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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어르신들과 함께한 더불어 한글교실반

 

태백에 온 지도 6년째. 태백으로 처음 인사이동을 한 후 근무하게 된 초등학교는 태백시에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의 작은 학교. 철암초등학교이다.

 

철암마을은 전형적인 탄광 마을로 석탄 산업이 부흥을 누릴 때는 전교생이 2천 명이 넘었고, 흔한 말로 “철암엔 지나가는 개들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던 마을이었다. 그러다가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점차 산업의 기반이 없어지게 되었고, 현재는 전교생이 40명 안팎이고, 마을에는 고령의 주민들만이 마을을 이어가고 있다.

철암초에서만, 6년째 근무 중인 나로서는 거의 철암마을의 주민이 될 정도로 마을에 대한 다양한 정보 및 이야기를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들어가는 마을 교육공동체 활동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가 근무하는 학교와 마을이 학생들을 함께 가르쳐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마을 교육공동체를 이끌어가다가 겪게 되었던 이야기이다.

 

2019년 3월 마을과 함께하는 마을 교육공동체의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는 중에 마을도서관의 관장님에게 전화 한 통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 마을의 한 어르신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데, 학교에서 한글을 좀 배울 수 있을까요?”

학교와 마을을 연결해주시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시는 도서관 관장님으로부터 받은 전화는 예전에 학교를 다니지 못하신 어르신의 평생소원이신 한글을 배우는 것이었다.

 

그 당시 교무부장이면서 마을 교육공동체 담당이었던 나는 마을의 도움만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교가 마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선생님들과 협의를 해 보았다. 시골의 작은 학교여서 학급당 인원수가 2~4명 정도이고, 저학년 중심으로 한글 교육과 관련된 자료가 많고, 일주일에 월, 목요일 오후 1시간씩 한글 교육을 하는 것에 2학년 담임선생님이 흔쾌히 승낙해 주었고, 혹시라도 출장이나 연수 등으로 어려우면 내가 대신해서 수업을 들어가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어르신의 한글 교육 계획을 만들었다.

 

처음 어르신을 만났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라는 기관을 경험해 보지 못하셨고, 낮은 책걸상 때문인지, 어려운 부탁을 갖고 와서인지 안절부절하고 계셨다. 교장 선생님과 나, 그리고 2학년 선생님은 어르신과 이런저런 옛날이야기를 나눠보고, 앞으로의 계획을 짜 보았다. 긴장하셨던 얼굴을 어느새 기대감과 기쁨으로 바뀌셨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댁으로 돌아가셨다.

 

그다음 날, 교무실에서는 많은 전화가 왔다. 바로, 한글 교육을 받고 싶어 하는 어르신들의 전화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분이 마을로 돌아갔는데, 동네 소문으로 번져,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학교로 전화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 분이었던 한글 교실 반이 여섯 분, 여덟 분, 열 분으로 늘어났다. 어찌 보면, 작은 학교의 한 학급보다 많은 인원이었다. 한글 교실 반의 계획을 짜던 나도, 도움을 주려고 했던 2학년 담임선생님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중장기적인 차원으로 마을의 평생교육 기관과 연계가 나을 것 같아 주민센터 쪽으로 의뢰를 하였다. “한글 교실 반을 운영하기 위한 강사 양성을 위해선 7개월의 연수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선 접수는 했으니 7개월 뒤에 강사가 배치될 수 있습니다.”라는 답변이 왔다. 어르신들이어서 연세가 많아 배움의 시기가 늦었고, 몸이 불편하시고, 거동이 힘드신 분들이 많은데 7개월 동안 기다리라고 하기엔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우리는 어르신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글 교실 반을 평생교육 한글 교실 반이 만들어질 때까지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렇게 하여 열 분의 어르신들과 함께 시작된 것이 철암초의‘더불어 한글교실반’이다.

2019년 4월 1일. 드디어 한글 교실 반의 입학식을 시작으로 매주 월, 목요일 2일간 오후 3시부터 오후 4시까지 1시간씩 한글의 기초와 읽기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도서관 관장님의 도움으로 독서 교육까지 함께 진행되었고, 저학년 선생님이 한글 교육을, 내가 다양한 학교 경험을 진행하였다.

 

작은 학교 방과 후에 어르신들이 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하고, 저학년 학생들도 함께 도서관을 이용하였다. 어르신들은 학생들을 손자, 손녀처럼 아껴주시고, 보살펴 주셨다. 어르신들은 농사철이 바쁜 일과 중에도 매주 월, 목요일이 되기를 기다리시고, 학교에 오기를 매일 설레하셨다. 나는 한글 교육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경험하지 못하셨던 다양한 학교생활 및 체험 프로그램, 소풍처럼 가는 마을 여행에도 어르신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진행하였다.

