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초를 강화시켜야 몸이 튼튼하다
일반적으로 많이 모으고 쌓아두는 것이 좋은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가진 것을 덜어내어야 오히려 좋은 때도 있다. 건강에 있어서도 잘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적당히 절제할 때도 있으며, 많이 운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역량에 맞추어 적절히 조절하여야 할 때도 있다. 옷이나 재물을 많이 모으는 것도 좋겠지만 때로는 가진 것을 덜어내고 줄일 필요도 있다. 내 마음에서는 무엇을 덜어내는 것이 좋을까? 바로 분노하는 마음과 욕심이다. 주역(周易)에서는 덜어내고 줄여야 하는 때를 산택손괘(山澤損卦)라고 표현하고 있다. 손(損, 덜어냄)은 많이 있는 것에서 덜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산택손괘(山澤損卦)는 산(山)을 의미하는 간괘(艮卦)가 위에 있고 못(澤)을 의미하는 태괘(兌卦)가 아래에 있다.
건물을 지을 때 아래층부터 만들기 시작하여 점차 위층을 만들 듯이 괘(卦)가 만들어지는 순서대로 하괘(下卦)부터 상괘(上卦)로 해석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괘(卦)가 이미 완성된 다음에 괘(卦) 전체를 보아 상괘(上卦)부터 하괘(下卦)로 해석하는 방법도 있다. 이는 사람을 볼 때 일반적으로 얼굴부터 보고 그 다음에 몸통을 보며, 건물을 볼 때 내 눈높이보다 약간 위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건물 전체를 보는 것과 같다.
산택손괘(山澤損卦)를 괘(卦)가 만들어지는 순서로 해석하면 아래에 있는 못(澤)의 흙을 덜어내어 위에 있는 산(山)에 보탠다고 볼 수 있다. 아래에 있는 못(澤)의 흙을 일부러 파서 위에 있는 산(山)에 올려서 보탠다면 당장 산(山)이 높아지고 못(澤)이 깊어져 좋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밑에 있는 것을 덜어내어 위를 보탠다는 면으로 보면 결국 모두에게 손해가 된다. 아랫사람은 결국 윗사람을 받쳐주는 근간인데 아랫사람의 것을 빼앗아 윗사람에게 보태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아랫사람이 힘들어진다. 이는 조직이나 나라의 근간이 흔들려 결국 모두 위태롭게 되는 것과 같다. 오히려 윗사람의 것을 덜어내어 아랫사람에게 보태주면 나라가 튼튼해진다.
후배가 없는 선배가 있을 수 없고, 부하가 없는 장군이 있을 수 없으며, 백성이 없는 나라가 있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운동이나 무술을 할 때 신체의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으면 안정감이 있고, 위에 있으면 넘어지기 쉬운 것도 같은 이치이다. 기마자세로 하체를 단련시키거나 단전(丹田)호흡을 하여 하초(下焦)를 강화시키는 것도 결국 신체의 근간을 튼튼하게 하기 위함이다. 자동차나 배도 마찬가지인데, 무게중심이 낮지 않고 높으면 회전을 할 때 불안정하고 심하면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무게중심이 위가 아닌 아래에 있도록 설계한다.
괘(卦)가 이미 완성된 다음에 괘(卦) 전체를 보아 해석하면 산택손괘(山澤損卦)는 위에 산(山)이 있고 아래에 못(澤)이 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적으로 산(山)은 침식되어 점차 깎이고 못(澤)은 점차 메워지게 되어 결과적으로 산(山)과 못(澤)이 거의 평평해진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면 산(山)은 산(山)답지 않고 못(澤)은 못(澤)답지 않아지므로 스스로 자기 자신을 덜어내는 것과 같다.
공자(孔子)는 높게 솟구친 산(山)이 점차 깎여 낮아지고, 깊은 못(澤)이 점차 메워져 수심이 낮아지는 것을 보고, 군자(君子)라면 당연히 징분(懲忿, 분노를 징계함) 하며 질욕(窒慾, 사욕을 막음)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분노(忿怒)는 쉽게 발현되지만 미리 제어하기 어렵기 때문에 분노(忿怒)한 다음에 징계(懲戒, 뉘우치고 경계함)하는 것이고, 사심(私心)으로 인한 욕심(慾心)이 일어날 때엔 매우 미미하나 점차 왕성함에 이르기 때문에 욕심이 나기 전에 미리 질색(窒塞, 막음)한다고 하였다.
