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다툼의 대부분은 법리가 아닌 사실관계 다툼이다. 법정으로 가는 학교 내의 분쟁도 마찬가지다. 학교폭력·교권침해·아동학대·직장내괴롭힘의 주된 쟁점은 행위자가 문제 되는 발언을 했는지 여부이다.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이런저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하고, 가해자로 지목받은 사람은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고 선한 의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며 좋게 말했다고 반박한다.
과거에는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했으나 요즘에는 백문이 불여 ‘녹음파일’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주장이 엇갈릴 때 당사자의 일방적인 주장에 불과한 진술이 아닌 녹음파일을 제시하면 사실관계는 더 이상 문제 되지 않는다(같은 녹음파일을 들어도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사실관계의 다툼이 아닌 해석의 문제이므로 별론으로 한다). 최근에는 대화 또는 통화를 하면서 녹음을 해도 되는지 묻는 의뢰인이 많고, 재판에서 녹음파일을 증거로 제출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면 녹음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일까? 흔히 당사자 간 대화는 녹음이 허용되고, 타인 간의 대화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당사자 간 대화에서 녹음이 허용된다는 것은 형사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민사에서는 당사자 간 녹음이라고 하더라도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형사책임
● 통신비밀보호법
통신비밀보호법(이하 ‘통비법’이라고 함)에 따르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할 수 없으며(제3조·제14조), 이를 위반하여 녹음된 내용은 재판 또는 징계절차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고, 이를 위반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불법녹음은 벌금형과 징역형만 있으므로 중범죄에 속한다. 따라서 대화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녹음한 것은 통비법 위반이 아니지만, 대화에 참여하지 않는 타인이 녹음하는 것은 통비법 위반에 해당한다. A와 B의 대화를 C가 몰래 녹음하는 것은 당연히 통비법 위반이고, 설령 A나 B 중 1인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통비법 위반에 해당한다(대법원 2002도123 판결).
● 학교현장 사례
학교현장에서 흔히 발생하는 비밀녹음은 보호자가 학생의 가방이나 옷에 녹음기를 넣어서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를 녹음하는 것이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면서 감정을 실어서 모욕적인 언사를 하거나, 다소 거친 표현을 하는 것을 보호자가 몰래 녹음하여 아동학대(정서학대)로 고소한다면 녹음파일은 증거로써 인정될까? 대화자는 교사와 학생이고, 보호자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은 제3자이므로 교사와 학생 간의 대화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이다. 따라서 보호자가 녹음하는 것에 학생은 동의했다고 하더라도 교사는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원칙적으로 이는 증거능력이 없으며, 통비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런데 최근 보호자가 몰래 한 비밀녹음의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나오고 있다. 아이돌보미가 생후 10개월의 아동이 잠을 자지 않고 운다는 이유로 엉덩이를 손으로 수회 때리고, “미쳤네, 미쳤어, 돌았나, 제정신이 아니제, 미친놈 아니가 진짜, 쯧, 또라이 아니가, 또라이, 쯧, 울고 지랄이고”라고 큰소리로 욕설을 하고, 아동이 울고 있는데도 울음을 그치도록 조치하지 않고 텔레비전을 시청한 사건이다. 1심은 대화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으나, 2심은 “피해아동의 모친이 피고인의 업무공간에서 발생하는 피고인의 목소리 등을 몰래 녹음하였다고 하여, 이로 인한 피고인의 인격적 이익의 침해 정도가 아동학대범죄에 대한 실체적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적 요구와 비교할 때 사회통념상 허용 한도를 초과할 정도의 현저한 침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증거능력을 인정하였다(대구지방법원 2018노1809 판결). 위 판결 이후 보호자의 비밀녹음 증거능력을 인정하여 아동학대로 처벌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민사책임
대화에 참여하는 당사자가 몰래 녹음한 것은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므로 통비법 위반은 성립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의 동의 없는 녹음은 대화자의 음성권을 침해하여 민사책임은 성립할 수 있다. 다음은 음성권 침해와 관련한 하급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18나68478 판결)이다.
● 사실관계
● 판결
교사 간에 다툼이 발생하여 원고가 피고에게 나가라고 소리치자 피고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녹음을 하였다. 녹음된 부분은 23초에 불과했고, 사생활에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 공개된 장소인 교무실에서 여러 사람이 듣는 가운데 녹음을 한 것이다.
녹음파일 및 녹취록을 법원 및 수사기관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사용한 점 등을 고려하면 원고의 동의 없이 피고가 녹음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는 음성권의 보호법익에 포함되지 않는다. 설령 음성권이 침해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당방위 또는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서 위법성이 없다고 보았다. 위 판결에 따르면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은 형사적으로는 문제 되지 않으나, 민사적으로는 음성권 침해로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
이상을 종합하면 형사적으로는 당사자 간 대화는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녹음이 가능하고 증거로도 사용할 수 있으나, 타인 간 대화 녹음은 증거로 쓰일 수 없고, 형사처벌 대상이다. 하지만 최근 타인 간 대화 녹음이라도 비교형량을 통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하급심 판결이 등장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민사적으로는 상대방 동의 없는 비밀녹음은 음성권을 침해하여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지만, 예외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