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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되고 나서야 교사를 존경합니다”

“나는 무명교사를 예찬하는 노래를 부르노라. 전투를 이기는 것은 위대한 장군이로되 전쟁에 승리를 가져오는 것은 무명의 병사로다. 새로운 교육 제도를 만드는 것은 이름 높은 교육자로되 젊은이를 올바르게 이끄는 것은 무명의 교사로다.”

 

한때 교직을 천직(天職)이요 성직(聖職)이라고 했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배우던 시절 이야기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교직은 노직(勞職)이 됐다. 힘들고 때론 고통스러운 자리다. 코로나19에 따른 원격수업으로 교사들의 근무시간은 24시간이란 자조 섞인 푸념마저 나온다.

 

그래도 코로나라는 국난의 위기 속에 교육현장을 굳건히 지킨 것은 수많은 무명교사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교육은 희망이다. 학생과 함께 가르치는 보람과 배우는 즐거움을 몸소 체험하는 교사는 그래서 귀중하다. 학생의 인성과 실력은 교사만이 바꿀 수 있다. 그만큼 교사의 역할과 사명은 중요하다.

 

얼마 있으면 스승의 날이다. 1963년 충남 강경고등학교 학생이 병석에 누운 선생님을 방문해 선행을 베푼 것이 계기가 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도헌장의 전문을 다시금 새겨본다. 오늘의 교육은 개인의 성장과 사회의 발전과 내일의 국운을 좌우한다. 우리는 국민교육의 수임자로서 존경받는 스승이요, 신뢰받는 선도자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에 긍지와 사명을 새로이 명심하고 스승의 길을 밝힌다.

 

이번 호는 그 힘든 길을 묵묵히 걷는 선생님들께 바치는 헌사(獻辭)이다. 아이들과 부대끼고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밤늦게 녹초가 돼서야 돌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선생님들. 멀고도 험한 스승의 길을 동행하는 선생님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고백부터 하자면 저는 사범대를 졸업한 사람이 아닙니다. 아, 물론 대학 원서를 쓰던 당시, 그러니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께서 사범대를 쓰라고 강요(?)는 하셨지요. 여자 직업으로는 교사나 공무원이 그나마 제일 낫다며, 월급 ‘따박따박’ 나오고, 일도 별로 힘들지 않아서 육아나 가사를 충분히(?) 병행할 수 있고 심지어 은퇴하면 연금도 빵빵하게 나오는 직업이라면서요. 더하여 집안 형편도 어려운데 너라도 등록금이 싼 사범대를 가야 하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저요?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앉아 대성통곡을 했어요. 좀 더 폼나고 멋있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어쩐지 교사라는 직업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 발전은 없고 늘 그 자리에 머물 거 같다는 선입견이 강했나 봐요. 맏딸의 소고집을 꺾지 못한 아버지는 결국 포기합니다. 그리고 저는 일반대학 국어국문학과로 진학을 합니다. 그 이후의 파란만장한 개인사는 재미없으니 생략하고요. 간략하게 추려서 말하면 결국 돌고 돌아 교사가 됩니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는 교사의 삶

졸업하고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이른 결혼을 했고, 연년생 아이 둘을 낳아 육아하면서 재택근무로 일을 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책상 앞에 앉아서 하는 일의 특성상 허리가 아파 잠시 거실 바닥에 누워 뒹굴 때였습니다. 문득 돈오(?)의 깨달음이 왔습니다. 대학원서 쓰던 당시의 아버지 말씀이 떠오른 거지요. 여자 직업으로 교사만 한 게 없다던 말씀, 일이 어렵지 않고, 안정적이고, 칼퇴근이 가능하고 등등의 조건들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이미 열아홉의 계집아이는 세월의 흐름 속에 아이 둘을 기르는 아줌마가 되어있었거든요. 그래, 지금이라도 교사 자격증을 따서 ‘선생’이나 하자. 번개처럼 뒤통수를 친 그 생각은 대뇌와 소뇌를 거쳐 목덜미를 타고 흐르다가 등줄기를 한번 훑고는 대퇴부를 거쳐 빠져나갔습니다. 그길로 교육대학원 입학원서를 냅니다. 저는 그렇게 교사가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훨씬 늦은, 서른을 넘긴 나이에 교직에 첫발을 디디게 됩니다.

 

거창한 이유 따위 없었습니다. 이 땅의 교육을 위해 이 한 몸 활활 불살라 보겠다, 뭐 그런 의지나 신념은 옆집에다 맡겨놓고 온 인간입니다. 애 봐줄 사람도 없고, 돈은 벌어야 하고, 그저 ‘여자 직업’으로는 만만하고 편한 게 교사라고 하니 교직에 들어온 좀 무식한 인간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막상 들어와 보니 듣던 거와 딴판입니다. 분명히 교사는 칼퇴근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저는 주중에 두세 번은 야근으로 몸을 불살라야 하는 겁니까. 분명히 교사는 하루 수업 몇 시간만 하면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편한 직업이라고 들었는데 왜 퇴근 시간 가까워지면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천근만근 나락으로 떨어질 듯 무거운 것입니까. 다들 이 직업이 육아나 가사와 충분히 병행 가능하다고 떠드는데 집에만 오면 그대로 쓰러져서 한두 시간 기절해 있는 저는 뭡니까.

