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대란입니다. 지난 2월에 비해, 5월 취업자 수가 87만 명이나 줄었습니다. 줄잡아 코로나 사태로 일자리 155만 개가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코스피 지수가 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미국도 주가가 급등세입니다. 서울의 부동산 시장도 들썩입니다. 집을 사겠다는 사람들이 다시 많아졌습니다.
누가 봐도 수십 년 만에 찾아온 경제 위기. 정부는 30조 원이 넘는 역대급 추경을 준비 중인데, 더 비싼 돈을 주고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저금리’에 ‘유동성’이 넘치다 보니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여러 규제로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래서 집값이 들썩일까? 혹시 ‘다들 사려고 하니까’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사실 대중들이 참여하면 너도 나도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쉽게 과열됩니다. 이를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고 합니다.
거듭된 주가 폭락의 결과가 부동산 투기 열풍이라고?
1988년. 그 유명한 일본의 자산버블. 니케이주가는 매일 올랐고 일본인들은 매일 주식을 샀습니다. 시가총액 세계 50대 기업 중 무려 33개가 일본 기업이 됐습니다. 시가총액 1위 NTT의 시가총액 매출이 10배 이상 많은 IBM의 3배가 넘었습니다(당시 NTT의 시가총액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았다). 하지만 이듬해인 1989년 거품은 한 번에 꺼졌고, 집값은 1/10로 폭락했습니다. 1,500조 원의 자산이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급등한 니케이지수는 여전히 30여 년 전의 고점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00년 미국. IT 버블이 꺼지고 주가가 본격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001년,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11테러가 발생했습니다. 건국 이래 처음으로 본토를 공격당한 미국은 당황했고, 주가는 폭락에 폭락을 이어갔습니다. 연방준비위원회(FED)는 서둘러 기준금리를 크게 내립니다. 6.5%였던 미국이 기준금리가 금세 1%까지 내려갑니다. 시중에 돈이 풀리고 다시 주가가 올라갑니다.
사상 유례없는 1% 금리 시대가 열린 겁니다. 사실상 돈을 공짜로 빌려주는 시대의 개막입니다. 대중들은 앞 다퉈 주식과 부동산 투자 열풍에 동참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유행 같은 것이었고, 참여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자산시장이 불타올랐습니다. 연준(Fed)의 ‘그린스펀(Alan Greenspan)’ 의장은 세계 경제의 구원자, 지휘자가 됐습니다. 미 타임지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그린스펀의 사진을 표지에 실었습니다.
신용 쓰나미로 이어진 유례없는 1% 금리 시대
하지만 유례없이 풀린 돈은 거품으로 이어졌고 5년여 동안 폭등하던 미국의 집값은 2006년부터 폭락을 거듭합니다. 수많은 언론이 그린스펀을 ‘버블의 창시자’라고 조롱하기 시작합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subprime mortgage crisis). 미국 경제는 결국 또 무너집니다. 다음은 당시 미 하원의 청문회장의 한 장면입니다.
“당신은 무책임한 대출 관행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이 있었고, 수많은 사람이 당신의 조언을 들었을 텐데…. 그렇지 않았던 당신의 행동 때문에 우리 모두가 대가를 치르고 있지 않는가?”
- 헨리 왁스맨(당시 미 정부개혁위원장)
“40년 동안 내 이론은 잘 맞아 들었지만, 그래요. 이론에서 허점을 발견했어요. 이것은 100년에 한 번 나올 만한 신용 쓰나미입니다”
- 앨런(그린스펀 당시 FED 의장)
돌이킬 수 없이 유동성 장세가 계속되자 연준(Fed)은 서둘러 다시 기준금리를 올립니다. 하지만 시중 채권금리가 따라 올라주지 않습니다. 돈이 좀처럼 회수되지 않습니다. 집값이 폭락합니다. 수백만 명의 미국 시민들이 대출금의 연체를 시작합니다. 집을 압류당합니다. 그린스펀은 당시 미 상원에 올린 통화 보고서에 채권 금리가 올라가지 않는 이유에 대해 “나도 모르겠다”고 답했습니다. 이게 그 유명한 그린스펀의 수수께끼(Greenspan’s Conundrum)입니다.
투기적 상황이 오면 대중들은 무조건 이를 따라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릴 적 연막 소독차 차를 이유 없이 따라 달렸던 것과 비슷합니다. 친구들이 달리면 나도 따라 달렸습니다(연주대가 앞장서는 마차를 대중들이 따라간다고 해서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라고 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집을 사고, 주식을 판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남들이 사면 사고, 남들이 팔면 파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지금 뉴욕의 증시도, 서울의 주택시장도 다르지 않습니다. 기업의 내재가치나 부동산 시장의 미래가치를 개인이 면밀히 알고 투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연 시장에 합리적으로 참여할까? 우리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1989년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참여해 “싸랑해요 밀키스!”라는 CF를 찍습니다. 이후 밀키스의 매출은 10배 이상 급등합니다. 주윤발이 밀키스를 사랑하는 것과 밀키스라는 음료(소비재)의 효용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사실 우리는 많은 순간 그저 남들이 하는 시장 참여적 판단을 흉내 내고 따라 합니다. 그러니 밀키스의 매출이 늘어난 것은 주윤발의 CF로 밀키스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났고, 나도 그냥 그것을 따라 한 것입니다.
남들이 사면 나도 사고, 남들이 팔면 나도 파는 ‘비이성적 과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어떤 투기적 상황이 오면 습관처럼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투기의 열차에 올라탑니다. 노벨경제학상을 탄 로버트 실러(Robert shiller) 예일대 교수는 당시 미국인들이 어떻게 불나방처럼 투기 대열에 뛰어들었는지 분석하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의 이름도 ‘비이성적 과열’입니다.
투기는 늘 기대 심리를 먹고 삽니다. 꼭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실제 우리 부동산 시장에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이어집니다. 마치 자신이 원하는 시장과 합리적 분석을 동일시합니다. 이를 뒷받침할 10가지 이유를 들어 자신의 시장 참여를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자산시장이 급락하면 그때도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10가지 이유가 등장합니다. 그 이유 역시 ‘합리적’입니다.
이달 들어 갑자기 큰 이유도 없이 우선주(의결권이 없는 주식) 열풍이 불었습니다. 너도나도 우선주를 사들이고 우선주 가격이 급등합니다. 3만 원 정도였던 삼성중공업 우선주는 10일 연속 상한가를 치더니 40만 원 정도에 거래됩니다. 이유는 뭘까? 솔직히 말하면 ‘남들이 사니까’입니다. 다들 위험하다고 하면서, 불나방처럼 투기에 뛰어듭니다. 성장성이나 내재가치를 이야기하면 시대에 뒤처진 사람입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에 동참하지 못한 개미들의 아쉬움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런 투기 열풍은 300년 전 영국의 남해 주식회사(The south sea company)의 신주 발행일에 런던의 도로가 마차로 가득 찰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때도 사람들은 그 투자가 합리적이라 믿고 신주 인수행렬에 참여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다들 하니까 나도 해야지’입니다. 이 인간의 근본 마음을 이겨내기는 참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백 년 시장경제에서 또 투기가 이어집니다. 그렇게 또 돈을 잃습니다. 당신은 그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을 이길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