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활용하게 된 계기
Z세대(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초반 사이 태어난 세대)라 불리는 요즘의 우리 아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영상물이나 짧은 인터넷 글에는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렇지만 글의 길이가 어느 정도 있는 종이책, 아니 30분 만에 읽을 수 있는 청소년 단편소설 한 편 조차 읽어보라고 하면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2019 국민독서실태 조사’를 확인해보았더니 조사결과에 그런 모습들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2017년 조사결과와 비교해 초·중·고 학생들이 종이책을 이용하는 비율은 1.0%p 감소하고 전자책은 7.4%p 증가하였으며, 또한 만화책이나 웹툰을 이용하는 비율은 각각 74.3%, 78.9%를 보여준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필자가 근무했던 학교의 몇몇 아이를 떠올리게 해 주었다.
첫 교직생활을 초등학교에서 보내고, 두 번째 학교로 고등학교에 발령받았다. 우리 지역에서 나름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큰 규모의 인문계 남학교여서 사뭇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 실력과 지식이 혹여나 아이들보다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을 품고 수업을 열심히 준비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수업을 진행해보니 읽은 내용을 요약하는 것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 담긴 글을 읽어내는 것도 서툰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들이 꽤 많아 수업에 애를 많이 먹었던 경험이 있다. 수업활동에 집중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준 아이 중에 도서관에 비치된 만화책만 주야장천 읽거나 도서관을 거의 이용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아마 독서실태 통계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서 현재 독서교육의 방향에 대해서 의문점을 조금씩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근무지인 현재 학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읍면지역에 있고, 인근 학교 중 사서교사가 배치된 곳이 초등학교 1곳, 고등학교 1곳으로 학창시절 동안 사서교사를 접해보지 못한 학생이 절반 이상이다. 더욱이 나에게 처음 큰 걱정을 심어주었던 학교에 비해 학업성취도 수준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이 학교로 발령을 받으면서 어느 수준에 시선을 맞추어야 양질의 독서교육을 제공할 수 있을지, 어떤 소재의 수업을 진행해야 Z세대인 이 아이들에게 글로 가득한 책을 친숙하게 느끼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또 사서교사와 책에 대해 좋은 경험과 영향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쉽게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그림책이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들었던 어떤 연수에서 초등 고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그림책을 직접 읽어주면 짧은 시간 안에 다양한 감정을 교류할 수 있어 정서적으로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배운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 나 또한 어린 시절보다 더 많은 양의 그림책을 읽으면서 그림책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겼었다. 그림책이 시(詩) 못지않게 함축된 상징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림책은 대상 연령대가 어린이로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편견일뿐더러 이야기와 그림이 주는 울림이 정말 크다는 것을 느꼈던 경험이 있었다. 이런 연유로 그림책이 이 학교의 아이들에게도 분명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고등학생, 그것도 곧 성인이 될 3학년 학생들과 함께 읽어보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그림책 수업을 꾸려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