 

 

그때서야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하지도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하루 온종일 뛰어다녀야 하는데 온갖 공문은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옵니다. 그것도 ‘긴급’이라는 꼬리표를 달고서요. 수업이 잠시라도 비는 틈이면 아이들은 쉬지 않고 찾아와서 지지배배 천만 가지를 요구합니다. 더하여 가끔 이루어지는 학부모와의 통화는 교직 생활을 전혀 심심치 않게 해주기도 합니다. 기함하는 경우가 꽤 있었거든요. 쉬는 시간에 공문 처리하다가, 수업 들어갔다, 나와서 행정업무 보다가, 아이들 상담하다가 보면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나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회사 다니느라 허덕거리던 시절에는 교직에만 들어오면 야근 따위 안 해도 될 줄 알았습니다. 현실은 달랐습니다. 저의 하루는 언제나 미카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시간 도둑’이 훔쳐 간 것처럼 깔끔하게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심지어 회사 다니던 때와 비교해보면 단위 시간당 업무강도는 훨씬 센 거 같습니다. 늘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바로 널브러졌거든요.

 

그리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교직의 하루는 훨씬 더 역동적이고 분주하며 정신없다는 것을요. 저는 몰랐던 거지요. 교사인 사람이 없는 집안에서 자랐고, 사범대를 나오지 않았으니 친구 중에도 교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니 교직에 발을 딛기 전까지 흔히 말하는 ‘남’의 시각으로 교직을 보고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교사가 되기 이전의 제 생각은 우리 사회가 교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과 편견 그대로였을 겁니다.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광인(狂人) 머리 풀고 널뛰듯’ 하는 저의 하루만이 아니라 바로 옆자리의, 같은 학년 또는 다른 학년의, 혹은 같은 교과의 동료 선생님들이요. 눈에 띄지 않고 주의를 끌지도 못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눈물겹고 치열한 ‘하루’가 보입니다. 그 속에서 무엇이 교육인가 고민하며 갈등하고, 다양한 상황에 부대끼면서 하루를 살아내는 교사로서의 ‘삶’이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교사들

아마 들어보셨을 겁니다. 오롯이 집에서 살림과 육아만으로 하루를 보낸 분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를요.

 

“당최 하루가 언제 어떻게 사라진 건지 모르겠어. 눈 감았다 뜨면 어느새 밤이란 말이야. 잠시 앉아보지도 못하고 동동거렸는데 막상 뭘 한 건지도 모르겠고.”

 

그러면 살림과 육아를 잘 모르는 사람, 주 양육자나 주 살림꾼이 아닌 밖에서 일하다 들어온 사람은 집안을 한 번 휘이 둘러보게 됩니다. 아침에 나갈 때와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소파도 그대로이고, 화분도 그 자리에 있으며, 심지어 아침에 닦고 던져둔 수건까지 치우지 않은 상태입니다. 주 양육자가 아닌 사람은 속으로 생각합니다.

 

“하는 게 뭐가 있다고 힘들다고 그러는 거지? 하루종일 집에서 애하고 놀기만 했잖아.”

 

게다가 불만인 부분만 눈에 들어옵니다. 투덜거립니다.

 

“장식장의 먼지는 그대로 있군. 요즘 반찬도 별로 좋지도 않은데 말이야. 세상에, 내일 입고 나가야 할 셔츠는 아직 다림질도 안 되어 있잖아. 하루종일 집에서 뭐한 거야?”

 

맞습니다. 교직이 그러합니다. 하루종일 동동거리며 몸은 녹초가 되는데, 막상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갑자기 말문이 막힙니다. 하루를, 일주일을,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지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돌아보면 눈에 보이게 이루어진 것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라서 학년을 올라가고, 졸업하고, 분명히 성장했는데, 교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머물러 있습니다. 일반 회사처럼 지위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했다고 성과급이 보태지는 것도 아니며, 대부분의 교사가 외부 단체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어디다 내밀 수 있는 명함 한 장 없습니다. 몇십 년을 교직에서 성실하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내놓을 그럴듯한 건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투덜댑니다. 교사들은, 교사들은, 교사들은, 하면서요.

 

저는 비로소 교사들을 존경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막상 그 아이들을 키워내는 교사는 보이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렇기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승진도 지위도, 부와 명예도 없이 묵묵히 같은 길을 걸어가는 동료 선생님들이 제 심장을 두드립니다. 열심히 한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성장한 아이들은 냅다 뛰어나가서 그 뒷모습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교직의 이름 없는 동료 교사들이 가슴에 시리게 다가옵니다.

 

그리하여 이 글은 교사 이전에 교사를 알지 못했던 저를 꾸짖는 통렬한 반성이면서, 같은 길을 묵묵히 걸어가면서 이 땅의 ‘교육’이라는 밭을 일구어나가는 동료 선생님들에 대한 헌사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교직에 들어와서야 교사를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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