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봉사란 무엇일까요? 진짜 봉사를 말합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봉사를 하는 것이지요. 저는 교직 은퇴 후 포크댄스 강사로 인생이모작을 시작했어요. 2017년 맨 처음 봉사를 시작한 곳은 수원시평생학습관 뭐라도학교. 50대∼60대 대상 포크댄스 지도인데 수강료는 당연히 무료. 매주 1회 두 시간씩 세계의 포크댄스를 가르치는데 신중년의 반응이 이렇게 좋을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답니다.
‘포즐사’(포크댄스를 즐기는 사람들 약칭) 동호회원은 ‘하하호호’ 운동하면서 건강을 증진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 사회성도 기릅니다. 인생후반기 자존감을 회복하고 포크댄스 하나하나를 마스터 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낍니다. 배운 실력을 복지관과 재활원 등에서 주민과 손잡고 한마당을 펼치니 보람 있는 사회봉사가 되었어요. 이처럼 자아실현을 이루니 1석5조의 동호회 활동이 되는 것이지요.
동호회 모임이 도움이 되니 출석률이 높고 인원수가 20명을 넘었어요. 의상도 자기 부담으로 멋지게 갖추어 입었답니다. 그 결과 일 년도 채 아니 되어 공식 행사인 수원·화성·오산 예술인들의 잔치인 ‘아름다운 동행’에도 출연하고 수원화성문화제 거리행진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어요. 학습관 ‘월담’ 공개강좌도 열리고 체육대회, 송년회에선 포크댄스가 프로그램에 들어가 분위기를 띄우기도 했어요.
수원시평생학습관과 경기상상캠퍼스에서 포크댄스 재능기부
‘포즐사’ 성공사례가 바탕이 되어 작년엔 경기상상캠퍼스 공동체 지원사업 ‘쿵!짝 쿵!짝’에 당당히 합격! 지원금 6백만 원이 통장으로 들어와 체크카드를 사용합니다. 요즘 참으로 좋은 세상이지요. 지역주민에게 매주 포크댄스를 지도하니 강사료가 나오고 참가자에게는 맛있는 간식이 제공됩니다. 경로당 포크댄스 한마당에서는 현수막과 최신 음향장치 설치하고 참가자들이 식사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 복지의 현주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업기간이 5개월이라 올해 1월에 종료되고 말았지요. 신중년 행복문화 창조라는 사명감과 수강생과의 약속대로 2월부터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어요. 경기상상캠퍼스에 동호회 등록을 하고 연습 장소를 제공받고 있죠. 그런데 무료수강은 수강생에게 정신적 부담이 되는 모양이어요. 그런데 이것을 해결하는 수원시 정책이 때마침 나왔어요. 바로 ‘찾아가는 시민 맞춤형 강좌 지원’이지요. 지원기간은 짧지만 대상자로 선정되었답니다.
‘포크댄스로 건강하고 신바람나는 신중년 문화 만들기’가 주위에서 인정받고 SNS로 입소문이 나자 동호회원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때 인근 벌터 문화마을에서 포크댄스 강좌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조건은 문화마을과 수강생이 각각 수강료의 반을 부담하는 것. 그런데 수강생 모으기가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교감인 아내가 조언을 합니다. “당신, 사는데 지장 없는데 수강료를 왜 받으려고 하나요? 지역 여건을 고려하여 재능기부는 어떤가요?”
주위 조언에 수강료 대신 존경 택하니 경사 겹쳐
스물여덟 살 직장 새내기 아들도 한 마디 거듭니다. “수강료 2만 원 받으면 2만 원짜리 강사가 되지만 재능기부하면 무한존경이라는 보수가 따라온다는 사실 알고 계시지요?” 우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아빠에게 세상살이를 자식이 가르쳐 줍니다. 이 내용을 단체 카톡방에 올렸더니 경기삼락회 회장이었던 선배님은 “아들 말이 맞아요. 봉사는 절대로 헛되지 않고 대가가 옵니다. 단, 보상을 바라지 않고 베풀어야 오는가 봅니다”라고 맞장구를 치십니다.
아내와 아들, 선배님의 충고를 받아 들여 벌터마을에 무료 수강 통보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지인 한 분이 회원 모집에 적극 나서니 15명 포크댄스팀이 구성되었어요. 벌써 세 차례 정기모임을 가졌는데 여기서도 포크댄스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정기모임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포크댄스가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 “땀이 얼마나 나는지 라인댄스보다 더 운동이 된다”는 등 칭찬일색입니다. 여기서도 수강생은 역시 ‘무료’라는 부담감은 남아 있습니다.
착한 마음으로 봉사를 하니 또 좋은 일이 생기네요. 수원문화재단 ‘찾아가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강사 발굴 사업계획서가 1순위로 선정되었어요. 교부신청서에 따라 10월까지 강사료, 한마당 행사비용 등을 지원해 줍니다. 자연스럽게 수강생들의 강사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해소되었죠. 그들은 강사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식사값, 교통비 등을 자비 부담하며 재능기부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년 5년을 앞두고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초등교사, 중등교사, 장학사, 교감, 교장, 장학관 등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은퇴 후 3년간의 인생 깨달음이 39년 교직보다 더 많습니다. 현직에서는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아내는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 저를 ‘조선시대 남자’라고 했었죠. 아내는 이제 이야기합니다. “당신, 은퇴 후 기(氣)가 조금 꺾였지만 주위를 돌아볼 줄 아는 눈은 생겼네요” 두 번이나 이어진 경사(慶事)에서 인생 교훈을 얻습니다. 모두 주위 좋은 분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