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반신반의했다. 교장선생님이 점심시간 급식지도를 하고, 코로나 방역에 필요한 학생지도를 전담한다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교과수업은 물론 동아리반 지도까지 한다. 교사들이 가장 꺼려하는 것 중 하나인 ‘당번근무’도 대신 맡았다. 학교알리미를 통해 드러난 지표도 눈을 의심케 한다.
지난해 학교폭력신고 건수가 제로(0)이다. 선도위위원회도 열린 적 없다. 고교 입시를 앞두고는 전국의 유명 사립고 10여 곳이 학교를 찾아 신입생 설명회를 연다. 서민 밀집지역이어서 녹록하지 않은 학교로 알려졌는데 드러난 결과는 딴판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관악구 소재 신림중학교 김현태 교장. 지난해 공모교장으로 부임한 그는 교사들이 수업과 상담 등 생활지도에만 전념하는 여건 조성을 약속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신림중은 지역 명문학교로 급부상, 세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선생님들은 수업에만 전념하세요”
김 교장은 수업하는 교장으로 유명하다. 교사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좀 더 나은 수업을 위해 무엇을 지원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 수업을 자청했다. 또 아직은 교단에서 아이들과 눈 맞추고 호흡할 자신이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4~6시간 수업을 맡는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교사가 수업할 수 없을 때면 보강은 김 교장이 맡는다. “교장은 지시하고 행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문성을 가지고 수업도 직접 해내야 하죠. 그래야 교사들이 교육본연의 활동에 충실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는 수업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했다. 실제 김 교장은 서울동작관악 수업지원단 단장을 맡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다.
수업만이 아니다. 동아리 활동에도 참여한다. 자유학년제 주제인 창의과학반·과학실험반을 맡아 원격수업으로 진행한다. 유튜브 제작에도 능해 그가 만든 다양한 수업자료와 동아리활동 자료는 학생들 사이에 인기 만점이다.
교무실 분위기 역시 남다르다. 우선 수업과 상담 등을 제외한 웬만한 업무는 교장과 교감이 맡아서 한다. 선생님들은 다른 일 신경쓰지 말고 좋은 수업만을 위해 노력해 달라는 주문이다. 그는 또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자 방역 담당을 자청했다. 교문에서 발열체크는 물론 손씻기까지 일일이 지도하고 자가검진도 매일 확인했다. 점심시간이면 급식지도를, 수업과 수업사이 쉬는 시간엔 복도 생활지도가 그의 몫이었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 김 교장의 노력 덕에 학생들이 달라졌다. 학교폭력이 사라졌다. 선도위원회에 올라온 사건이 단 한 건도 없었다. 생활지도가 잡히자 김 교장은 학력신장으로 눈을 돌렸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늘어나면서 학생들 간 교육격차가 벌어지고 전반적으로 학력이 떨어지는 조짐이 보였다. 고심 끝에 인근 서울대 사대 김희백 학장을 찾아갔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용기를 내 서울대생을 멘토로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 서울대 측은 흔쾌히 동의했다. 중학교 교장이 서울대를 찾아와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 것은 김 교장이 처음이란다. 이후 멘토링 프로그램이 개설되고, 맞춤형 교육이 실시됐다. 서울대생 1명이 신림중 학생 1~3명을 개별 지도하는 프로그램이다.
고입 설명회에 전국단위 자사고 몰려
멘토링 프로그램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간 운영됐다. 겨울방학 땐 윈터 스쿨을 개설, 서울대생 10명이 신림중 학생 56명을 단과반 형식으로 가르쳤다.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영어·수학교과에 집중했다. 단순한 강의식 수업이 아니라 학생 수준별 반편성을 통해 수월성교육까지 이뤄졌다.
윈터스쿨에 참여한 김다현 씨(서울대 국어교육 3)는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는 학생들의 열정에 가르치러 왔다가 더 많은 것을 깨닫고 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올해 새 학기를 맞아 서울대와 신림중 멘토링 2.0 스쿨을 개설, 원격으로 질문과 상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보다 발전된 모델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지난해 12월엔 신림중 개교이래 처음있는 일이 발생, 주위를 놀라게 했다. 고입 전형을 앞두고 김 교장은 또 한 번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진로에 고민하는 학생들을 위해 전국 유명 고등학교 관계자들을 학교로 불러 진학설명회를 연 것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전국단위 자사고·자율고 등이 몰려와 학생들과 1대1 상담을 가졌다. 신림중 개교 이래 이처럼 많은 고등학교가 찾아온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김 교장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직접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2021학년도 고등학교 선택 전략'이란 특강을 열었다.
직장인 부모들을 고려, 오후 6시 반에 시작한 특강은 밤늦게까지 진행됐다.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조차 자리를 뜨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자녀의 진로를 고민하던 학부모들에게 진학설명회와 김 교장의 특강은 큰 도움이 됐다. 3학년 담임을 맡았던 정소영 교사는 “고등학교 진학은 물론 대입 전략까지 장기적 안목으로 통찰력 있게 맥을 짚어주는 바람에 학부모들 모두 만족도가 높았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학부모 최정순 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진로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무척 어려웠는데 학교측이 마련한 입학설명회는 다양한 학교들이 참석해 비교 분석까지 가능했다”며 고마워했다.
예상 밖 호응에 학교 측도 놀랐다. 김 교장은 올해는 5~6월경 진학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1학기에 미리 진로를 정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서울 협력교사제 꼭 성공하고 싶어”
신림중은 반듯하고 공부만 잘하는 학교가 아니다. 축구 하면 또 신림중이다. 지난 1983년 창단한 신림중 축구부는 전국대회 제패는 물론 수많은 국가대표와 프로선수를 배출한 명문이다. 단순한 기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축구와 관련된 생리학·심리학 분야까지 연구하고 지도한다. 어린 나이에 혹사당하는 일이 없도록 과학적 프로그램을 통해 정신과 신체가 건강한 선수로 육성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 기치에 맞게 학업에 충실한다. 축구부 교실에 학습독서실을 만들어 운동을 마치면 언제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 실제 신림중 축구부 학생들은 최저학력기준에 미달한 학생이 단 한 명도 없다.
김 교장은 “당장 눈에 띄는 선수보다 앞날을 내다보고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목표”라며 “이것이 신림중 축구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올해 김 교장은 서울시교육청이 추진하는 협력교사 프로그램이 기대를 걸고 있다.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수학교과에 꼭 필요한 협력교사를 임용할 계획이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해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학부모와 학생이 1대1 매칭이 돼 함께 책을 읽는 독서교육활동도 올해 그가 이루고 싶은 소망의 하나다. “교사가 본분에 충실한 교육, 그것이 교육의 왕도”라고 김 교장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