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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6월에 찾아가는 임자도

 

 

섬과 바다가 부르는 계절이다. 이번에 찾아가는 전남 신안군은 섬의 천국이다. 모두 1004개의 섬이 떠 있어 ‘천사의 섬’으로 불린다. 신안군의 브랜드도 ‘천사(1004)의 섬, 신안군’이다. 바다에 동동 떠 있는 수많은 섬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풍경화이고 질펀한 삶의 현장이다. 지난 4월 개통한 ‘천사대교’도 신안군의 브랜드에서 따왔다. 총 길이 10.8km인 천사대교는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와 암태면 신석리를 잇는 현수교와 사장교 형식의 복합 교량이다.  

 

파도와 바람이 만든 아름다운 해변

 

신안군에 딸린 임자도(면적 79.75㎢)는 내년 임자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지도읍 점암선착장에서 철부선을 타고 가야 한다. 수도권에서 간다면 제법 먼 거리지만 일단 이 섬에 발을 딛는 순간 여독은 말끔히 풀린다. 임자도는 신안군에서 자은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동으로는 지도읍, 남쪽으로는 자은면,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영광군 낙월면과 이웃하고 있다. 섬 지형이 중동의 사막 지형과 비슷해 ‘한국의 유일한 사막’ 이라 불리는 임자도는 이 여름에 한번쯤 가볼만한 섬이다. 
 

배에 승용차를 싣고 15분 남짓이면 임자도에 닿는다. 예전에는 목포에서 여섯 시간이나 걸리는 뱃길 때문에 오가기가 쉽지 않았으나 무안군 해제리와 신안군 지도리를 연결하는 다리가 놓이면서 여행길이 한결 편리해졌다. 굳이 자동차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두 발로 걸어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섬 특유의 정취를 즐기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진리선착장에 내리면 섬길이 꿈결처럼 펼쳐진다. 길손은 먼저 대광해변으로 간다. ‘대광’은 주변 마을 대기리와 광산리의 앞 글자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비금도의 명사십리, 암태도의 추포, 도초도의 시목해수욕장과 함께 신안의 4대 해수욕장으로 꼽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는 대광해변의 모래밭은 얼핏 저 태안의 신두리 해변을 닮은꼴이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서 두 시간이 넘게 걸린다니 그 넓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폭 400m, 길이 12km에 달하는 모래사장은 종종 하프 마라톤이나 해변 승마 코스가 되기도 한다.
 

둥그렇게 돌아간 해안선도 참으로 아름답다. 사륵사륵 파도소리가 정겹다. 맨발로 단단한 모래밭을 걷는 재미도 그만이다. 발바닥에 와 닿는 모래 입자의 보드라운 감촉은 또 어떻고…. 이곳의 모래는 유리의 원료로 쓰이는 규사토다.
 

모래바닥은 집게와 엽낭게들이 파놓은 자잘한 구멍과 그네들이 먹이를 먹고 뱉어낸 모래 구슬들로 신비한 세상을 열어놓고 있다. 그런데 놈들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는다. 인기척을 느끼고 모래 깊숙이 몸을 낮춘 것일까? 
 

모래바닥은 자동차가 달려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물 빠진 폭 300m의 드넓은 모래벌판은 운동장 같다. 사람들은 거기서 족구도 하고 축구도 한다. 아이들은 모래성을 쌓으며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아득한 수평선은 저 동남아의 어느 유명한 휴양지를 떠올리게 한다. 
 

 

숱한 세월이 만들어놓은 모래 언덕에는 해당화(신안의 군화(郡花)다)를 비롯해 이름 모를 들꽃들이 지천이고 해송과 아까시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해변을 곱게 장식한 모래 주름과 일정한 속도로 밀려오는 파도는 해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대광해변에서 바라보는 크고 작은 섬 풍경도 멋있다. 대태이도, 혈도, 어유미도, 바람막기도, 고깔섬, 육다리도, 소허사도, 대허사도 등이 눈길에 아스라하다. 특히 근해 무인도인 고깔섬은 갯바위 낚시터로 좋다. 고깔모자를 닮아 고깔섬이다. 어스름이 깔리는 6시 무렵, 고깔섬 바다를 물들이는 노을은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체험과 맛이 있는 전장포
 
길손은 이제 섬 북쪽의 전장포(일명 앞장골 또는 장불)로 간다. 전장포 조금 못 미쳐 검푸른 개펄이 눈에 들어온다. 고찬 개펄이다. 시간이 있다면 이곳에서 개펄 체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구불구불 뻗어나간 갯고랑과 그 위에서 노니는 게, 갯지렁이, 짱뚱어 등을 관찰하노라면 흥미와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 개펄 체험을 하려면 장화나 호미 등을 미리 챙겨가야 한다. 
 

전장포로 가는 섬길 양쪽은 드넓은 평야다. 사실 임자도는 해산물보다 농산물이 더 많다. 양파와 대파, 양배추, 마늘 등은 이곳의 주 소득원이다. 대표적 작물인 외대파는 수익성이 높아 섬주민의 절반 이상이 재배하고 있다. 사실 이 섬 주민의 80% 이상이 농사에 종사한다. 물론 민어, 병어, 장어, 갑오징어, 꽃게, 돔, 농어, 숭어 같은 어류와 밴댕이, 황새기, 육젓 같은 젓갈류도 많이 난다. 
 

