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가운데 두 글자를 딴 한민고등학교는 직업 특성상 이동이 잦은 군인 자녀에게 안정된 교육여건을, 경기도 지역 학생에게 더 나은 교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2014년 개교해, ‘올바른 국가관과 인성을 갖춘 창의적 인재 양성’이라는 건학이념을 바탕으로 짧은 시간 안에 명문고로 성장했다.
한민고는 전국단위 군인 자녀 70%, 경기도 일반 학생 30%로 구성돼, 전교생이 체계적인 일과에 따라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예체능 등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어, 자사고나 특목고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파주지역 일반계 고등학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개교 당시부터 한민고는 교육활동이 학생 중심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동아리나 소모임 등은 물론, 학생들이 문·이과 구분 없이 자율적으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고교학점제 선도학교, 사회교과중점학교, 발명에 관심 있는 학생을 위한 지식재산일반 교과 선도학교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한 학교 시설도 최고 수준으로 갖췄다. 기숙사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와이파이 사용이 가능해 학생들은 노트북을 활용해 수업에 참여한다. 또한, 400석 규모의 도서관, 자기주도학습이 가능한 1,200석의 면학실, 교과별 특성에 맞춘 교과교실이 구성돼 있다. 운동장, 체육관, 간이수영장, 풋살장, 테니스장은 물론 기숙사에는 헬스장이 마련돼 체력단련을 할 수 있으며, 매점, 미용실, 이발소, 휴대전화 사용이 불가함에 따라 스마트 영상 공중전화 등 학생을 배려한 생활환경이 구축돼 있다.
이 외에도 교과간 창의융합수업, 인문사회·과학 주제연구, 1인 2기 핀조인 활동 등으로, 대학 진학률이 매년 높아지고 있으며,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올바른 국가관의 바탕인 자기주도학습
한민고는 ‘올바른 국가관’을 위해 어떤 교육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두고 교사들이 여러 차례 논의했다. 그 해답으로 찾은 것이 자기주도학습이었다. 모든 학교 교육이 학생 주도적으로 운영된다면, 창의력을 갖춘 리더로 성장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올바른 국가관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본 것이다.
자기주도학습 능력 향상을 위한 부분은 학교 일과표에서도 나타난다.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만큼 시간을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진행된다. 학생들은 평일, 주말 모두 오전 6시부터 일과를 시작한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아침 체력단련, 수업, 방과후학습, 동아리, 체육활동 등이 시간, 요일별로 구성돼 있다.
김형중 교감은 “학교이면서 가정의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일과가 다소 빠듯하게 운영될 수는 있지만,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며 “학생들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주도적, 주체적인 능력을 키워나간다”고 말했다.
동아리로 배우는 나라 사랑 정신
한민고의 설립이념과 건학이념을 가장 잘 나타내는 부분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알 수 있다. 2016년부터 한민고가 유일하게 하고 있는 ‘6·25 참전용사 자서전’은 동아리 ‘한새미로’가 중심이 되어 매년 6월 25일 즈음 발간되고 있다. 언론, 정치외교, 사회복지 등에 관심 있는 학생 5명이 팀을 이뤄 2개월간 참전용사를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하고, 그 내용을 함께 정리한다. 학생들은 참전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희생정신을 잊을 수 없다는 감상문을 남기기도 했다. 올해는 지금까지 펴낸 자서전을 묶어 정식 단행본으로 발간할 예정이다.
사관학교나 경찰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들로 구성된 JROTC도 한민고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다. 가장 큰 규모의 동아리로, 체력 검정은 물론, 지원동기나 포부, 희망 진로 등을 살펴 학년별로 30명씩 선발한다. 한민고의 색을 가장 잘 드러내는 동아리인 만큼, 신입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많으며, 다른 학교에서도 벤치마킹해 10여 개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이 동아리가 추구하는 핵심은 ‘리더’다. 이를 위해 걸맞은 체력과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예비역 중령이 강의하는 리더십 교육, 군부대와 협조해 3박 4일간의 나라 사랑 국토순례 캠프가 진행된다. 학생들은 마일즈 장비를 활용한 생존 훈련, 천안함 등 역사현장 방문을 통해 리더십과 협력, 나라 사랑 정신을 키운다.
이 외에도 3·1절, 8·15 광복절, 호국보훈의 달 등 역사 관련 행사와 위안부 피해자 돕기 배지를 만들어 판매하는 등 학생들이 자발적인 소모임을 구성해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창의성 키우는 학술제와 융합수업
한민고가 자기주도학습 능력 다음으로 중시하는 것이 ‘창의적 역량’이다. 이 역시 학생 주도적으로 이뤄지며,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한민학술제와 창의융합수업이다.
한민학술제는 인문사회, 과학 등 진로 특성에 맞게 학생들이 주제를 정해 연구하며, 결과물을 소논문 형태로 만들어 발표한다. 심도 있고 수준 높은 주제가 많아, 대학교수들도 놀라워했다고 한다. 특히, 소논문을 요약한 포스터는 학교 로비에 전시돼 모든 학생이 공유하며, 발표를 듣고 난 후 생각이나 질의응답 등을 ‘비평문’으로 정리한다는 점에서 학술제의 차별성이 드러났다.
이창목 교무부장은 “대입에서 이런 활동을 어필할 수 없다는 점이 교사로서는 속상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창의력 발전을 위해서는 필요하기에 매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 개교 첫해부터 시작된 1학년 창의융합수업에서도 그 역량이 나타난다. 주제에 대해 각 교과 교사가 교과별로 설명하고, 학생들은 그를 토대로 연구하며, 창의융합대회에서 결과물을 발표한다. 이를 토대로 만들어진 <창의융합 교실, 허생전을 파하다>라는 단행본은 독특한 소제목에서부터 허생전을 이렇게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었나 하는 놀라움을 자아냈다.
졸업생이 말하는 한민고의 저력
다양한 교육과정이 보여주는 한민고의 교육 성과는 졸업생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종종 학교에 방문하는 졸업생들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대학에서 많은 도움이 된다”, “사관학교 생활은 마치 한민고 4학년인 것 같다”는 말을 한다고. 몇몇 졸업생 중에는 학생 주도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소프트웨어 활용 역량이 뛰어났던 한 학생은 영상 편집 기술 등을 활용해 학교 홍보물을 만들었으며, 대학에는 진학하지 않았지만, 재능을 활용해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우주항공 분야에 관심이 있던 또 다른 학생은 ‘우주선 연감’을 만들어 대학에 진학했다. 우주선의 역사를 담은 연감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학생은 방학 때 미국, 러시아 등에 관련 기관을 방문해 자료를 수집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동아리 ‘걸어다니는 한민생태도감’도 자랑거리다. 학교 내 양서류 서식장 등 주변 생태를 연구해 자료로 만들어 파주시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생태교육을 동아리 학생들이 직접 지도한다. 생명과학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박재혁 대외협력부장은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괴롭힐 정도다. 학업은 물론, 각자가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연구하고 싶어 자율동아리를 만드는 등 주도적이다. ‘공부해라’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며 즐거운 고충을 이야기했다.
한민고는 어느덧 개교 7년 차에 접어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는 잠시 학생들의 활기가 줄었지만, 교실 곳곳에서는 온라인 수업으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들의 교육열이 느껴졌으며, 앞으로 어떤 학교로 발전할 수 있을지 기대되기도 했다.
금일철 교장은 “잘하는 학생을 좋은 대학에 진학하도록 지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우수한 인재를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지를 학교가 고민하고, 책임져야 한다”며 “사교육 없이 상생하는 리더를 키울 수 있는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