 

봄에는 입학식, 입학 100일, 장 담그기 활동, 온마을 학교 페스티벌 활동을

여름에는 학교 달빛캠프, 행복농장 가꾸기, 여름방학 활동을,

가을에는 분천 기차여행, 온마을 학교 운동회 활동을,

겨울에는 새해맞이 떡국 먹기, 겨울철 군고구마 굽기, 전래놀이 한마당 등을 했다.

함께 하는 어르신들의 눈은 과거의 학창 시절의 어린아이처럼 빛나셨고,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해 주셨다.

 

어느덧 어르신들과 함께한 1년의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주민센터에서도 평생교육 한글 교실 반이 만들어졌고, 어르신들은 학교에서 평생교육으로 반을 옮기셔야 했다. 어르신들은 학교에서 했던 교육이 평생교육 한글 교실 반보다 더 낫다고 하시면서 계속해서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를 원하셨다. 하지만, 주민센터의 한글 교실 반 구성도 된 상황에서 학교에서 계속 어르신들을 교육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어쩔 수 없이 어르신들을 평생교육 한글 교실 반으로 보내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지막을 멋진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자, 구상한 것이 학교 한글 교실 반의 졸업식이었다. 기존 6학년 학생들이 사용했던 학사모와 가운을 이용하여 한글 교실 반 어르신들의 마지막 졸업식을 준비하였다. 졸업식은 어르신들의 가족분들을 초대하였고, 참석이 어려운 가족들의 깜짝 축하 영상을 만들어 보여드렸고, 교직원들은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러드렸다. 또한, 그동안 배우셨던 한글을 이용한 간단한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학사모와 학사 가운을 입은 사진도 촬영하여 졸업사진도 만들어 드렸다. 졸업식 날에 한 분이 나의 손을 잡고, 평생의 소원을 이뤘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1년의 생활을 통해 나 또한 내가 갖고 있던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배움의 끝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배움을 시작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배움이란 어떤 것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의 배움이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나중에 하면 되지요,” 라는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고, 어쩌면 다음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 및 주민센터의 한글 교실 반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분들을 가끔씩 만날 때마다 나는 그분들에게 “항상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학교에서 만나요.”라고 얘기한다. 언제가 될지는 기약이 없지만, 어르신 분들은 미소를 지어주시면서 “선상님도 항상 건강하세요. 코로나 조심 하시구요.”라고 말씀해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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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교단수기 공모 - 은상 수상 소감

마을과 함께한 6년의 아름다운 동행

 

철암마을과 함께했던 아름다운 동행을 마치면서 교단 수기에서 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그동안의 다양한 마을 활동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6년 전, 처음 왔을 땐 아무런 연고도, 지리도 모르던 이곳, 철암.

그동안의 마을 교육공동체 활동으로 이제는 누구보다 마을 곳곳을 잘 아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마을 교육공동체는 학생의 교육적 측면, 그뿐만 아니라 마을 분들에게도 학교가 갖고 있는 다양한 시설 및 교육 인프라를 함께 공유하면서 학교, 마을 모두가 Win-Win 할 수 있는 활동입니다. 수기에 있는 “더불어 한글교실반” 역시, 마을 어르신들에겐 한글 교육을, 그리고 어르신들의 모습을 학생들이 보면서 배움과 예절, 그리고 마을의 역사를 들으면서 애향심과 애교심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철암은 “울면서 왔다가 울면서 떠나는 곳”이라고 합니다.

처음에 왔을 때 보이는 산 밖에 보이지 않은 환경과 폐광들이 있어 깎인 산과 쌓여있는 검은 석탄 때문에 막막함에 울다가, 살다 보면 다양한 활동에 언제나 팔을 걷고 협력해 주시는 사랑과 인정이 넘치는 마을 분들, 시원하고 깨끗한 자연환경으로 떠날 땐 그립고, 아쉬워 운다고 합니다.

 

올해는 저 또한 인사이동으로 인해 정들었던 이곳을 떠나게 됩니다. 작년엔 코로나 19 감염병으로 인해 어르신들을 만날 수 없었지만, 앞으로도 철암초는 마을과 함께하는 마을 교육공동체가 이어질 것입니다.

다른 곳에 있어도 항상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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