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각나무와 모과나무 중 누가 더 예쁠까?
나무 선발대회에서 수피(나무껍질) 아름다움 부문이 있다면 어떤 나무들이 후보에 오를까. 그동안 세평으로 보아 노각나무, 모과나무, 배롱나무, 백송, 육박나무는 후보에서 빠지지 않을 것 같다.
우선 노각나무는 비단결같이 아름다운 수피를 가져 유력한 진 후보다. 쭉 뻗은 줄기에 금빛이 살짝 들어간 황갈색 무늬가 독특하면서도 아름답다. 얼마 전 나무박사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 강연을 들었는데, 박 교수는 “우리나라 나무 중 수피가 가장 아름다운 나무는 노각나무”라고 했다. 수피가 비단을 수놓은 것 같다는 의미로, ‘금수목(錦繡木)’, ‘비단나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노각나무는 꽃도 ‘놀랄 만큼 크고 우아’(이유미 국립세종수목원장)하다. 6~7월 여름에 들어서면 잎 사이에서 하나씩 매달려 하얀 꽃이 피는데, 다섯 장의 꽃잎이 겹쳐 피고 가운데에 노란 꽃술이 있다. 꽃의 모양과 크기는 동백꽃과 비슷하지만, 꽃잎이 두툼하고 질감도 독특하다.
노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특산식물이라는 점에서 가점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우리 특산 나무라 학명(Stewartia koreana)에 ‘Korea’가 들어 있다. 나무가 단단하고 습기에도 강해 목기, 특히 제기(祭器)를 만드는 최고급 나무로 꼽혀왔다. 독특한 나무 이름은 가지가 사슴뿔처럼 생겼다고 ‘녹각(鹿角)나무’였다가 변한 것이라는 견해가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보기 드문 나무여서 직접 보고 싶은 분들은 수목원을 찾는 것이 좋은데, 여의도공원에도 몇 그루 심어 놓았다.
과일 ‘모과’는 울퉁불퉁 못생긴 것이 특징이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속담까지 있다. 그러나 수피와 꽃으로 따지면 상황이 180도 다르다. 매끄러운 줄기에 녹색과 회녹색이 조화를 이룬 무늬는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나무 선발대회 수피 부문 심사위원이라면 노각나무와 모과나무를 놓고 막판까지 고민할 것 같다. 봄에 진한 분홍색으로 피는 모과꽃도 뜻밖에도 아주 매혹적이다. 적어도 과일꽃 중에서 여왕을 뽑는다면 아마 모과꽃이 차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배롱나무도 수피 부문에서 후보에 오르지 않으면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 얇은 조각이 떨어지면서 반질반질한 피부가 드러나는데 매끈한 피부 미인을 보는 것 같다. 이 나무 표피를 긁으면 간지럼 타듯 나무가 흔들린다고 ‘간지럼나무’라고도 부른다. 일본에서는 원숭이도 이 나무를 타다 미끄러진다고 ‘원숭이 미끄럼나무’라고 부른다.
원래 배롱나무는 주로 충청 이남에서 심는 나무였으나 온난화 영향으로 서울에서도 월동이 가능해졌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특히 최근 조성한 화단 등에서 배롱나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중부지방에서는 월동을 위해 볏짚 등으로 나무줄기를 감싸 주고 있다.
백송은 나이가 들어 수피에 흰빛을 띨 때보다 젊어서 수피가 푸르딩딩할 때가 더 멋있는 것 같다. 수피가 얼룩무늬로 벗겨지면서 국방색 무늬를 띠는 것이 독특한 미감(美感)을 주는 나무다. 자랄수록 나무껍질이 큰 비늘처럼 벗겨지면서 흰빛이 돌아 백송이라 부른다.
언젠가 수피가 아름다운 나무에 대한 글을 썼더니 어느 분이 왜 육박나무가 빠져 있느냐고 항의(?)했다.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육박나무는 녹나무과 상록 활엽수로, 우리나라 남쪽 섬지방에서 자생하는 나무다. 수피는 연한 흑자색인데 일부가 둥글고 큰 비늘처럼 떨어져서 얼룩덜룩, 꼭 예비군복 무늬를 닮았다. 섬사람들은 이 나무를 ‘해병대나무’라고 부른다고 한다.
위 수피가 아름다운 나무 5개 중에서 당신의 선택은 어떤 나무인가? 채점에 앞서 노각나무는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특산나무이고 육박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나무라는 점, 모과나무·배롱나무·백송은 중국이 원산지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광택이 나는 흰색 껍질이 얇게 벗겨지는 자작나무도 “수피를 논하면서 날 빠뜨리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항의할지 모르겠다.
은사시나무는 수피에 다이아몬드 무늬가 셀 수 없이 많이 박혀 있다. 그래서 다이아몬드가 저렇게 많으니 세상에서 가장 부자나무 아니냐는 얘기를 듣는다. 다이아몬드 모양 무늬는 껍질눈이라고 하는 기관이다. 한자어 피목(皮目)을 우리말로 풀어 쓴 말인데, 나무의 껍질에 생기는 공기의 통로 같은 역할을 하는 조직이다. 이름 그대로 껍질에 생기는 눈인데 숨구멍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은사시나무는 전국의 산에서 숲을 이루면서 자라는 나무다. 아주 빠르게 자라 산을 푸르게 하므로 우리나라에 벌거숭이산이 많았을 때 리기다소나무, 아까시나무와 함께 많이 심은 나무다. 하지만 빨리 자라는 만큼 줄기가 단단하지 못해 젓가락이나 성냥개비, 상자 등의 목재로 쓰이는 정도다. 수원사시나무와 유럽에서 들어온 은백양나무 사이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잡종으로 1950년대 수원에서 처음 발견됐다고 한다.
반면 수피가 지저분하다는 말을 듣는 나무들도 적지 않다. 물박달나무가 대표적이다. 회색 또는 회갈색 수피는 말 그대로 너덜너덜하다. 제법 큰 조각이 겹겹이 붙어 있다. 그래서 ‘할 일이 많아 포스트잇을 겹겹이 붙여 놓은 것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 물박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큰키나무다. 크게 자라면 20m까지 자라는 나무인데, 숲속에서도 수피만으로 바로 알아볼 수 있는 나무다.
수피가 지저분한 나무를 논할 때 산수유를 빠뜨릴 수 없다. 초봄에 산수유와 생강나무는 비슷한 노란색 꽃이 피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보지 않으면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생강나무는 짧은 꽃들이 줄기에 딱 붙어 뭉쳐 피지만, 산수유는 긴 꽃자루 끝에 노란 꽃이 하나씩 핀 것이 모여 있는 형태다. 하지만 수피를 보면 금방 구분할 수 있다. 생강나무는 줄기가 비교적 매끈하지만 산수유 줄기는 껍질이 벗겨져 지저분해 보이기 때문이다.
단풍나무 종류 중에서는 복자기와 중국단풍 수피가 지저분하다는 말을 듣는다. 복자기는 단풍이 곱지만 수피는 벗겨져서 지저분하고 너덜너덜하다. 중국단풍도 수피가 지저분하게 벗겨진다는 말을 듣는다. 다릅나무는 흑갈색 수피가 얇게 벗겨지면서 말리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때가 밀린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다릅나무는 나무를 베면 목질부 겉과 속의 색깔이 선명하게 달라서 다릅나무라는 이름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