분노(忿怒)는 이미 밖으로 그 마음이 드러나 행동으로 옮긴 상황이고, 사욕(私慾)이나 욕심(慾心)은 내가 그렇게 하려는 생각이 들었으나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을 때 미리 막을 수 있다. 높이 솟구친 산(山)과 같이 분노(忿怒)가 솟구치면 이를 징계하여야 한다. 못(澤)은 물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제방으로 막은 것으로 더러운 물과 같은 사욕(私慾)은 사람을 오염(汚染, 더럽게 물듦)시킬 수 있으므로 사욕(私慾)을 미리 막아 예방하여야 한다. 욕망(慾望)과 사욕(私慾)은 전염병이 급속히 퍼지는 것과 같이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전파되므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물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욕망(慾望)과 사욕(私慾)을 미리 막아야 하는 것이다.
분노(忿怒)하는 마음이 치받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 기세가 산(山)과 같이 대단하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능멸(陵蔑)하게 된다. 따라서 징분(懲忿)한다는 것은 마치 산(山)의 기세를 꺾는 것과 같다. 자신만을 위한 사욕(私慾)이 생기면 다른 사람은 생각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논리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사욕(私慾)은 금방 주변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질욕(窒慾)한다는 것은 사욕(私慾)을 막는 저수지의 둑과 같고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막기 위해 골짜기에 흙을 쌓는 것과 같다.
징분(懲忿)과 질욕(窒慾)은 모두 어렵지만 굳이 서로 비교하면 징분(懲忿)은 상대적으로 더 쉽고 질욕(窒慾)은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보통 사람이 분노(忿怒)하면 그 기세가 산(山)과 같이 우뚝 솟구쳐 얼굴에 드러나기 때문에 누구나 그 사람이 분노(忿怒)한 것을 알기 쉽다. 따라서 분노(忿怒)는 양(陽)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미 그 분노(忿怒)하는 마음이 드러났으니 이를 징계(懲戒)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다. 반면 사욕(私慾)은 음(陰)에 속하기 때문에 눈에 확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다른 사람들이 이를 눈치 챌 수가 없다. 드러난 것은 쉽게 제어할 수가 있으나 드러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 제어하기도 어렵다.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의 차이다. 따라서 징분(懲忿)하는 것보다 질욕(窒慾)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징분(懲忿)은 분노(忿怒)하는 모습이 눈에 확 드러나기 때문에 강(剛)한 마음만 있으면 쉽게 이를 제어할 수가 있다. 그러나 질욕(窒慾)은 사욕(私慾)이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마음의 정밀함까지 볼 수 있어야 제어할 수 있다. 즉 징분(懲忿)보다 질욕(窒慾)이 더 어려우니, 사사로운 욕심을 잘 살피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태음인과 소음인은 사심과 욕심을 버려야 건강
우리가 보통 말하는 질병이란 무엇일까? 전염병, 요통, 복통, 화병 등도 질병이겠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중도(中道)를 벗어난 것이 모두 질병이라 할 수 있다. 어느 곳에 치우치지 않은 중도(中道)를 걷는 것이 건강의 기본이다. 강(剛)함에 치우친 것은 분노의 질병이고, 유(柔)함에 치우친 것은 욕심의 질병이다. 강유(剛柔)가 적당히 균형을 맞추어야 하는데, 강(剛)함에 너무 치우치면 양(陽)이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쉽게 분노하게 되고, 유(柔)함에 너무 치우치면 음(陰)이기 때문에 욕심을 지나치게 부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한다. 즉 강(剛)함이든 유(柔)함이든 중도(中道)가 아니기 때문에 질병이라 할 수 있다.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적당히 중도(中道)를 지키는 것이 건강의 핵심이다. 세계의 장수촌을 조사해보면 대부분 마을이 평화롭고 동네사람들이 마음이 평온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사상의학에서도 태양인이나 소양인과 같은 양인(陽人)은 항상 분노(忿怒)하는 마음을 조심하라고 하였고, 태음인이나 소음인과 같은 음인(陰人)은 항상 사심(私心)이나 욕심(慾心)을 조심하라고 한 것도 같은 이치다. 예전부터 항상 마음을 가라앉히고 수신(修身)을 강조한 것도 결국 건강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감정(感情)의 기복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가능한 한 절제하여야 한다. 하지만 무조건 감정(憾情)을 억누른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부하직원이 잘못한 것이 있으면 이를 지적하여야 한다. 다만 화를 내거나 분노(忿怒)하지 않고 차분하게 지적하는 것이 좋다. 인류의 역사는 욕심(慾心)에서 발로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욕심(慾心)이 있어야 사람은 노력하게 된다. 다만 이 욕심(慾心)이 내 개인적인 사심(私心)에 바탕을 둔 것인지 아니면 공심(公心)에 바탕을 둔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분노하는 마음을 조심하고 개인적인 욕심을 경계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도 있겠지만 결국 나 자신의 건강을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로나 시대가 길어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화병(火病)에 걸릴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러할 때일수록 나 자신에게서 무엇을 덜어내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인지 생각하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