 

임자도는 1980년대 중반까지 민어 파시로 유명했다. 임자도에서 잡은 민어는 지도 송도위판장에 모였다가 전국 각지로 나간다. 민어는 크기가 클수록 맛도 좋은데 그 수가 적다보니 큰 놈은 10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요즘(5~6월)이 제철인 병어는 살이 연하고 지방이 적어 맛이 담백하고 비린내가 나지 않아 회를 떠서 먹기도 하고 구이, 조림, 찜, 찌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또 하나, 임자도에는 유독 염전이 많다. 여기서 생산된 소금은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전장포를 돌아다니다보면 여기저기 염전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전장포 새우젓은 국내 소비량의 60%를 차지한다. 해마다 1천 여 톤의 새우를 건져내는데 여기서 소금에 절여진 새우들은 마땅한 저장시설이 없는 탓에 지도대교(지도읍 내리) 아래 송도 위판장이나 토굴이 많은 충남 광천 등지로 실려가 소비자들을 기다린다. 
 

전장포는 어선 십여 척이 정박해 있는 자그마한 포구다. 포구 한쪽에는 새우젓을 담은 드럼통 수 십 여개가 놓여 있다. 이곳에서 파는 젓갈류는 시중보다 20% 정도 싸다. 요즘은 추젓이 많이 나와 있다. 이외에도 이곳에서는 깡다리젓갈로 불리는 황석어젓과 엽삭젓갈이라는 바다송어젓갈도 맛볼 수 있다. 전장포 부둣가에는 곽재구 시인의 시 ‘전장포 아리랑’비(碑)가 서 있다. 곽 시인은 이곳 전장포 앞바다의 작은 섬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섬사람들의 애환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했다. 

 

해안선이 아름다운 해변

 

전장포에서 왔던 길로 다시 돌아 나와 이흑암리(육암리‧육바구) 쪽으로 간다. 길은 차 두 대가 겨우 비켜설 만큼 좁다. 임자도 서쪽에 대광해변이 있다면 이곳엔 역시 아름다운 어머리(육암해변)와 은동해변이 있다. 이 두 해변은 산언덕을 끼고 나란히 뻗어 있다. 마을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가면 아담한 어머리 해변이 나온다. 
 

어머리는 산 언덕길에서 보면 더 아름답다. 활처럼 휘어진 해안선과 그 앞의 탁 트인 바다가 꽤나 멋스럽다. 물고기 머리 모양을 닮아 어머리라 했다. 해변 왼쪽 끝에는 용의 전설이 깃든 용난굴이 뚫려 있다. 수십 길 절벽 아래의 굴은 그 모양이 아름답고 특이하다. 입구는 펑퍼짐한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모습이다. 높이 7~8m, 폭 1m 안팎의 축축한 굴은 물이 들면 굴이 절반쯤 물에 잠긴다. 굴 안에서 바라보는 반대쪽 바다는 눈부시도록 푸르다. 물때를 미리 확인하고 가면 그 실체를 잘 볼 수 있다.   
 

어머리해변에서 해안길(시멘트길)을 따라 5분쯤 더 들어가면 은동해변이 나온다. 시멘트길(임도)이 뚫리기 전까지만 해도 이 마을 주민들은 험하기 짝이 없는 대둔산(한동산) 산길을 걸어 넘어 다녔다고 한다. 
 

 

은동마을을 아래에 둔 대둔산은 우람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대둔산을 베게 삼아 수 백 년 시간을 건너왔다. 집 하나하나가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있는데, 돌담길이며 덩그런 기와집은 세월의 깊이를 가늠케 해준다. 
 

은동해변 못 미쳐 언덕길은 낙조 포인트로 좋다. 해질 녘의 붉은 기운은 산 그림자와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해변으로 가는 길은 좁아서 접근이 쉽지 않다. 해송과 갯바위가 둘러싸고 있는 해변은 풍치가 뛰어나다. 해변 뒤편 대둔산 중턱에 오르면 임자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편, 임자도는 조선후기 중국풍의 그림세계를 개척한 우봉 선생의 유배지이기도 하다. 진도에 ‘남종문인화’의 산실 ‘운림산방’이 있다면, 임자도에는 우봉 조희룡(1789~1866)이 ‘조선문인화’를 꽃피운 ‘만구음관(임자면 이흑암리)’이 있다. 우봉 선생은 임자도의 남쪽 바닷가 마을에 오두막집을 짓고 3년간 머물렀다. 이 오두막집이 ‘만 마리의 갈매기가 우짖는 집’이란 의미의 ‘만구음관’이다. 조희룡이 남긴 글 속에는 용난굴과 관련된 설화도 등장한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어머리 해변에 용이 나타났다고 소리치자, 자신도 용 구경을 하기 위해 뛰쳐나갔더니 이미 용은 승천하고 난 뒤였다.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굴을 용난굴(용이 나온 굴)이라고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선생은 비록 짧은 세월이지만 임자도에 머물면서 새로운 화법을 시도하고 자신의 그림세계를 독창적인 예술혼으로 승화시켰다. 
 

여름이 활짝 열린 6월은 섬 여행을 가기 좋은 달이다. 번잡한 피서철을 피해 미리 다녀오는 것도 여행의 지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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