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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합리적인 태도

상거래·금융·교육 등 많은 분야에 급속한 변화
편리함 이면엔 정보유출 보이스피싱 등 그림자
정보·권리 주체로서 인식하고 합리적 소비해야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디지털 시대가 됐다. 세상의 많은 것이 변신하고 있다. 자동차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진화하고, 교육도 디지털화했고, 상거래는 이미 디지털이 대세다. 이름을 붙이는 데 한편의 시비가 있기는 하나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까지 불리며 디지털 시대는 상상과 환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금융도 예외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사이에 디지털금융이 급속히 확대됐다. 이제 주변에서는 스마트 폰이나 인터넷으로 금융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은행 서비스의 90% 이상이 디지털 방식으로 이뤄진다. 심지어는 은행 창구에서도 디지털 방식으로 문서작성이 이뤄지고 신용이 제공된다. 이러한 현상은 증권사나 보험사 역시 마찬가지다.

 

디지털금융이 이렇듯 크게 확대된 이유는 무엇일까? 편리함 때문이다. 구태여 은행 창구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고 일과를 마친 늦은 저녁 시간에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24시간 일주일 내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으므로 고객이나 금융회사 모두 윈윈이다. 금융서비스가 확대되니 그만큼 경제활동도 시간 제약 없이 이뤄져 일상의 경제생활뿐 아니라 경제 전체적으로도 득이 될 수 있다.

 

디지털금융의 발전은 심지어 빅테크라고 불리는 플랫폼의 금융참여도 가능하게 만들었다. 빅테크 자체가 금융서비스를 목적으로 등장한 것은 아니다. 빅테크는 원래 아마존 등과 같이 제품 판매를 위한 플랫폼 기업이었다. 그런데 플랫폼 거래를 원활하게 하고 고객기반을 넓히기 위해 은행 등과 제휴를 맺어 지급서비스부터 시작해 이제는 신용제공, 보험, 심지어는 증권거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세계적으로 예외기는 하지만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빅테크가 은행 인가를 받았다.

 

그런데 디지털금융은 좋기만 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공짜 점심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디지털금융이 주는 편리함의 이면에는 불가피하게 치러야 하는 비용이 있을 수 있다.

 

첫째, 개인정보보호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 디지털금융은 데이터 금융이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좋다. 개인정보의 분석이 디지털금융의 출발점이다 보니 과도한 개인정보가 요구되거나 유출되는 등의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다. 물론 개인정보보호 문제는 반드시 금융만의 문제는 아니다. 디지털이라는 특성에 불가피하게 따라붙는 어두운 그림자다. 데이터는 디지털 시대의 알파요 오메가다. 디지털금융 역시 이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금융은 다른 무엇보다도 고객 보호 의무가 강하게 요구되므로 그저 디지털 시대의 그림자라는 말로 변명할 수는 없다.

 

둘째, 빅테크의 금융참여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 플랫폼을 활용해 큰 편리함을 낳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 건전성과 안정성, 프라이버시, 공정경쟁 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플랫폼은 양면시장(two-sided market)의 중개자라고 불린다. 양면시장은 수요자와 공급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시장이다. 많은 고객이 플랫폼에 접속해 제품을 구매하고, 많은 제조기업이 플랫폼에 제품을 제공한다. 플랫폼은 수요자와 공급자를 중개한다. 수요자와 공급자가 많을수록 기능이 더 활성화되고, 접속이 증가한다. 그 결과 플랫폼은 자연스럽게 수요자와 공급자에 대한 빅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이용해 더 큰 편리함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양면시장의 이러한 편리함은 그저 아름다운 묘사에 그칠 수 있다.

 

과도하게 수집된 빅데이터가 유출되면 막대한 프라이버시 침해가 있을 수 있다. 빅테크 금융의 건전성이 훼손되면 플랫폼의 규모에 따라서는 금융시스템이 안정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또한 플랫폼에 제품을 공급하는 기업은 막강한 힘을 가진 플랫폼이 요구하는 부당한 계약서에 울며 겨자 먹기로 서명할 수도 있다. 플랫폼사 계열 가맹기업이 있는 경우, 가맹기업도 다 같은 가맹기업이 아닐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은 가능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도 나타나고 있어서 국내외 규제 당국의 고민거리다.

 

셋째, 급속한 고령화와 함께 진행되는 디지털화는 디지털 소외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 디지털 서비스는 컴퓨터와 스마트 폰에 익숙한 청년층에는 대단히 큰 편리함을 주지만, 그렇지 못한 취약계층이나 고령층에게는 반대로 매우 큰 불편함을 준다. 특히 디지털금융의 확대로 은행 등 금융회사가 지점을 폐쇄하면 고령층과 격지에 거주하는 고객은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단 자체를 잃게 된다.

 

넷째, 디지털금융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보이스 피싱 등과 같은 금융사기를 행하는 자에게도 편리함을 준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으나 보이스 피싱 증가는 디지털금융의 발전과 함께 해 왔다. 온갖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금융감독 당국과 경찰, 검찰을 사칭한다. 이들은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많은 개인정보를 활용해 진짜 같은 스토리를 만들어 보이스피싱을 시도한다.

 

디지털 시대는 명과 암을 모두 갖고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현명한 태도는 무엇일까?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첫째, 디지털 시대에서도 신인의무(fiduciary duty)는 중요하다. 신인의무는 ‘재산의 관리나 운용을 위탁받은 수임인이 위탁자나 수익자의 최대이익을 위해 합리적이고 사려 깊게 행동해야 할 의무’를 말한다. 디지털 자체는 수단에 불과하다. 디지털이라고 해서 고객에 대한 신인의무가 뒤바뀌지는 않는다. 신인의무는 기술과 관계 없이 중요하다. 이것이 고객의 관점에서 기술중립성 원칙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을지라도 디지털에 짓눌려서는 안 된다. 디지털 시대의 고객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를 가진 정보 주체, 권리행사의 주체로서 인식이 필요하다.

 

둘째, 과소비를 주의해야 한다. 합리적 소비 주체가 되어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과소비를 조장한다는 연구도 있다. 클릭 몇 번으로 사고팔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널렸다. 또한 플렉스처럼 이를 합리화하는 현상도 있다. 하지만 소비는 저축이 아니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한번 소비된 금전은 원 상태로는 회복이 곤란하고, 한번 사라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라고 해서 예산 제약과 시간 제약이 없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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