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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몰랐던 작은 학교의 기적, 남해 고현초·도마초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간도 잠시 쉬어갈 것 같은 평화로운 마을. 야트막한 산자락 끝머리에 자리한 고현초등학교. 지난 1928년 개교했으니 올해로 92년째를 맞는 유서 깊은 학교다.

 

“어서 오이소. 하이고 마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지예. 뭐 드릴 건 없고 차나 한잔 하시소.” 고현초 교장실에 들어서자 백종필 교장이 투명 유리잔에 노란 국화차를 따라준다. 바닷바람에 꽃향이 더 그윽하게 느껴졌다.

 

인구감소로 폐교 직전까지 몰렸던 경남 남해 조그만 바닷가 학교로 학생들이 몰려온다. 지난 3월 신학기 때만 해도 20여 명에 불과했던 전교생이 10월 현재 45명으로 늘었다. 병설유치원도 덩달아 4명이던 원생이 같은 기간 15명으로 불어났다. 자동차로 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근 도마초등학교도 마찬가지. 지난 3월 20명이던 전교생이 지금은 40명이 됐다.

 

“우리도 놀랐어예. 이렇게 많이 몰려올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꺼. 지금도 전국에서 문의 전화가 옵니다.” 백 교장과 함께 있던 정금도 도마초 교장이 거들었다. 도대체 이 조그만 어촌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첫 발령인데 폐교라니...

지난 3월 경남교육청 정기인사에서 백 교장과 정 교장은 나란히 고현초와 도마초 교장에 임용됐다. 둘 다 첫 교장 발령이다. 기대와 설렘으로 학교에 들어섰지만, 분위기는 썰렁했다. 머지않아 폐교되거나 통폐합될 거라는 소식만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교장에 임용되자마자 폐교라니….”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생각이 백 교장의 머리를 때렸다. 자존심도 상했다. 즉시 도마초 정 교장을 찾아갔다. “누님(정교장은 백교장의 진주교대 9년 선배다) 우리 둘이 힘을 합쳐 학교 한번 살려보입시더.” “그래, 한번 해보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정 교장이 화답했다. 교장 둘이 의기투합하니 그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교육지원청·군청·농협·면사무소·동창회·마을 경로당 등 관계기관과 어르신들을 찾았다. 그리고 호소했다. “폐교시키기엔 너무 아까운 학교다. 우리가 학교를 살릴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은 지킬 테니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남해군 내 이장 20여 명을 학교로 초청했다. 그리곤 학교를 왜 살려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는지 의견을 듣고 계획도 설명했다. 마침 경남교육청에서 농어촌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을 추진하는 바람에 탄력이 붙었다.

 

 

사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쾌적한 교육여건을 갖춘 농어촌 학교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이곳으로 전학을 오고 싶어도 일자리와 주택문제 등으로 결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 백 교장과 정 교장은 학교 인근 빈집이 많다는 것에 착안, 주거문제 해결에 직접 나섰다. 빈집을 리모델링해 편히 살 수 있게 한다면 전학생을 유치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다. 이후 둘은 틈만 나면 남해 일대 마을을 찾아 빈집을 샅샅이 뒤졌다. 처음엔 교장 둘이서 빈집을 찾으러 다니는 것을 주민들은 의아하게 여겼다. 심지어 부동산 중개인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을 발견하면 수소문해 집주인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취지를 설명한 뒤 무상으로 임대해 줄 것을 요청했다. 대부분 흔쾌히 수락했다. 특히 고현초와 도마초 동문 출신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개인적인 이유로 임대에 난색을 표명하기도 했지만, 취지를 거듭 설명하면 “좋은 일 하는 건데 도와야죠”라며 허락했다. 그렇게 발품을 팔아 하나둘 모은 집이 무려 24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끗하게 단장된 빈집들은 서울에서, 파주에서, 김포에서, 청주에서 등등 전국각지에 찾아온 새 이웃들에게 제공됐다.

