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그런 게 아니다. 2월이면 아이들은 반 배정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니 '헷꿀꿀'이니 '개꿀꿀'이니 주문까지 만드는 거겠지. 새 학년이 되면 막연했던 두려움은 현실이 된다. 같이 주문을 걸던 아이들도 각자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다. 이 정도면 됐다고 안심하거나 패닉에 빠지거나. -20p
선생님이나 아이들 모두 2월은 설렘보다는 두려움을 느끼는 때이다. 선생님은 학교를 옮기거나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면서 이런저런 걱정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누구와 함께 같은 반이 될지, 어떤 선생님을 만나게 될지, 어른들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불안함을 느낀다. 여중생의 시선으로 그려내는 학교와 친구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 <체리새우: 비밀글입니다>. 이 작품을 쓴 황영미 작가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문학작품이 갖고 있는 의미를 풀어내고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고민 글에 내가 단 댓글이 ‘베스트’가 된 적이 몇 번 있다. 이 소설은 댓글을 다는 심정으로 시작되었다. 소설을 쓰면서 마음의 지도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서로의 경계가 어딘지, 어느 지점이 초록불이고 빨간불인지, 각자 마음속 깊은 골짜기 쉼터는 어디인지. 불가능한 일인 줄 알지만 내 소설이 타인에게 다가가는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수많은 문학작품을 통해 삶과 죽음, 관계에 대한 지도를 어렴풋이 보았듯이, 내 소설도 누군가의 마음 골목에 작은 안내판이 될 날이 오겠지 하면서 오늘도 읽고 쓴다. -197p 작가의 말 中
따돌림의 굴레
어른들은 아이들의 따돌림 문제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면서도 그 내밀함에 대해서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따돌림을 학교폭력의 대상으로 다루고 있지만, 아이들의 마음속까지 자세히 살피고 있지는 못하다. 따돌림이 생기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아이들의 시선은 다음과 같을 수도 있다.
효정이는 거론한 이유 때문에 미움받는 게 아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효정이가 출중하게 예뻐서다. 예쁘다고 다 공공의 적이 되는 건 아니다. 예뻐도 친구들한테 인기 많을 수 있다. 하지만 성격 좋고 털털하고 ‘나 예쁜 척 절대 안 해’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 주지 않으면 바로 ‘따’ 당한다. 은따든 왕따든. 효정이는 털털하긴 하지만 애매하게 털털해서 매의 눈보다 날카로운 아이들의 촉수에 딱 걸렸다. 자기가 예쁘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 친구들은 말한다. 교복 치마를 길게 입는 거, 그거 자신감이거든. 어쨌든 튀니까. 약간의 털털함? 그것도 연출이야. -12p
따돌림의 원인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심리변화에서 일어난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따돌림은 사소하게 시작되며, 그 이유조차 모호해진 상태에서 커지기만 한다.
사실 제일 먼저 은유를 미워한 건 아람이였다. 원래 그렇다. 누구 한 명이 ‘그 애 좀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씨앗을 뿌리면, 다른 친구들은 ‘이상하지, 완전 이상해’라며 싹을 틔운다. 그다음부터 나무는 알아서 자란다. ‘좀 이상한 그 애’로 찍혔던 아이는 나중에 어마어마한 이미지의 괴물이 되어 있는 것이다. 어렴풋이 느꼈다. 은유는 우리가 소름 끼치게 싫어할 정도로 이상한 아이가 아닌 것 같다고. 그렇다고 냉큼, ‘알고 보면 은유도 괜찮은 아이야!’라는 말을 할 수도 없다. 1학년 때 은유와 아람이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내가 모르니까. -52p
아픔 그리고 성장
책 제목을 보며 어떤 의미인지 많이 궁금했을 것이다. 제목의 구성에서 느낄 수 있다시피 블로그의 명칭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설명되고 있다.
<낭만 고양이>. 내 비공개 블로그 ‘체리새우’의 배경음악이다. 배경음악은 자주 바뀐다. 이 노래 말고도 좋은 노래를 많이 올려놓았다. 책 읽다가 발견한 좋은 문장이나 내가 찍은 동네 풍경도 있다. 체리새우 블로그는 내가 좋아하는 걸 다 말하는 공간이다. 물론 비공개로. 나는 블로그를 하면서 2월의 불안을 견디었다. -20p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에 빠져들고, 그 안에서 안정을 느끼는 우리 아이들의 심리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막연하게 스마트폰을 많이 한다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그 세계가 아이들에게는 피난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그곳을 찾는 이유를 저마다 갖고 있다. 작품 속에서 아이들은 그 아픔을 혼자서 풀어나가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털어놓으며 풀기도 한다.
“그냥. 아니, 그냥은 아니고, 가서 물어보고 싶어. 우리 엄마 어디 계신지.”
은유가 덤덤하게 말했다. 깜짝 놀라서 은유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어디 계신지 몰라?”
해강이가 물었다.
“돌아가셨어.”
은유가 눈을 내리깔았다. 갑자기 내 가슴이 저릿해 왔다. 언뜻언뜻 엿보이는 은유의 서늘한 표정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나 6학년 때 암으로. 내내 병원에 누워 있다가 돌아가셨는데…. 그냥 좀 궁금해, 이제 안 아픈지. 저세상에는 아픈 사람 없겠지? 아빠는 이제 엄마가 편히 쉴 거라고 하시는데, 나는 추측이 아니라 진짜 확실한 대답을 듣고 싶거든. 그런데 가면 알 수도 있잖아.” -82p
모든 걸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고, 오해한 적도 있는 은유의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아픔과 지금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자신만의 블로그 속으로 침잠하기도 하지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을 때 비로소 아픔을 치유받고 성장할 수 있게 된다. 성장은 아픔을 수반하지만, 갑각류가 탈피하듯 빈 껍질을 버리고 점프할 수 있는 것이다.
외갓집에서 체리새우를 처음 보았다. 수초 가득한 어항에서 나는 것처럼 헤엄치는 모습이 예뻤다. 맑은 물에서 사는 담수새우이고, 몸집이 자라면 주기적으로 탈피를 한다. 빈 껍질을 벗어 버리고 점프하는 모습이 무척 신비로웠다. -172p
교육 속으로
이 책은 따돌림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중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따돌림으로 인해 우리 아이들은 자존감이 무너지고, 정상적인 관계형성을 할 수 없는 상흔을 갖게 된다. 그동안 어른들은 아이들의 아픔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고, 겉으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해주려고만 했다. 당장의 상처는 봉합되는 것 같지만, 아이들이 자존감을 다시 찾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게 해 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엄마! 세상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살았으면 좋겠어.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만.”
우리는 탄탄면과 볶음밥을 주문했다.
“그러게 말이다.”
엄마도 물을 마시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생각해 봤는데, 나를 싫어하는 애들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싫어하더라고. 노력해도 그 애들의 마음은 돌릴 수 없어. 그래서 결심했어.”
“무슨 결심?”
그 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엄마는 탄탄면을 먹기 시작했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만 신경 쓸 거야.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으면 그냥, 내가 먼저 좋아할 거야.”
엄마 앞에서 선언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179p