뽑기 인원 10명 중 8명이 선발된 뒤 마지막 그룹에서 3명이 선발된다면 2명만 갈 것인지, 3명 모두 포기할 것인지 정할 정도다.
우리는 운 좋게 4전 5기만에 ‘더 웨이브’ 방문권을 얻어냈다. 제비뽑기에 떨어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돌아가자 센터 내에는 승리감을 만끽 중인 10명만이 환한 미소를 띠며 남았다. 센터 직원은 트레킹 주의사항을 일러주며, 방문 허가증과 A4 용지를 나눠주었다. A4 용지에는 11장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었다. 더 웨이브가 훼손될 것을 우려해 표지판을 세우지 않고, 사진 속 봉우리 모양을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도록 지도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신비롭고 멋진 풍경이 360도로 펼쳐져
다음날 아침, 더 웨이브에 도착하면 인 생 사진을 찍겠노라는 일념으로 고른 원피스에 얇은 카디건을 덧입고서 길을 나섰다. 반드시 마실 물을 1리터 이상 준비하라고 신신당부했을 만큼 건조하고 삭막한 황야를 2시간쯤 걸었다. 그러자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더 웨이브.’ 인터넷에서 접한 사진은 빙산의 일각일 뿐, 그보다 백 배쯤은 신비롭고 멋진 풍경이 360도로 펼쳐졌다. 다른 여행지는 마음만 먹으면 다시 갈 수 있지만 이곳은 평생에 언제 또 올 수 있겠나 싶어 머무는 한 걸음 한 걸음, 1분 1 초가 너무도 소중했다.
우리는 더 웨이브를 스튜디오 삼아 작품 사진, 기념 사진, 코믹 사진 등을 찍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러다 지치면 물결치는 바닥에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한바탕 신나게 노는 사이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남편, 이제 돌아가자!”
“이곳에서 내 인생 최고의 작품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지금껏 아무도 찍지 못했던, 더 웨이브에서 보름달이 떠오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집으로 가는 길은 걱정하지마. 어제 벅스킨 협곡에서 돌아올 때도 둥근 달빛에 길이 환했잖아.”
인생 사진을 찍겠다는데 어찌 더 말리랴. 난 더 웨이브의 가장 높은 너울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지는 해를 바라봤다. 세상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세상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세상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그때 뒤에서 남편이 다시 외쳤다.
“진짜 인생 사진 한 번 찍어볼래? 어차피 여긴 지금 우리 둘뿐인데, 누드 사진 어때?”
남세스럽게 무슨 누드 사진이냐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누드 사진에 도전! 아 무리 둘뿐이라 해도 하늘이 보고, 땅이 보고 있으니 창피하여 5분 만에 다시 옷을 입기는 했지만....
생사의 위기를 넘긴 아찔했던 경험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달 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을 기다렸지만 달은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오늘은 날이 흐려서 달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낮 동안 티끌 하나 없이 맑았던, 조금 전엔 아름다운 노을까지 선사해 주었던 하늘엔 진회색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바로 옆에 선 남편의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세상은 검게 물들고 있었다. 그제서야 얼른 돌아가야겠다는 남편의 목소리에 잔뜩 긴장이 묻어났다. 그도 그럴 것이 인쇄된 사진 속 봉우리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전된 지구, 완전한 어둠 속에 갇혀버렸다. 전파도 터지지 않는 우주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내가 휴대폰 손전등을 켜려 하자 남편이 만류했다.
“조금 있으면 어느 정도 보일 거야. 우리 휴대폰 배터리 얼마 없잖아.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남겨 놔야지.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괜찮을 거야.”
우리는 손을 맞잡고 방향을 잡아 길을 나섰다. 배낭 속에서 여분의 끈을 찾아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해 서로의 허리를 묶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한 발을 먼저 내디뎌 바닥을 살핀 후 다음 발을 디디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을 헤맸으나 마주한 건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사실 뭐 제대로 보이질 않았으니 처음 보는 풍경이라기보다 처음 느끼는 풍경이랄까.
“잠깐만! 휴대폰 손전등 좀 켜봐!”
손전등을 켜자 보이는 길 옆은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다. 돌아가는 길이라 생각했던 그곳이 잔도였을 줄이야! 등골이 서늘했다.
“우리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른 적 없잖아. 뭔가 잘못됐어! 출발했던 위치로 돌아가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자. 아니면 거기서 다시 길을 찾아야 될 것 같아!”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기에 손전등을 그대로 밝힌 채 우리는 다시 출발점으로 향했다. 다리가 덜덜 떨리고, 식은땀이 줄줄 흘렀지만 이대로 이곳에 뼈를 묻을 순 없었다. 아무도 우리를 찾아내지 못할 곳이 었으니까. 원점으로 되돌아왔을 때쯤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달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되었다. 정신을 가다 듬어 눈알이 빠질세라 인쇄된 종이 속 봉우리를 찾았다. 대부분 사암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주 짧은 구간, 모랫길이 난 곳을 기억하고 있었다. 한 명은 바닥, 한 명은 봉우리를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모래 위 사람들이 지나간 발자국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잠시도 쉴 수 없었다. 기온이 뚝 떨어져 걸음을 멈추면 한기가 들었다. 저녁을 먹지 못해 허기진 배를 하나 남은 초콜릿으 로 채우고, 몇 모금 남지 않은 물로 입술만 적셨다. 몇 시간을 더 헤맨 후에야 드냈다. 그제서야 남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는 거의 네 발로 기다시피 마지막 힘을 짜내고 짜내어 캠핑카로 돌아왔다. 이 는 세계 여행 중 죽을 뻔한 사건이었다. 첫 번째인 남미 여행에서 일어난 스쿠버 다이빙 사건보다 훨씬 더 아찔하고 위험한 순간이었다.
세 단어로 알아보는 더 웨이브
1. 코요테 뷰트 노스
2. 로또 더 웨이브 로또 안내 홈페이지: https://www.blm.gov/visit/kanab-visitor-center
3. 더 웨이브(캐나브 마을) 가는 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