 

화끈한 남해사람들이 뭉치자 변화가 일었다

교장들이 직접 발로 뛰며 학교 살리기에 나서자 지역주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사 온 주민들에게 무료 전기공사가 진행되고 농협은 학부모가 원하면 농사를 지을 토지를 무상으로 대여하겠다고 거들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겠다는 독지가도 나타나 힘을 보탰다. 유성식 농협 조합장은 고현초와 도마초 입학생 전원에게 100만 원의 장학금 지급을 약속했다. 전학 온 재학생들에게는 1인당 50만 원의 학비가 지원된다. 인근 한의원에서는 학생들에게 경옥고와 총명탕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나섰다.

 

하지만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도시학교에선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매력적인 교육과정. 우선 고현초와 도마초 두 학교는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사실 그동안 학생수가 적어 체육대회나 음악회 등 교과 외 활동에 제약이 많았다. 학생들 사회성 발달도 은근히 걱정됐다.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부터 학생수가 늘어나 작은 학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이뿐 아니다. 귀농·귀촌한 전직 교수들이 지도하는 멘토링 교육을 비롯해 생태학습, 해외진로탐방, 출판 등 도시학교에서는 할 수 없던 다양한 특성화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입소문이 나자 전국에서 전학 문의가 쏟아졌다. 하루 7~8개 가정에서 연락이 왔다. 얼마 전에는 자녀가 13명인 전국 최다 가족이 고현초로 전학을 왔다. 자녀 다섯을 둔 가족도 이곳으로 이주했다.

 

백 교장과 인터뷰를 하던 중 학부모 2명이 또 교장실로 들어왔다. 오늘 전입신고를 마치고 인사차 들렀다고 했다. 이들은 고등학교 동창으로 자녀들은 이번 달부터 고현초와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전학을 결심한 이유를 묻자 아이들을 마음껏 뛰어놀게 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학부모 안 모 씨(40)는 학교 측이 기획한 해외 진로탐방을 특히 마음에 들어 했다. 어린 시절 해외에 나가 견문을 넓힌다는 것이 쉽지 않은 기회여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함께 이주한 친구 신 모 씨(40)는 학생들이 책을 직접 출판해 보는 프로그램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말했다. 정식으로 책을 출판하는 것이어서 어린학생들에게 벅찬 일이겠지만 성공하고 나면 그 성취감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이라며 이 같은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멋지고 행복한 교육으로 보답하겠다

지금은 비록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지만 지난날 어려움도 많았다. “출세하려 쇼하느냐”는 곱지않은 시선에 “어차피 문 닫을 학교인데 이런 야단법석을 피운다”는 핀잔도 들었다. “그래 봐야 안 된데이”라는 패배주의도 그들을 힘들게 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교직원들이 소매를 걷어붙였고 이 고장 출신 유명 인사들이 학교살리기 추진위원회를 구성, 본격적인 지원에 나섰다. 지난 7월 남해 일대에서 열린 학교살리기 홍보 캠페인에는 하영제 국회의원, 김두관 국회의원, 하윤수 한국교총회장, 장충남 남해군수, 이주홍 군의회 의장, 안진수 남해교육장, 류경원 경남도의원, 군의원과 동창회 및 지역주민 500여 명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이들은 캠페인에서 “전원생활과 아이 교육이 행복한 고현면으로 오라”고 호소했다.

 

인터뷰하는 동안 연신 전화벨이 울렸다. 또 전학문의다. 정 교장은 책임이 무겁다고 했다. 우리를 믿고 먼 길을 찾아온 분들한테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솔직히 부담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멋지게 성공해 작은 학교가 얼마나 행복한지 꼭 보여주고 싶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마음을 열고 학교 살리기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은 마을 주민들이 제일 고맙다”는 백 교장은 “으뜸 교육과정, 최상의 교육복지, 좋은 교육환경으로 남해 푸른 파도처럼 건강한 학교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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