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대 교총 회장 선거는 사상 첫 전 회원 직선, 전국단위 대규모 인터넷 전자투표, 부회장 런닝메이트제를 도입해 57년 교총 사상 신기원을 이룩했다.
나아가 전국 18만 선거인을 상대로 한 대규모 인터넷 선거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영광스런 성공의 이면에는 인터넷 선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관리한 하이텔 측 기술요원의 우발적인 실수로 인한 중단 위기 등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 선거업무 담당자들을 긴장케 했다.
다시 되짚어 보고 싶지도 않은 사건이지만 교총 회장 인터넷 투표 첫 날, 오전 8시부터 한 건의 사고도 없이 1만 3947명의 투표가 순조롭게 진행되던 중 오후 4시15분 경 갑자기 시·도별 투표 참여 현황판이 제로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현황 판 자체의 장애로 인한 오류 정도로 여겨져 투표는 30여 분간 계속 진행됐다. 이 후 선거관리 본부는 이 날 투표는 1시간 앞당겨 마감한다는 공지를 하고 사고 원인을 찾아 나섰다.
이로부터 2시간이 훨씬 지나 밝혀진 사고 원인은 너무 어처구니없었다. KTH 측의 프로그램 관리자가 사소한 프로그램 장애를 보수하다가 잘못된 명령어를 입력하는 바람에 이날 투표에 참여한 1만 5천여 명분의 투표 결과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후문이지만 KTH 측도 사고 직후 시스템
관리자에 의한 우발적 사고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하고 해킹을 당한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고 한다.
시스템 관리자 한 명의 단순 실수가 세계 최초 대규모 인터넷 전자투표의 꿈을 한순간에 저버리게 할 뻔한 대형 사고였다. KTH 측으로부터 시스템 관리자의 명령어 입력에 따라 백업 파일까지 지워진 상태여서 투표결과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하다는 상황을 보고 받은 교총의 선거관리본부는 당혹했다. 이는 매 시간 단위로 투표 결과를 별도로 저장 관리하기로 한 약속을 위배한 것이기도 해 KTH에 대한 원성이 쏟아졌다.
그러나 이미 쏟아진 물. 선거관리본부는 숨가쁘게 움직였다. 이 사실을 전원범 회장 직무대행 등 회장단, 선거관리분과위원, 회장 후보, 시·도교총회장 등에게 알리고 다음 날 11시 비상대책회의가 소집됐다. 회의에 앞서 이 지경이 된 마당에 인터넷 전자투표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이 팽배했다. 전국 회원들에게 백배 사죄하고 다시 처음부터 우편선거를 치르자는 방안이 심도 있게 논의됐다.
그러나 다음 날 열린 비상대책회의는 여름 방학 일정 등을 감안할 때 우편선거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진퇴유곡이었다. KTH 측도 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사고 원인이 시스템 결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 단순한 우발적 실수임을 설명하고 다시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확약하면서 교총 지도부에는 이번 사고를 딛고 다시 인터넷 전자투표로 가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교총 회장단 및 시·도 교총 회장단은 인터넷 투표로 하되 선거일정을 연장하자는 의견을 모아 선거분과위원회에 전달했고 선거분과위원회는 이 날 오후 3시부터 선거를 재개하고 선거기간을
14일에서 15일로 하루 연장키로 결정했다. 또한 8일 투표자는 무효처리하고 재투표하기로 했다.
12일 중앙일보 인터넷판에는 '큰 교훈 남긴 인터넷 투표결과 증발 소동'이라는 제목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올랐다. 필자인 이 방면의 전문가 이재일 씨는 "이번 사태를 두고 한국교총측을 나무랄 수는 없다. 책임은 당연히 시스템 관리를 맡았던 KTH가 져야 한다. 투표과정에서 불상사가
일어났지만 인터넷 투표를 하게 된 취지나 방식 등은 오히려 평가할 만하다.
교총이 말하는 대로 20만명이나 되는 인원이 인터넷을 통해 전자투표를 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한국교총이 처음이라고 자랑할 만하다. 한국교총의 이번 사건은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프로그램이 아무리 완벽하게 짜여져 있다 하더라도 조작을 잘 못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 투표 결과의 증발 소동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고 평가했다.
교총이 처음 시도한 대규모 인터넷 전자투표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어 KTH는 거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다시피 했다. 이에 따라 시스템 불안정에 빠질 위험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었다. 모의투표 때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여러 가지 유형의 결함이 계속 돌출 돼 그야말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것이 지난한 작업임을 실감케 했다. 6월29일 첫 모의투표만 하더라도 동 시간대 접속자가 1000여 명에 불과했으나 다운 돼 충격을 안겨주었다.
비상대책반이 구성됐고 이 때부터 투표 이틀 전인 6일까지 무려 7회나 모의투표를 실시하며 드러나는 문제점들로 보완해 나갔지만 실무자들은 늘 초긴장 상태였다. 결국 선거분과위원회는 만의 하나 벌어질 수 있는 사태에 대비한 시나리오까지 준비해야 했지만 이 시나리오의 일부를 가동하게 될 줄이야….
이런 가운데 모의투표를 체험한 일부 교원들은 교총 홈페이지 게시판에 '모의투표가 재미있고 편하다' '역사적인 투표를 마치면서 감회가 깊고 자랑스럽다'는 등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올려 선거업무 관계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당초 일정보다 하루 연기된 15일 오후 1시 투표는 마감됐고 30여분 동안 개표 감리인이 혹시나 있을 지 모를 선거과정의 하자 여부를 점검한 후 '이상 없음'을 선언하고 개표 결과가 공개되면서 선거는 당선자 진영과 새 회장에 대한 기대 그리고 인터넷 투표의 성공을 자축하는 교원들의 환호 속에 끝났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연수원 김득수 민주시민교육담당은 "전자투표는 여러 가지 장점이 많아 중앙선관위도 장차 일반 선거에 이를 도입하기 위한 관계법률 개정을 연구하는 등 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최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교단위 연수를 통해 임원 선거에 인터넷 전자투표 활용을 안내하고 있다"면서 "교총이 초기에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대규모 전자투표를 성공리에 마쳐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복순 조직관리본부장은 "최근 민노당의 경우 한 번의 실패를 거쳐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해 선거를 치렀다"면서 "교총의 전자 투표 성공은 방법과 규모 면에서도 최대일 뿐 아니라 순수히 온라인만으로 선거를 치른 세계 인터넷 투표사상 초유의 쾌거일 것"이라며 "이는 인터넷망이 가장 발달한 대한민국의 위상을 과시하는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컴퓨터를 다루고 휴대폰과 이메일을 소지하고 있는 교원 집단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거방법에서 역사적인 획을 그은 만큼 회원들의 손으로 뽑은 회장을 중심으로 단합하는 모습을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