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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덕담은 삶의 힘이자 교육하는 원동력

현재 우리는 코로나19 위기의 위험사회를 살아가면서 감염병 못지않게 우려하는 것이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타인을 비난하고 욕하는 세태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닮아가는 것에 대한 염려다. 눈을 뜨면 세상에는 온통 증오와 혐오를 유발하는 사건이나 사람을 접한다. 그러면서 이를 화제로 자주 언급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점점 비슷하게 닮아감을 느낀다. 이는 마치 거짓말도 수없이 반복하면 진실로 믿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또 옛날의 ‘고된 시집살이를 겪은 며느리가 나중에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킨다’는 말과 무엇이 다르랴. 오늘도 예외 없이 우리 사회에선 뉴스를 타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럴 때는 덕담을 펼치기란 ‘가뭄에 콩나듯’,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그러다 보니 험담이 험담을 낳는 식으로 세상은 악순환이 고조될 뿐이다.

 

최근 우리 주변을 살펴보자. 자신과 집단의 이익만을 철저히 추구하고 대책 없이 편향된 이념과 사상의 노예가 되어 명분 없는 좁쌀 정치만을 일삼는 정치배들이 양분돼 있다. 또한 ‘ 미투(MeToo)’ 운동의 근원이 된 막말의 현장 교사, 정치인도 생각보다 많다. 거기에 기업의 총수 가족으로 한심한 갑질을 일삼는 사람들은 어떤가. n번방 사건으로 고묘하게 성착취를 하는 젊은이들도 사회 문제화되었다. 그뿐이랴. 성인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폭력을 일삼고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 위력에 의해 장기간 비서를 성추행하는 등 사회 곳곳에선 다양한 사람들이 국민의 원성을 자아내고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행태를 버젓이 자행해 오고 있다. 공자, 맹자와 같은 성인군자가 다시 태어나도 비난과 험담을 토설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에선 타인에 대해 덕담을 나누기란 갈수록 힘들어진다.

 

필자에겐 가끔 만나 식사하고 잡담을 나누는 모임이 있다. 아무 이해관계도, 목적도 없이 만나 정치 이야기부터 건강, 가족 문제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모임은 수년간 이어지고 있다. 특히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유명 인사가 화제에 오르면 날카로운 칼로 생선회를 뜨듯, 각자가 보고 들은 정보에 개인적 평가까지 더해 거의 국정감사장 분위기를 연출한다. 얼마 전에도 그 모임이 있었다. 건강식을 먹은 다음 한순간이 지나니 삭막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 X은 아주 엉터리야.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온 국민의 기부금을 그렇게 제멋대로 쓸 수 있어?” “노인네들을 앵벌이 시킨 거야” “할머니들의 피를 빨아먹는 거머리야” “그 단체가 그랬어? 이제야 적나라한 민낯이 드러난 거지.” “국민의 기부금이 그 X 가족 쌈짓돈 같아. 무슨 돈으로 자식을 유학 보냈지? 또 정치한다잖아.” “그동안 얼마나 권력에 아부했을까?” “그것이 좌파 XXX들의 본질이야. …” 이처럼 어느 한 사건만을 놓고서도 험담은 그칠 줄 모른다.

 

예전에 필자도 이런 비슷한 대화를 은근히 즐기기도 했었다. 실상은 별로 아는 것이 없어도 주워들은 내용이 전부인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 필자는 입을 다물었다. 특정한 사람을 유난히 범죄자 취급하며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거부감이 다가왔다. 심지어 이젠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타인에게 저토록 확신에 찬 비난을 할까. 마치 자기가 다 아는 것처럼. 혹시 나중에 나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험담을 하지 않을까?” 필자가 느낀 불편함과 거부감은 마음 속에 오랜 잔상으로 남았다. 최근엔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안주로 삼아 비난의 강도가 수직상승하고 있다. 마치 자신이 다 아는 것처럼 심판자가 되어 정의를 포장한 지식인처럼 자처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직결되면 비난의 강도는 대책이 없다. 진정한 지식인, 이성을 중심으로 냉철한 판단과 건전한 정책 비판은 기대하기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세상엔 좋은 말이 많은데 왜 사람을 그토록 증오하고 혐오하는 막말을 쏟아낼까 우려가 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도 인성이 점차 메말라 가고 황폐화 되는 느낌은 없는지 필자는 측은지심에 잠겨 보기도 한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타산지석으로 다가온다. 그러면서 요즘은 점잖게 늙어 가는 것도 쉽지 않다는 넋두리를 해본다. 온통 주변의 막말과 혐오에 감염이 될까 두려움이 앞선다.

 

이젠 나이가 들면서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 투덜거리거나 징징거리는 사람,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거나 남의 험담만 하는 사람을 만나면 필자를 방전시킨다. 나쁜 기운이 필자에게 전해져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전에 한때는 무조건 비판이나 지적을 하는 것이 이지적이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식인의 책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비판이나 험담보다는 칭찬과 격려, 그리고 덕담을 나누고 싶다. 이것은 동시에 ‘세상 만물에 대해 비평가나 판사의 역할을 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하는 자기성찰이기도 하다. 필자는 앞으로 주어진 시간을 타인의 장점과 본받을 점을 이야기하며 덕담으로만 아름답게 채우고 싶다. 동료 교사나 학생, 그리고 이웃의 장점은 볼록렌즈로 확대해 보고, 단점은 오목렌즈로 축소 시켜 보고 싶다. 이것이 필자가 교직과 일상의 삶에서 지켜나가고 싶은 소망이고 어린 학생들을 교육하는 원동력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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