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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이슈1] 일상이 무너진 아이들

 

어느 날 갑자기, 일상이 무너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고, 수업 듣고, 급식 먹고, 친구들이랑 놀다가 집에 오던 평범했던 일상을 빼앗겼다. 학교를 안 가서 신나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외로움과 불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무기력해졌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뭐라도 해야지’라고 마음을 먹지만, 실천하지 않는 자신이 실망스러워졌다. 이러다 나만 뒤쳐질 것만 같은 불안감과 우울감에 빠졌으며, 불규칙한 생활패턴으로 점점 게을러지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자존감도 바닥까지 내려왔다.

 
아이들은 어른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른들도 경험한 적이 없어 우왕좌왕하느라 아이들을 찬찬히 챙겨줄 겨를이 없었다. 부모님은 불어 닥친 경제위기 속에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방법을 찾느라, 선생님 역시 변화된 교육환경에 적응하느라 너무 바빴다. 그래서 아이들은 본인들이 뭘 감당하고 있는지, 왜 자기 마음이 이렇게 우울하고 불안한지, 갑자기 자존감이 왜 이리 낮아졌는지 영문도 모른 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중이다. 


요즘 교육계의 가장 큰 걱정은 코로나19로 인한 학력저하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학력’ 챙기기가 아니라 ‘마음’ 챙기기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코로나블루 직격탄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01_ 교사의 잔소리가 사라지자 게으름이 피어올랐다
‘쉼’이 길어지면 ‘나태함’이 치고 들어온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다. 
학교는 ‘자의반타의반’으로 유지되는 집단이다. 어쨌든 학교에만 나오면, 어영부영 시간은 흐른다. 가만히 책상에 앉아있어도 선생님들이 찾아와서 이것저것 알려주고, 사탕까지 쥐어주면서 어르고 달래며, 기어이 조금이라도 ‘하도록’ 했다. 친구가 하자니까 대충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학교생활 곳곳에 ‘타자(他者) 찬스’가 존재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변화된 학교환경은 아이들에게 그 어느 때보다 ‘자기통제력’과 ‘자기관리능력’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시간 맞춰 온라인에 접속해서 수업을 듣고(시간관리), 시험·수행평가 준비를 하며(자기주도학습관리), 대학입시와 취업도 준비해야(진로계획) 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해낼 수 있는 힘’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이었기에 어느 날 갑자기 부여된 ‘자율성’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 ‘타자 찬스’가 사라지자 ‘조금만 있다가 해야지’하며 미뤄놓은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아침저녁으로 조·종례시간에 해대던 담임 선생님의 지긋지긋한 잔소리가 사라진 자리마다 게으름이 피어올랐다. 


#02 _ 불규칙한 생활패턴과 함께 자존감도 무너졌다
최근 상담실을 찾는 아이들이 부쩍 늘었다. 평상시 별 탈 없이 학교생활을 하던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기력증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규칙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일상생활을 유지한다는 것은 나 스스로와의 힘겨운 싸움이다. 순간순간 치고 들어오는 귀찮음과 게으름을 극복해야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무너지면서 아이들의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 게을러지기 시작한 일상생활이 어느새 몸에 익숙해졌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데를 외치지만, 나태함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아, 이러다가 나만 뒤쳐져 있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반복되는 불안감에 조급해지고, 짜증이 늘고, 우울해졌다. 이렇게 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게으른 자신이 한심스럽고 바보 같았다. 자존감은 바닥까지 내려왔고, 그러면 그럴수록 일상생활을 유지하기는 힘들어 졌다. 평소 같았다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코인노래방에서 스트레스를 털어버렸을 텐데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생활에 크고 작은 규제가 생기면서 그것조차 쉽지 않다.

 

 

#03 _ 친구의 빈자리엔 외로움이 파고 들었다
수다를 떨며 힘이 되어주던 친구도, 하루에도 열 두 번씩 바뀌는 사춘기 마음을 함께 나눌 친구도, 이런저런 이유로 쌓인 스트레스를 함께 날려버릴 친구도 랜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얼굴만 봐도 웃음이 나와서 깔깔거리던 친구의 빈자리를 게임으로 달랬다. 하지만 외로움은 채워지지 않았다. 


체육대회·수련회·합창대회·체험학습 등 단체활동이 중단되면서 학급의 역동성 형성도 어려워졌다. 친해질 만하면 다시 온라인으로 들어가는 친구들과의 친밀도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다투고, 토라지고, 화해하고, 양보하고, 타협하며 자연스럽게 체득하던 소통능력과 대인관계능력도 점점 약해졌다. 


‘관계의 단절’은 생각보다 후유증이 컸다. 친구를 사귀고, 서로 부대끼며 생활하는 것이 점점 두려워졌고, 그럴수록 적응력은 더 떨어져갔다. 전면등교가 이루어진다는 소식에 겁이 났다. 

 

#04 _ 심리적 고통은 백신을 맞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의 몸속에만 침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속까지도 은밀하게 침투했다. 아이들은 다양한 심리적 고통을 겪으며 이 시기를 견뎌내고 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2020)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은 ‘온라인 개학실시’, ‘친구들과의 단절’, ‘일상생활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불안과 걱정’, ‘화·분노’를 경험하고 있었다. 


문제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은 ‘백신’을 맞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저하를 끌어올리기 위해 온힘을 기울이기 전에,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세심한 관리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가장 간단하게 해줄 수 있는 심리적 지원은 바로 ‘정서적 지지’이다. “집에서 너무 놀아서 게을러져서는…” 이라는 말 대신에 이렇게 말해보자. “일상이 무너지다보니 느끼는 무기력감이야. 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단다. 다시 조금씩 일상생활에 적응하다보면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지금부터라도 학교 교육이 지식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알고,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으로 변화되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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